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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16. 2023

오늘 배송될 예정입니다

누군가에게 반갑고 기다려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띵!’ 소리에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택배가 오늘 14시~16시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해외직구로 산 물건이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옵니다. 오늘 배송이 맞는지 메시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맞네요. 아직 오지도 않은 택배를 이미 받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앗싸~!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닙니다. 놔둘 곳을 정리해야죠. 오래되어 손때 묵은 것 중 한두 개를 구석으로 밀어냅니다. 그중 한 개는 아예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희미하게 들리는 엘리베이터 소리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됩니다. 글이 써지질 않습니다. 혹시 예정보다 빨리 온 건 아닌지 현관을 열어봅니다.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배송조회를 합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배송 출발’이란 글자 위에 배송하시는 분 연락처가 있습니다. 

  ‘배송 중에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문득 누군가를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더 나아가 나는 누군가에게 반갑고 기다려지는 사람인가 돌아보게 됩니다. 만나기 싫고 대면하기 싫은 사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그 사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며 수준 높은 험담을 래퍼처럼 거침없이 쏟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고 만나서 반가운 사람은 딱히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서로에 대해 이해와 수긍이 자연스럽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됩니다. 또 상대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걸고 묻습니다. 상대의 기쁨이 내 행복이 되기도 합니다. 받기보다 주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죠. 하지만 누군가에겐 기다려지고 반가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배송되는 택배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주문하면 30분 내로 배달되는 가볍고 쉬운 사람은 싫습니다. 배송하시는 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가져오시는 택배를 기다리듯, 저의 겉모습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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