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가족사진 속 며느리

며느리도 딸도 아닌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by aloha


여자는 내내 결혼 앨범의 딱딱한 모서리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여자의 눈에 들어온 결혼 앨범은 두 권이었는데, 비교적 얇은 것이 양가 부모님을 위해 제작된 앨범이었다. 거기에는 신랑신부 사진과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가족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신랑, 신부 중심의 결혼 앨범과 달리 철저하게 가족 안에 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 앨범들을 받기까지 결혼식을 하고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인의 도움으로 저렴한 가격에 소개받은 촬영 스튜디오라 재촉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께서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 네... 전쟁처럼 치르던 결혼식에서 내내 이리저리 모는 대로 움직이기만 했던, 그날의 사진이 가장 궁금했던 건 여자와 남편이었다. 하지만 결혼 앨범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스튜디오 직원의 사과는 난데없이 양가 부모님을 향하고 있었다. 빨리 보고 싶어 하셨을 텐데요. 아,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스튜디오 계약서에서 발견한 결혼 앨범 세 권이라는 항목이 여자는 의아했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께도 꼭 드려야 한다는 스튜디오 측의 강권에 장삿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꼭 빈말은 아니었는지 친정엄마는 내내 결혼사진을 빨리 보고 싶어 하셨다







오늘은 꼭 갖다 드려야겠다. 그래, 내가 잊지 않고 꼭 챙길게. 남편은 여자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여자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처음 앨범을 들고 온 날 여자는 남편과 함께 저녁 내내 사진을 보며 결혼식 날을 떠올렸다. 정말, 얼마나 긴장되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결혼식 날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니깐. 여보가 신랑 입장하면서 다리를 덜덜덜 떤다고 사회자가 놀리던 거 생각 안 나? 여자는 그날 사회자의 농담을 듣고서야 남편이 지금 엄청 떨고 있구나 하면서 나라도 얼른 정신을 차리자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그랬나? 어쨌든 그냥 다리가 움직인 거지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줄도 몰랐어. 빠르게 돌아가는 화면처럼 지나가버린 그날이 여자는 못내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이라도 찍어 놓으니깐 좋다. 내일은 어머님, 아버님께도 보여드리자. 부모님들도 사진 엄청 기다리신데... 하지만 그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한 권은 나오자마자 친정 엄마에게 전해 드렸고, 남은 하나는 아직 여자의 집에 남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차 뒷좌석에 놓고 갖고 내린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여자는 다음을 기약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꼭 자신의 실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앨범을 갖다 드려도 전혀 반가워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용기가 나지 않아. 결혼을 하고 시댁을 드나들며 여자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자와 남편의 결혼에 내내 싸늘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시부모님께서 결혼사진인들 반가워하실까. 그런 생각이 들면 꼭 안 드려도 될 것 같아. 달라고 하시는 것도 아니고, 물어보지도 않으시잖아. 그렇지만... 아니면 어차피 부모님께 드리려고 한 거니깐 한쪽에 치워놓으시든 어떻게 하시든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드리자. 이런 일로 고민할 필요 없어. 남편의 말은 언제나 전전긍긍하던 여자에게 큰 힘이 되었다. 깊게 생각하지 마.



아이고, 무슨 좋은 날이라고 이렇게 크게 웃고 있어요, 응? 결혼 앨범의 첫 장은 신랑, 신부의 사진이었고 그다음 장을 넘기자 사분할된 지면에 양가 부모님 네 분의 모습이 각각 담겨 있었다. 여자는 친정엄마와도 그 사진을 보면서 한참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다.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친정아버지의 미묘한 웃음을 잡아낸 촬영기사님의 노련함에 감탄했던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웃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시어머니께서도 시아버지의 표정이 낯설게 느껴지셨는지 한마디 던지신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그대로 화살이 되어 여자의 가슴에 꽂혀버렸다. 무슨 좋은 날이냐고 이렇게 크게 웃냐며 남편을 타박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시선이 그 장에서 내내 머물다가 이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내내 빈정거리는 말투를 숨기지 않으셨다. 원래 그러신 분이거나 며느리 앞에서 위세를 드러내고 싶어 하시는 분이라면 여자도 별 뜻 없이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평소 시아버지와 대화할 때도 약간 투정이 섞인 잔소리가 아니면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분이었다. 그리고 며느리 앞에서는 차라리 대면 대면하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아이고, 우리 가족이 여기 다 모였네. 그때 시아버지의 탄성이 들렸다.이야. 누구야, 이 사진 한 장 크게 뽑아서 액자에 넣어 오너라. 우리 가족사진 따로 찍을 필요가 없네. 여기 다 있어. 허허. 아이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으며 이름을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시아버지의 신이 난 목소리가 여자를 또 결혼식 날로 끌고 갔다. 친정식구들과의 사진 촬영이 비교적 빨리 끝난데 비해, 시댁 식구들과의 사진 촬영은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과 자식 넷, 그들의 배우자까지 무엇보다 손자 손녀 들까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렬로 세우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게다가 아직 어린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바빴고, 몇 명은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울기까지 했다. 그중 한 아이기가 끈질기게도 울고 떼를 썼던 것이다. 사진 촬영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고,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고 있던 여자는 10센티미터가 넘는 구두를 견뎌내지 못하고 있었다. 미소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점점 눈물이 맺혀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이 한계에 다다른 여자는 그 아이를 빼고 사진을 찍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 지연되는 시간에 촬영기사님 얼굴은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결국 눈물 범벅이 된 그 아이의 찡그린 얼굴은 여자의 결혼사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 그 사진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시부모님을 보자 여자는 그때 우는 아이를 그냥 의자에 앉혀두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이 시부모님께는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며칠 후 남편은 사진을 넣은 액자를 들고 왔다. 액자는 두 개였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우와, 고마워 여보. 엄마가 엄청 좋아하실 거야. 사진 속에는 여자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족사진이었다. 엄마, 아버지, 언니 그리고 여자 옆에 남편이 서 있었다. 아이고, 사돈댁이 이렇게 가족을 늘렸는데 우리 식구 좀 봐라. 달랑 한 한 명 늘었네. 그것도 한 명이 늘어난 건지, 도리어 한 명이 줄어든 건지 모르겠다. 겨우 네 식구가 그렇게 투닥거리고 싸웠으니... 나, 참. 결혼 앨범에 나란히 실려 있는 양가의 가족사진에 친정 엄마 역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한 것이다. 뭔가 기죽는다. 안 그러냐? 기가 죽기는 뭐가? 시누이들은 상견례 때는 못 봤는데, 인사는 한 거야? 어때 보이던? 나도 아직 제대로 본 적은 없어. 신부대기실에 있어도 아무도 축하한다는 말도 건네는 사람 없던데... 결혼식 끝나고도 그렇고 못 봤어. 떼로 덤비면 너는 찍소리도 못하겠다. 뭐? 엄마 무슨 농담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양쪽 집을 한 번 봐라, 너도 한 번 봐. 패싸움이라도 하면 우리가 꼼짝없이 지겠구먼. 여자는 소리 내어 웃었지만 지면의 꽉 채운 남편의 가족과 썰렁한 여자의 가족을 번갈아 보면서 왠지 모를 초라함을 느꼈을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것은 단지 가족수가 적은 데서 오는 초라함만은 아닐 것이었다. 여자의 가족 안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사진에서도 새어 나오는 것 같아 엄마는 두려웠을지 모른다. 가족의 빈약한 결속에서 오는 연약함. 금방이라도 깨어져 버릴 것 같은 그 관계가 화목해 보이는 상대의 가족을 괜한 두려움의 상대로 느끼게 했으리라. 패싸움이라니. 농담도 참.



