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시어머니 간병은 누가

며느리도 딸도 아닌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by aloha


늦은 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여자를 보자 남편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반대쪽은 손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채였다. 응, 나도 들었어. 엄마는 별말씀 없으시던데... 남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여자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너머로 고함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니, 나도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어떻게 당장 가? 남편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 알았어. 알겠다고. 엄마한테 연락해 볼게. 끊어, 끊어, 끊는다. 좀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남편이 무슨 일일까. 게다가 남편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면 드러나는 특유의 말투가 있다. 말이 빨라지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프시다는데. 어디 가? 어떻게? 낮에 엄마한테 연락이 왔었는데 그냥 감기몸살 같다고 하시더라고. 병원은 가 보셨데? 응, 동네에 몇 군데 가 보기는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나 봐. 그래서 **누나가 병원 모시고 갔냐고 전화한 거야. 아, 부산 형님이셨구나. 부산 형님은 성격이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는 분이었다. 근데 어머님이 부산 형님네 한 달 정도 가 계신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러니깐. 엄마가 아버지 아프다고 빨리 내려가셨는데 어떻게 됐냐고. 회사고 뭐고 내일 당장 병원에 모시고 가라는데 ... 나 참... 화내면 다 해결되는 줄 아나 봐. 하여튼 성질 하고는. 토요일도 출근해야 하는 데 내가 언제 모시고 가? 회사는 외출도 조퇴도 쉽지 않아서인지 남편은 무척 난감해 보였다.



다음 날, 남편은 여자에게 결국 시아버지가 근처 종합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퇴근하고 갔다 올게. 나도 가야지. 여보는 퇴근이 늦으니깐 오늘은 일단 내가 먼저 빨리 갔다 올게. 좀처럼 아프다는 말씀을 들어 본 적 없는 시아버지라 여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도 함께 간다고 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시아버지가 입원하셨는데 첫날 며느리가 가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버님은 좀 어떠셔? 어디가 안 좋으시데? 무슨 병인 거야? 집에 들어서는 남편을 보자 여자는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무슨 병인 건 아닌데 그래도 가벼운 건 아닌가 봐. 엄마가 부산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드셨데. 그리고 엄마가 과일 갈아놓고 간 게 있어서 그것만 계속 드셨는지 몸에 무슨 수치가 높아졌나 봐. 어떡해... 일단 검사 몇 가지 더 하고 수치가 떨어지면 그때 퇴원할 수 있다 나 봐. 그나마 다행이다. 내일은 나도 일찍 정리하고 병원에 빨리 가볼게.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는 시아버지는 남편과 여자를 보자 벌떡 일어나 앉으셨다. 기운이 좀 없어 보이셨지만 다행히 평소와는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아버님, 어머님도 안 계시고 몸이 안 좋으시면 저희한테 얼른 연락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여자가 그렇게 말을 하자 갑자기 시아버지가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생 아픈 데라고는 모르고 사셨다니, 세월 앞에 갑자기 쇠약해진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울 실 만도 했다. 시어머니도 많이 피곤해 보이셨다. 원래 가냘프고 체력이 약한 분이라 비록 이틀이지만 병원살이가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애들 때문인지 형님들은 아직 오지 못했다고 했다. 내내 두 분이서 입원실을 지켰을 생각을 하니 여자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시부모님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이 아프니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내내 '우리 며느리'하면서 너를 찾으시더라. 일하느라 피곤하겠지만 섭섭해하지 않으시게 자주 들여다보거라. 알겠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어머니는 여자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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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부모님 병간호는 며느리가 해야 하는 건가? 그럼 내일부터 병원에 가서 병간호해 드려야 하는 거야? 어머님께서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겨 드실 텐데 어머님 밥도 해서 가야 하나?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는 죄다 꺼내 봤지만, 여자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의 시댁에서 살다시피 하시는 형님까지 병원에 안 오시다니. 게다가 부산 형님은 어머님께서 육아로 힘든 딸을 도와주려고 거기까지 가신 건데... 여자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결국 다음 날 새벽 여자는 시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의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배를 찢는 통증에 방바닥을 구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이다. 너 시아버지 병간호 안 하려고 입원한 거 아니야? 진짜 아픈 거 맞아? 여자가 정신이 들었을 때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생각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일을 떠맡게 된 것이 억울해서 인지 여자의 언니는 애써 돌려 말하지 않았다. 엄마 우리 빨리 집에 가야 돼. 아까는 아파서 정신이 없었는데, 우리 시아버지 지금 이 병원에 입원해 계신단 말이야. 만약에 어머님이 나를 보기라도 하면 어떻게. 여자의 팔에 꽂혀있는 수액은 아직 3분의 1도 채 줄어들지 않았는데, 여자는 거의 친정엄마에게 매달려서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운 여자의 머릿속에서 언니의 말은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서방도 내가 아버님 간병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우리 언니도 그러는데 시댁 식구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엄마, 나 이제 어떡해? 완전 나를 다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거 아니야. 아픈 거를 어떻게 해 그럼? 그걸 니가 조절할 수 있어? 그냥 얼른 죽 먹고 약이나 먹어. 무슨 큰 죄졌다고 약도 다 안 맞고 도망을 친 거야. 너는? 엄마, 나도 요즘 일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단 말이야. 오늘은 하루 날렸지만 당장 내일은 출근도 해야 하고... 여자는 누가에게 랄 것도 없이 아픈 배를 웅켜 쥐고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는 울먹이는 사죄의 말이었고, 때로는 당당한 자기변명이기도 했다.



