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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e Sep 24. 2021

둔감 훈련

서핑? 겁이 많은 나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난 못해, 내 나이에 무슨, 몸 움직이는 건 싫다, 귀찮아, 난 운동신경도 없잖아, 물에 빠지기 싫어, 추운 거 싫어, 코에 물 들어가면 진짜 아픈데, 결정적으로 저 쫄쫄이 슈트를 어떻게 입어? 상상만 해도 망신스럽다'라고 생각했다.

하필 이날은 왜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예민한 나의 성격을 바꿔보고자 뒤적이던 책에서 "안 하던걸 해보라"라는 글귀가 그날따라 꽂혔기 때문이리라.

남편은 당신이 웬일이냐며 바로 아이들까지 네 명의 서핑 강습을 예약했고, 난 슈트를 입을 걱정에 저녁을 굶고 다음날 아침까지 굶고 최대한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며 바다로 향했다.

있는 힘껏 낑낑거리며 팔다리를 구겨 넣어 간신히 슈트를 입었는데 세상에! 나의 뱃살이 너무나 적나라하지 않은가! 남편의 말대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으로는 도저히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 달라붙는 슈트를 벗는 건 어디 쉬운 일인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나왔지만 이 상태로 오래 버티긴 힘들었다.

강습하는 내내 숨을 참아서인지, 두 끼를 굶어서인지 두 가지의 시너지 효과 때문인지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메슥거렸다.

'이러다 바다에서 기절하겠어, 도저히 못하겠다! 난 빠질래!'하고 외치고 싶은 순간을 나의 타고난 소심함으로 말할 타이밍을 두어 번 놓치니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다행히 서핑 슈트라는 것이 바닷속에서는 늘어나는 재질인 건지 숨 쉬기가 훨씬 수월했다.

강사가 한 명씩 보드를 밀어주는데 내 차례가 되기까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파도가 세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무섭다.' 하며 긴장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됐고 시작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러나 한번 넘어지고 나서 물에 빠졌을 때의 불편감이 감당할 만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긴장이 풀리고 의욕이 불타올랐다.

강사는 계속해서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요령을 알려주었다.

 "발가락을 세우고~ 몸을 좀 더 왼쪽으로~ 좀 더 밑으로~ 자 패들(손으로 헤엄치라는)~~~ 푸시(상체만 들라는)~~~ 업(보드 위에 온전히 일어서라는)!!!!!"

여섯 번쯤 됐을까. 양 팔을 쫙 벌리고 자신 있게 서고 말았다!

누군가 서핑은 파도와 함께 추는 춤이라고 했던가. 구름 위의 손오공처럼 나는 그저 서있고 파도가 알아서 밀어주고 있었다.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어!'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그다음도 성공하고, 그다음도 성공하고, 그렇게 여유가 좀 생기니 발목까지만 발을 담그고 열심히 아이들이 서핑하는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 엄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어제까지의 나의 모습이지 않던가. 애들 사진만 수십 장을 찍어 제일 잘 나온 사진을 sns에 게재하며 자랑질하던 나.

하지만 오늘의 내 손엔 핸드폰이 아닌 성취감과 해방감만이 들려있었다.


앞으로도 오늘만큼만 용기 낼 수 있다면 내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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