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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14. 2023

어쩌다 세부

필리핀 세부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에 도전하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12월. 아들, 부산에 사는 후배와 함께 필리핀 세부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러 갔습니다. 5박 6일 일정이었지만 하루를 제외하면 온전히 자격증을 위한 공부와 훈련이 전부였습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결심했습니다. 몇 달 전부터 부산 후배와, 똑같은 일상의 지루함에 대해 투덜거리던 때라 잘됐다 싶었습니다. 추진력 좋은 후배는 신이 나서 자신이 알고 지내는 가이드와 연락했고 일사천리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항공편부터 숙소, 자격증 교육과정까지 단 며칠 만에 결정이 났습니다.


  출발 당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린 각자의 짐을 부치고 홀가분한 몸으로 여기저기 구경했습니다. 출국 수속 전 항공권을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가 있는 카페에 잠시 들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가는 첫 해외여행이라 뭔가 모를 불안감이 있었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저는 대장 노릇 하기 좋아하는 후배 덕에 별로 신경 쓸 것이 없었습니다. 아들만 잘 챙기면 됩니다. 저보다 키가 큰 아들은 공항 안을 신기한 듯 둘러보며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불안감은 현실이 됐습니다. 후배의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 건 면세점을 구경하던 때입니다. 다행인 건 짚이는 데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지갑을 딱 한 번 꺼냈는데 그곳은 카페였습니다. 당황하는 후배와 다시 출국장을 가봤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죠. 급히 항공사에 전화했더니 직원을 그 카페로 보낼 테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울린 벨 소리에 후배는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후배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출국부터 혼을 뺀 여행은, 첫날 아침 교육과 동시에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혼마저 빼놓았습니다. 생소한 용어의 이론교육은 그럭저럭 해냈지만, 오후에 시작된 본격적인 물속에서의 교육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난처함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인지 알게 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허우적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아들이었습니다. 어떻게든 해내야 했습니다.


  첫날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여유 있게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관광은커녕 내일 있을 필기시험을 준비해야 합니다. 꽤 두꺼운 책자의 절반가량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3일을 더 이 짓거리를 해야 한다니…. 체력이 감당해 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중에 후배와 이때의 이야기를 할 때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아들이, 조카가 보고 있어 정신력으로 버텨냈다고 말입니다. 재미있는 추억을 쌓으러 간 여행이 목숨을 건 사투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호들갑을 떱니다.


  우리는 두 단계의 자격증을 나흘 동안의 교육과 훈련으로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설렁설렁한 것은 아닙니다. 정석대로 교육과정을 모두 소화했습니다. 이후에도 스쿠버다이빙을 계속 다닌 후배에게 들은 바로는 주변 사람들이 놀란다고 합니다. 그런 것도 했냐며 그렇게까지 했냐며 오히려 묻더랍니다. 아무튼 우리의 그 힘들었던 훈련은 끝이 났지만, 물속에서 경험한 그 놀라운 광경과 경이로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들리는 거라곤 저의 숨소리뿐인 적막한 바닷속은 처음엔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물속에 있는데 저 아래쪽 어두운 곳으로 가면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깊이 들어갈수록 수압으로 인해 물안경이 얼굴을 옥죄어 옵니다. 적응하기까지 눈이 빠질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산소통을 이용해 호흡하며 머물러 본 바닷속은 TV에서 보듯 환상적이지 않았습니다. 햇빛이 닿지 않아 산호초는 잿빛으로 보였고, 자꾸 빙글빙글 도는 내 몸을 주체 못 해 화도 났습니다.


  그렇게 나흘이란 시간이 가고 마지막 잠수를 했습니다. 수심 27미터 지점까지 내려가서 해류에 몸을 맡기고 빠른 속도로 유영을 해봅니다. 그 해류가 돌아 나가는 곳까지 가서 만난 바닷속 비행기 한대. 사진 속 비행기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가라앉혔다는 비밀 아닌 비밀도 알게 됐습니다. 수면으로 올라오기 전 몸에 쌓인 질소를 배출하는 시간인 ‘안전 정지’를 하기 위해 천천히 이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정어리떼가 TV에서만 보던 바로 그 은빛 찬란한 광경을 눈 앞에서 펼쳐 보였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바닷속에서 이걸 직접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직도 눈 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현실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합니다. 필리핀 세부와 정반대의 계절 탓에 더 혹독하게 추위를 느꼈습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인정하는 자격증이 생긴 겁니다. 아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겠죠? 아빠 따라 놀러 왔다가 바다에 빠져 죽을까 걱정하던 첫날이 생각나네요. 이제는 견디고 이겨내는 법을 배웠을 겁니다. 수심 4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자격도 얻었습니다. 저 역시 미지의 세계였던 바다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가슴 깊이 스며드는 고요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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