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밥벌이의 고단함 + 밥하기의 고단함

며느리도 딸도 아닌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by aloha


여자가 남편과 함께 살게 된 후 첫 월요일, 토요일에 이사를 했으니 사흘 만에 여자는 결혼을 실감했다. 여자는 원래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8에서 9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더 늦을 때도 많았다. 그에 반해 남편은 대략 6시 3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저녁밥은 어떻게 하지? 응, 내가 알아서 할게. 여자의 걱정에 남편은 별거 아닌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자신의 짐을 챙겨 나오기 전까지 남편은 35년 동안 시어머니의 밥을 먹고 살아왔다. 학교를 갔다 오든, 회사를 갔다 오든 전업주부이신 시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끈한 밥상이 남편을 기다렸을 것이다. 남편, 뭐 할 줄 아는 요리라도 있어? 응, 김치볶음밥 잘해. 하지만 여자가 집에 와서 발견한 건 라면의 흔적이었고, 냉장고에는 김치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요리를 할 줄 안다고 해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이 얼마나 피곤하겠니? 무슨 정신으로 밥을 해 먹겠어? 니가 더 신경 써야지. 친정엄마의 말에 여자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남편은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고, 그다음 날에는 동네 김밥 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들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날부터 여자는 밥과 시간과의 전쟁을 벌였다. 밥은 미리 해서 한 공기씩 담아 냉동해두고, 저녁 반찬은 출근 전에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틈틈이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여자의 일상은 날이 갈수록 더 정신이 없었지만 냉장고 속의 반찬은 영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 반찬 한 가지 만드는데 손이 얼마나 가는지 내가 이제 알았어.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자에게 요리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엄마는 늦은 나이까지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에 여자는 집안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맞닥뜨려보니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이건 뭐, 메뉴 정하고 장 보는 것부터 해서 재료 다듬어야지, 요리해야지. 반나절은 뚝딱이야. 다 하고 뒷정리에 청소까지 하면... 아휴 엄마, 엄마는 밖에서 일도 하고 어떻게 그걸 다 해냈어? 여자의 질문에 엄마는 그냥 빙긋 웃고 말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엄마의 반찬이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쌀이며, 참기름, 고춧가루, 과일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역국, 찌게, 장조림, 마른반찬 같은 반찬까지 들고 오셨다.



하지만 여전히 냉장고 속의 반찬은 별로 줄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는 반찬집에서 반찬을 사 나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자나 엄마의 음식이 입게 맞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여자의 엄마는 어디 맛집에서 사 오셨다면서 곰탕, 불고기, 소고기 국 같은 것도 사다 주셨다. 하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남편은 아무래도 돌처럼 얼어있는 밥과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반찬들을 떠올리면 입맛이 돌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일일이 데워서 저녁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까지 하자면 피곤했겠지. 그러면서 결혼의 장점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다며 억울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눈에 봐도 호리호리한 남편이 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웠을 생각을 하면 여자는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여보, 일하고 와서 피곤하고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도 밥을 챙겨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퇴근하고 장 보러 가고, 출근 전에 반찬 해 놓는 거 자기도 알잖아. 여자는 출근 전 요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말이면 파나 고추, 마늘 같은 식재료들을 잔뜩 사다가 씻고, 손질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시간은 모자랐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반찬 해나르는 거 자기 몰라? 우리 엄마는 그거 다 들고 버스 타고 오신단 말이야. 내가 자기 밥 못해 줄까 봐 엄마가 애가 타신데. 나도 당신 결혼하고 제대로 못 챙겨 먹는 거 같아서 걱정이란 말이야. 그걸 봐서라도 그냥 좀 챙겨 먹으면 안 돼?



