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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e Oct 19. 2021

희망

아이는 3학년까지 친구들에게 소외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쉬는 시간이면 맞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해야 하는 삶이 고단한 아이였다. 희망을 품 시골로 이사 온 것이 아니라 희망을 상실해 온 곳이 이곳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산후우울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어요. 아이가 분리불안이 심해서 아침마다 우는데도 계속 출근어요. 남편 매일같이 싸우는 환경에서 자란 것 때문은 아닐까요? 제가 정말 잘할게요.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모든 원인이 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내심 '   '이길 바라는. 그래서 내가 변하기만 하금의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께 해성사하듯 그간의 잘못을 열거했다.


“어머님 심정은 알겠지만 아이는 타고난 거예요. 후천적인 노력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오셨어요. 골든 타임을 놓치셨습니다. 그냥 받아들이시고, 어차피 중고등 교육과정은 못 따라갈 테니 대안학교 알아보시고 지금부터 기술을 가르치세요. 지능은 올릴 수 없으니 기능이라도 올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은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낮은 인지력 때문에 가해자들에게 이용당하면 억울한 가해자가 될 수도 있어요. 늘 예의 주시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말만큼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이 있을까. 이 의사는 돌팔이라며 다른 병원을 찾아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능 때문에 학습도 떨어지는 것이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이고 불안도 높은 것이고 강박도 있는 것이고 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온 곳이 이곳이었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이고 반 인원이 열명 남짓한 이 시골 학교에서는 좀 더 세심한 선생님의 돌봄을 받을 것이고 도시 아이들보다 순진한 아이들일 테니 덜 치이지 싶다.

막상 오니 충망 구멍보다도 큰 각종 벌레 대체 어디서 들어오는지 징그럽기만 하고 기름이 떨어졌는지 미리 체크하지 않으면 밤새 덜덜 떨어야 하는 전원생활은 불편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여러 작물도 심고 꽃도 심고 하는데 나는 그저 무기력했다.


우리가 이사한 집도 작은 텃밭이 있다. 12월이었는데 땅에 뿌리 박힌 식물들은 하나같이 옅은 갈색을 띠며 말라비틀어져 죽은 듯 쓰러져있었다. 전 주인도 나처럼 무기력한 사람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저 지저분한 것들을 다 뽑아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만큼의 몸을 움직일만한 기력 없어 그냥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월이 된 어느 날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다 깜짝 놀다. 말라비틀어져 얼어 죽은 줄만 알았던 식물들이 하나씩 갈색의 외투를 벗고 초록의 새 옷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다 뽑아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그때의 나의 깨달음은 '아 우리 아이도 지금은 남들이 보기에 말라비틀어진 상태의 잡초가 아닐까. 가장 마지막에 껍질을 벗을 뿐인데 고작 열몇 살인 한 생명의 미래를 암울하게 결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이때부터 나는 다시 희망을 품고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의사들의 말에는 칼날이 박혀있었지만 발달센터 선생님들은 꽃을 품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렇게 골든 타임을 한참 놓친 5학년의 봄이 되서야 뭔가를 시작해볼 수 있었다.

진실과 현실은 의사의 말이 맞을 수 있다. 수많은 연구 사례들과 높은 신뢰도와 타당도의 갖춘 검사지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냐만은, 의사도 인간일 뿐이란 것을 간과하고 그들의 말을 맹신하며 무기력에 잠식된 2년을 보낸 것에 대한 후회는 있다.


얼마 전 터에서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면서도 웃음과 감사가 넘치는 엄마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양육하면서도 불안하지 않고 편안 수 있는지 물었다.

아이를 믿으라 했다.

약한 존재에게 그런 믿음이 어떻게 생기냐 하니 그냥 지켜보면 알게 된다 했다.

우리 집 작은 텃밭의 자연의 섭리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죽었다 단정 지어 뽑아버리지 않는다면 내 아이도 어느새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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