결혼 앨범은 어딘가로 치워져 버렸지만, 여자의 결혼사진은 액자에 담겨 거실의 한중간에 걸려있었다. 아니 그것은 여자의 결혼사진이라기 보다 남편의 가족사진이었다. 여자는 그저 퍼즐을 마지막을 채우는 한 조각에 불과하지 않을까. 드디어 우리 가족이 다 모였구먼. 과연 부모님께 자식의 결혼을 어떤 의미일까? 의무를 다 했다는 후련함일까? 드디어 가족을 다 완성했다는 성취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월감 같은 건 어떨까? 여자의 친정 엄마처럼 불안한 가족을 평생 붙들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서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 같은 거 말이다. 여자는 생각했다. 나는 왜 불안한 나의 가족을 두고 남편의 가족에게 서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었을까? 그것도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아이고, 하나가 빠졌네. 네? 너도 너희 어머니가 조카들 볼 때 얼른 낳아서 같이 키워 달라고 하거라. 응? 무슨 소리예요? 나도 이제 애 키우는 거 졸업 좀 합시다. 그리고 애는 친정엄마가 키워줘야 편한 거지. 안 그러냐? 나는 못한다. 알겠지. 사부인이 해주셔야지.



여자는 잊고 있었다. 이 대가족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자신이 아니라는걸. 여기에서 자신은 그저 마지막 퍼즐 조각을 위해 존재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 뱃속에조차 있지 않은 아이의 양육마저 거부해 버리는 시어머니와 마지막 퍼즐 조각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 시아버지 사이에서 여자는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정 엄마에게 사위가 준 가족 사진은 어떻해 했는지 물었다. 그거, 화장대 위에 올려놨어. 거실에다가 안 걸고? 우리 시댁은 거실에 걸어놨던데. 아이고, 너희 아버지가 뭐 딸결혼 사진에 관심이 있겠어, 가족 사진에 관심이 있겠어? 그냥 나만 보면 된다. 딸사진, 사위 사진 맨날 보니깐 좋은데 뭘... 우리 사위한테 고맙다고 전해줘.


엄마, 근데 생각해 보니까 가족은 늘어난 것도 그렇다고 줄어든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대로 우리 가족은 네 명이고, 나만 새로운 가족이 한 명 더 생긴 거야. 사위는 엄마, 아버지 가족이 아닐 수도 있어. 뭐? 뭐라는 거야? 남편은 우리 가족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고생할 '나'를 도와주는 내 가족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딸의 배우자인 사위를 행여나 아들처럼 생각하지 말고, 엄마는 딸의 가족을 마음으로 지지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거 같아. 나도 우리 남편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열심히 도와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한 말이야. 여자가 숨도 쉬지 않고 내뱉았던 그 말들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식의 결혼이 부모님들께 '가족의 완성'이라는 의미 보다, '자식의 자립'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그저 자식의 앞날을, 자식이 꾸린 가정을 진심으로 축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여자의 엉뚱한 소리에도 엄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사위가 가족이 아니라는 둥 그런 싸가지 없는 소리는 그만하라고 등짝을 두들겼겠지만 결혼을 하고 유난히 생각이 더 많아진 딸을 보며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럴 때면 그저 또 시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그냥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나는 가족 안에서 며느리로 딸로 존재하지만, 그냥 '나'로도 존재하는 거야. 양쪽 가족들한테 힘들일 이 생기면 함께 헤쳐 나갈 거지만, 나는 그 '역할'로만 존재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나'로도 남고 싶어. 잘났건 못났건 그러고 싶다고.


알았어. 알았다고. 지팔 지가 흔들고 살자는 말 아니냐. 엄마가 이제 딸이고 사위고 의지 않하고 씩씩하게 살테니깐 걱정말고 니 살 연구만하거라. 그래도 된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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