이제 정말 괜찮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에게 여자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내일은 출근도 할 거야. 하지만 이내 여자는 풀이 죽고 말았다. 내일 출근할 수 있으면 시아버지 병원도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병원에서는 며느리가 내내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어쩌지... 여자는 저 혼자 묻고 저 혼자 대답한 말들을 삼키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미안해 여보. 퇴근하고 병원을 오가는 며칠 동안 남편도 많이 피곤해 보였다.



시아버지의 퇴원 소식을 들은 건 주말 내내 병상을 지킨 남편이 돌아온 일요일 밤이었다. 오늘 누나 들도 왔다 갔어. 애들 때문에 힘드셨을 텐데 왔다 가셨구나. 여보 미안해. 나도 갔어야 하는데... 당신 혼자 고생이 많았어. 그런데 말이야. 여자는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혼 초 남편이 그 흔한 실비보험조차 없다는 얘기를 했을 때 여자가 조심스럽게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그럼 아버님, 어머님도 보험이 없으셔? 아마 없을걸. 나한테도 한 번도 보험 가입하라는 얘기하신 적 없고, 나도 부모님 보험 얘기는 들어 본 적 없어. 그럼, 여보가 병원비도 다 부담한 거냐고 여자는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을 꺼낸다면 정말 남편에게 미움을 받을 것 만 같아 여자는 겁이 났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당신이 힘든 것도 나는 마음 아픈 거라고 여자는 말하고 싶은 거였는데... 자식이 부모님 병원비 대는 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당신이 모든 부담을 짊어지면 당신도 너무 힘들지 않을까?



여보, 솔직하게 말할게... 만약에 말이야 나중에 아버님, 어머님이 아프시더라도 나는 간병할 자신이 없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위로 딸 셋, 사위 셋, 아들까지 일곱 명을 제치고 '며느리'이기 때문에 그 일이 내 차지가 된다면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당장 어머님, 아버님께서 형님 애들 줄줄이 다 키워 주시고, 반찬도 다 해주시고 하시는 건 형님들이 좀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께서 희생하시는 거잖아. 그럼 '딸'이라도 부모님이 어려울 때 도와드리는 게 맞다고 봐. 우리 부모님은 아버님, 어머님과 다르게 건강도 안 좋으셔서 두 분 다 수술한 적도 있으시고, 나도 간병도 해 봤는데 그거 자식이라도 쉽지 않더라. 하지만 내가 부모님 노후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건 우리 친정에 아들이 없어서야 아니야. 우리 엄마, 아버지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사셨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인 거지. 하지만 여보도 우리 언니랑 내 사정 알잖아. 당장 우리 자신 하나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 형편인 거. 그런데 내가 양가 부모님을 다 챙기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 나는 또 어떻게 살아?


내 생각에는 부모, 자식 간에는 이름으로 떠안을 일도 없고, 이름으로 나 몰라라 할 일도 없는 것 같아. 나는 '딸'이지만 결국에는 우리 부모님을 책임져야 할꺼야. 그러니깐 여보도 '아들'이라고 혼자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누나들한테 같이 하자고 하면 좋겠어. 정작 시댁에 일 있을 때는 형님들 아무도 안 계신 거 나는 이해하기 힘들어.



결국 여자는 이 말을 남편에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래? 결국 언니에게 털어놓게 된 여자의 이야기에 언니는 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너네 형님들도 당연히 마음은 그러시겠지. 하지만 친정을 챙기자면 남편 눈치, 시댁 눈치가 보이지 않겠어? 하지만 어머님, 아버님께서 형님들 결혼하시고 많이 도와주셨다고 들었는데. 아니 애 키우는 게 보통 일이야? 게다가 *서방도 누나들이 애기 낳으면 바쁜 매형들 대신해서 병원 드나들면서 잔심부름 다 해 줬다는데. 내가 듣기로는 정말 최선을 다하신 것 같았어. 하지만 애 키우는 거 도와주고, 반찬 해주시는 것도 다 당신 딸 힘들까 봐 도와주신 거 아니냐고 하면 뭐랄 거야. 어차피 그 건 집에서 주부들이 다 하는 일이잖아. 결국 시부모님 아프시면 간병이니 뭐니 힘든 일은 다 며느리 차지 되는 거야. 아주 냉정한 판단인데... 냉정한 판단은 무슨, 내가 바로 경험자 아니냐. 아니 그럼 우리 부모님은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엄마, 아버지 스스로 준비하셔야지. 이젠 그런 세상이야. 너나 나나 우리는 자식도 없는데 그럼 너는 늙어서 어떡할래? 여자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는 언니를 보면서 동의할 수도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니가 나를 좀 모시던지... 여자는 갑자기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에다가 독신인 언니까지 모시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나도 낼 모레 마흔이야. 나도 이제 언니랑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그럼, 미리 겁먹지 말고 그냥 닥치면 닥치는대로 해. 어째 갈수록 더 어렵냐... 여자는 갈수록 험난해지기만 하는 시댁이라는 산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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