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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l 10. 2023

십 년 만의 저녁

  대부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지만, 난 이런 일반적인 생활이 처음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저녁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이 너무 좋다. 해 질 녘 출근하던 나에게 저녁은 하루의 시작이었기에 바쁘고 힘든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 난 출근을 위해 아침을 먹었고 남들 잠잘 시간에 점심을, 아침을 맞이할 때 난 잠을 청했다. 그런 생활이 익숙했기에 크게 불편하거나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유일한 약속 시간은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가능했다. 생활의 리듬을 흩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쉬는 주말에도 일하는 평일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했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밤의 난 너무 멀쩡하고 활기차다. 밤새는 건 일도 아니다. 일요일 오후가 약속하기에 더 좋긴 했지만 언젠가부터 일요일은 가족과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 역시 그게 좋았고 다음 날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일요일 늦은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곳 속초의 저녁은 매일 같이 휴가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친구들이 멀리 있어 혼자 보내야 하지만 해변 어귀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 모래사장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상념마저 사라지는 느낌이다. 지금껏 이 별것 아닌 것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즐거운 마음에 혼자 히죽거리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볼까 봐 전화 통화하는 척하며 조심스레 웃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밤낮이 바뀐 삶을 다시 되돌리길 원하며 기도한 지 한 십 년쯤 됐을까? 잔뜩 엉켜있는,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던 실타래가 하나씩 풀어지고 있다.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라는 수많은 책을 보며 나도 한번 해보자, 다짐한 것이 불과 몇 달이 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한꺼번에 변화하는 나의 삶에 간혹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거창한 사건이 계속 벌어질 거라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다른 차로 갈아타고 조금 다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뭐 그런 정도다.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낼 삶의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긍정적인 생각과 말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지금까지 뒤를 돌아보며 안타깝고 아쉬워하기 급급했던 나의 옛 모습은 이제 지나간 흔적일 뿐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말 중에 ‘~해 죽겠다’라는 말보다는 ‘~해 행복하다’가 좋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부정적인 언어를 더 쉽게 내뱉고 자주 말한다. 가끔은 옛 모습이 튀어나오려고 하지만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내 생각과 말을 바꾸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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