남편은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입이 짧은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여자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한 적 없이 언제나 손사래를 치며 본인이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가 보기에 남편은 가만히 두면 라면 한 봉지 끓여먹고, 과자와 초콜릿을 디저트로 먹고 만족스러워할 사람이었다. 음식을 배달시킬 때면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여자 것도 같이 주문해서 남겨놓기도 하는 자상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것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장을 보러 함께 가면 여자는 언제나 남편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반찬으로 뭐가 좋은지 묻곤 했다. 자기는 뭘 좋아해? 그러면 남편은 언제나, 난 특별히 좋아하는 거 없는데, 지금은 배가 불러서 아무 생각이 없는데...라고 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여자에게 남편은, 나는 밥이랑 반찬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데...라고 말했다. 여보,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나는 당신이 뭘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고, 아무거나 잘 먹지도 않는 당신한테 무슨 반찬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신이 대답이라도 해주면 내가 좀 덜 힘들 것 같단 말이야. 지금 마트 안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알아? 여자는 갖가지 과자와 음료수, 빵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는 그들의 카트를 보며 결국 소리쳤다. 나 힘들단 말이야. 좀 도와주면 안 돼? 여자는 점점 히스테리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여자를 압박하고 있었던 것은 과연 뭐였을까? 당연히 무엇보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여자는 일 때문에 남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친정 엄마의 전화도 받으면 여보세요, 하는 말보다 먼저 *서방 밥은 잘 챙겨 먹이냐? 말이 먼저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여자는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을 잘 챙기는 며느리로 보이고 싶었던 것 것은 아닐까?



우리 집은 멸치볶음도 달짝지근하면서 집안에 넣었을 때 바사삭 부서지지 않으면 아무도 입을 안 댄다. 멸치 하나를 입에 넣고 연신 맛있다고 하는 여자에게 시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여보는 음식 솜씨가 좋은 어머니의 아들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입이 짧은 거였어? 그런 아들인 줄 아시면서 어머님께서는 그동안 반찬 한통 보내주지 않으셨어요? 여자는 밥을 먹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님 음식이 이렇게 맛있어서 **씨가 제가 한 반찬을 안 먹었나 봐요. 뭘, 그럴 리가. **이는 원래 이것저것 다 잘 먹고 그런 애는 아니야. 어머님 음식은 저희 친정엄마 반찬이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그때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어떻게 다른데? 하고 물으셨다. 여자는 그저 직장 상사에게 별 뜻 없이 던지든 몸에 밴 아부 같은 거였는데 갑자기 구체적인 질문을 받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깐.. 음.... 어머님 음식은 전문가 같은 맛이나요. 반찬집 하시면 대박 날 것 같은데요. 하하 여자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의 비굴함뿐만 아니라 언제나 딸을 위해 애써오신 친정엄마까지 음식 못하는 엄마로 만들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어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자꾸 꼬이기만 하는 걸까. 정작 시어머니는 아들이 밥을 먹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는데, 왜 나랑 우리 엄마만 이렇게 애가 타는지 모르겠어. 정작 나는 하루 종일 뭐 먹는 줄 알아? 남편은 직장 다니니깐 점심이라도 누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먹지. 정작 나는 혼자 일하니깐 밥시간도 제대로 못 지키고 미루고 미루다가 대충 때우는 게 끝이라고. 그러면서 남편 밥 걱정에 동동거리고, 우리 엄마까지 끌고 들어가서 시어머니 비위 맞추느라 동동거리고 ... 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음식을 아끼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자식한테 음식 아끼는 부모가 어딨어? 요즘 못 들어봤어? 시어머니가 반찬 싸다 주셔서 버리는 게 일이라고 다들 그러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식을 먹으라고 또 싸주고 또 싸주고 하는 게 부모 마음이야. 젊은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조금만 입에 안 맞으면 갖다 버리고 사 먹는 게 낫다고 하지만 어디 그 정성이 거기에 댈 거야? 근데 사부인이 무슨 음식을 아낀다는 말이야? 아니, 가까이 사시는 형님 있잖아. 맨날 시댁에 오시거든. 그렇게 오면 저녁에 갈 때는 저녁 반찬까지 다 싸가지고 가나 보더라고. 시어머니 말씀하시는 거 들어오면 말이야. 근데 우리는 반찬 한 통을 안 주셔. 내가 밖에서 일하면 당신 아들 밥은 제대로 먹는지 궁금하지 않으실까? 아니면 일하기도 힘들 텐데, 반찬 할 시간이 어딨겠냐 하시면서 한 번은 주실 법도 한데...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여자는 '아차' 싶었다. 매사에 별말씀 없는 친정 엄마였지만, 여자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음 날 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실 분이기 때문이다. 근데 엄마, 이제 반찬은 안 해오셔도 돼요. 진짜로, 그냥 적당히 먹기로 했어. 반찬 이것저것 해 놔도 찾아 먹지도 않고, 버릴까 봐 아까워서 맨날 나만 꾸역꾸역 먹고 있단 말이야. 알았지? 그래, 알았어. 그냥 요즘은 시어머니 반찬 싫다는 며느리들도 있느니 깐 너희 시어머니도 조심스러워서 그러실 수도 있고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아. 자식 입에 들어가는데 아끼고 말고 가 어딨어. 엄마가 해주면 되잖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응, 고마워. 근데 시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아서 *서방은 엄마 음식 입에 안 맞을 거야. 엄마는 맨날 건강 생각한다고 설탕 빼고, 기름 빼고, 조미료 빼고 그러잖아. 그럼 무슨 맛으로 먹어? 엄마가 섭섭해하실 수 있지만 여자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꾸역꾸역 먹어도 번번이 버려지는 엄마의 반찬을 보면 엄마의 시간과 정성까지 버려지는 것 같아 여자는 마음이 아팠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여자와 남편은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여자는 뭔가 자신에게 갑자기 주어진 의무에 정신을 못 차린 건지도 몰랐다.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흠 잡히고 싶지 않다는 조급함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시댁에 대한 섭섭함이 불러낸 오기까지. 여자를 정신없게 만든 그것들에서 벗어나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고 있었다.



