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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Oct 07. 2024

빵이 빵이라고?

파라스 데 레이 - 아르수아 29.2km

원래 계획은 ‘리바디소’까지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르수아’까지 약 3km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모든 알베르게를 예약해 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착각했는지 엉뚱한 곳에 그만 예약을 해버린 것이었다. 하루에 30km를 걷고 나면 무척 피곤했다. 더군다나 비가 오거나, 태양이 작열하는 더위라면 더욱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르수아’까지 아주 조금씩 내리막길이었다.



갈 길이 멀었기에 해가 뜨기 전에 서둘러 출발했다. 아직은 구름이 낀 흐린 날씨였다. 시내를 벗어나니 굉장히 키가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길이 시작됐다. 모든 조건이 걷기에 최적이었다. 점심은 ‘멜리데’라는 곳에서 ‘뽈뽀(문어)’를 먹을 예정이었다. 그곳이 뽈뽀요리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례길이 지나는 길목에 있던 그 식당은 지나는 모든 순례자에게 맛을 보라고 한 점씩 준다고 했다.



식당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멜리데의 한 골목을 지나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뽈뽀 한 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어설픈 한국어로 ‘문어 맛있어’라고 말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걸 보니 이 식당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식당엔 이미 많은 순례자가 와 있었다. 안내받은 자리의 대각선 앞쪽에 중국인 ‘역’이 앉아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는 ‘역’의 앞에 놓인 뽈뽀는 올리브유 때문에 번들번들했다.



세계 여행 중인 한국인 부부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기본보다 몇 유로 비싼 뽈뽀가 더 맛있다고 했다. 난 그들의 말을 믿고, 잘게 잘라주는 기본 메뉴 대신 통째로 구워 나오는 갈릭뽈뽀를 주문했다. 기본 메뉴는 문을 들어오며 이미 한 점 맛보아서 어떤 맛인지 알고 있었다. 레온에서 먹어본 뽈뽀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그때는 한국의 문어숙회가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멜리데의 뽈뽀는 워낙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하니 잔뜩 기대했다.



감자와 곁들여 나온 갈릭뽈뽀는 일단 향이 좋았다. 단단하지 않고 무척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맘에 들었다. 함께 나온 감자와 같이 먹으니 조금도 느끼하지 않았다. 거기에 시원한 생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그만 걷고 이곳에서 쉬고 싶어졌다. ‘역’과 눈이 마주쳤다. 맛있냐고 물으니, 갈수록 느끼하다고 하며 나와 같은 걸 주문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한번 맛보라고 했지만 이미 배가 너무 불러 도저히 더 먹을 수 없다며 사양했다.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받은 영수증 맨 윗줄에 ‘PAN’이라고 쓰여있고 2유로가 적혀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빵’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 빵이 뭐냐고 재차 물었다. 그 여직원은 또다시 내게 빵이라고 얘기하며 옆에 있던 빵을 들어 보여줬다. 응? 당신이 말한 빵이 이 빵이야?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다. 한국어로도 이게 빵이라고 말하자 크게 웃으며 신이 났는지 내게 빵! 빵! 이라며 몇 번이나 소리쳤다.



식당을 나서니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멜리데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두 가지의 길을 안내한 표지석이 보였다. 하나는 성당을 들렀다가 오는 조금 더 먼 길이었다. 성당? 그동안 충분히 봤다. 다른 화살표는 곧게 뻗은 긴 골목을 향해있었다.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골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오가 되자 급격히 더워졌다. 구름 한 점 없이 뜨겁게 달궈진 길을 걷고 있으니 계속 목이 말랐다. 배낭에 있는 물통을 꺼내는 것이 귀찮아 그냥 참고 걸었다.



저 멀리 작고 귀엽게 생긴 분홍색의 자동차가 보였다. 그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가자 아주 아담한 크기의 간이노점이 있었고, 안에 서 있던 그녀가 아마도 분홍색 자동차의 주인으로 보였다. 둘러보니 간단한 음료와 기념품 몇 가지를 파는 곳이었다. 뒤따라온 여자 순례자들과 주인장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마치 오래 만난 사이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난 레몬 맛 이온 음료를 하나 사 들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르수아’에 도착해 예약해 둔 알베르게를 찾았다. 조금 복잡한 구조의 골목 사이에 있던 그곳은 크기가 꽤 컸다. 일찍 도착한 편이었던 난 구석에 있는 침대를 선택하고 짐을 풀었다. 먼저 온 한 명의 여자 순례자는 이불을 턱까지 덮고 누운 채 나에게 눈웃음과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내가 있던 방문이 열리더니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순간 정적이 흐르며 서로 어떤 침대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 정확하지 않지만, 프랑스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는, 순례자들 사이에 일명 ‘떠버리’와 ‘탱크’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어디 가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해 붙여진 별명이 ‘떠버리’였다. 밤에는 다른 사람의 숙면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코골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또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다. 이불을 덮고 있던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리셉션으로 달려가 방을 바꿨다. 그는 내게 오늘 밤 조심하라고 친절히 경고해 주었다. ‘응, 나도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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