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큰 아이가 매일같이동생을 못살게굴고 괴롭혀서 둘째가 너무 가여워요~ 어떻게 하면 안 그럴까요? 큰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질문하는 동안 나는 어쩌면 이 해묵은 문제를 드디어 해결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흥분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머.. 큰 아이가 너무 안됐네요. 큰 아이가 집에서 많이 외롭겠어요."
둘째가 아니라 못되게 구는 큰 애가 가엾다고? 외롭겠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눈만 끔뻑거리는 사이 교수님은 바쁜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말이 떠오르곤 한다. 특히 큰아이를 훈육, 아니 야단치려는 타이밍에 말이다. 생각해보면 교수님은 고자질하는 수준의 나의 질문에서 철저히 둘째에게 기울어진 나의 속내를 엿보았을지 모른다.
최근 큰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다. 신이 지능은 부족하게 주셨지만 사춘기는 잊지 않고 공평하게 주신 덕분에 두 가지의 시너지 효과로지켜야 할 상식적인 선을 거침없이 넘어버린다. 큰 아이가 둘째에게 가하는 횡포는 더욱 거칠어지고, 부모에게도 수위를 넘나드는 반항으로 아이가 미워질 때가 많다. 내 힘으로 감당이 안될 때는 떨어져 살고 싶다는, 늘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고 옮길 생각도 없는 그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습관처럼올라와 자책감과 부대낀다.
오늘도 큰 아이 때문에 우는 둘째를 얼른 끌어안으며둘째의 마음을 대변하고 두둔하며 큰 아이를비난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때 그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큰 애가 외롭겠다는...
수긍이 되진 않았지만 자꾸 거슬리던 그 말 덕분에 나는 큰 애를 진정시키고 다독이고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아이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공격적이고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던 아이가 그제야 수그러들며 아기 같은 말투로 순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