나는 밥벌이의 피곤한 뿐만 아니라 밥 차리기의 피곤함도 절실하게 알고 있어. 객지 생활도 했고 독립해서 살면서 매끼 챙겨 먹어서? 남편은 여자가 또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저러나 하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아니 어릴 때, 엄마가 퇴근하고 오시면 항상 말씀하셨어. 엄마 잠깐 숨 좀 돌리고... 새벽에 나가셔서 퇴근하고 오면 얼마나 피곤하셨을까. 근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배고프다고 엄마한테 막 짜증 내고 그랬거든. 빨리 밥 달라고. 근데 엄마도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 아마 숨을 헐떡이며 밥을 하셨을 거야. 내가 커 가면서 좀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 여보, 나는 그러고싶지 않아. 나는 이제 여보가 뭘 먹든 너무 조바심치지 않기로 했어.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기는 거 아니야? 여보 건강까지 마치 내 책임이었던 것 같고 잘 챙기지 못하면 누가 뭐라고 할 것 같고 막, 뭐랄까... 쫒기는 기분 이었는데. 생각해 보니깐 나는 나 자신도 잘 못 챙기고 있더라고. 응, 여보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너무 걱정하지마.



하지만 결국 여자는 일찍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직접 하기로 했다. 남편이 여전히 라면과 배달음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편은 반찬이 많거나 맛있는 반찬을 바라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금방 준비한 따뜻한 저녁밥이 그리웠는지 여자가 해주는거면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결혼을 하면 부부가 따뜻한 저녁상에 마주 앉아있는 일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 했겠지. 그것마저 한 쪽이 희생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했는데 매일 저녁을 챙겨먹어야 하는 고단함이라니. 적잖게 당황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여자도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남편은 주말에는 자기가 밥을 하겠다고 먼저 나섰다. 메뉴는 비록 김치볶음밥과 라면의 돌려 막기라도.



아... 결국 결혼은 누구를 위한 걸까? 여자는 문득 궁금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충분히 행복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 지나가는 개도 웃지 않을까, 여자는 애써 흘러나오는 쓴 웃음 참고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그것뿐이네. 당신과 함께 있는 것 그것밖에 없네. 결혼의 좋은 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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