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결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by aloha


세상에는 그 이름 만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 딸, 시어머니, 며느리, 아내... 그런 이름으로 불려지는 그 사람들은 사실 어떤 사람들일까. 모진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엄마'라는 이름만 들어도 목이 뻐근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딸... 이런 전형적인 수식어에 가려진 진짜 모습 말이다. 아마도 그 진짜 모습에는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 것이다.


여자는 겁이 많은 딸이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겁인지 생각해 보자면 여자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엄마는 인생에 순응하는 엄마였다. 아니 자신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한 엄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여자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는 여자의 집에 와서 한 두 달을 계시다가, 시골 외삼촌 네로 가셨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자의 집으로 오는 생활을 내내 하셨다. 그러니깐 여자의 집에 계속 계셨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시골로 가실 때면 여자도 그 억센 손에 이끌려 함께 가야 했다. 부모님은 모두 새벽이면 일터로 나가고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왔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집은 여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의 집 문간방을 전전했으니 사춘기가 지나고 여자는 언제나 외할머니가 얼른 시골로 내려가시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되고 여자는 집안일도 할 수 있었고, 어설프게나마 자기 자신도 챙길 수 있었으니 오히려 외할머니가 만들어 내는 집안의 잡음과 잔소리가 마음을 더 무겁게 그껴졌던 것이다. 여자의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방에 여자와 외할머니, 엄마, 언니가 몸을 옆으로 세우고 칼 잠을 자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밤이면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자는 서로 다른 음역대의 멜로디가 화음을 이루듯 다양한 코골이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노래 삼아 생각에 잠기 곤 했었다.







여자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네 명의 외삼촌의 집을 떠 돌 때 느껴지던 분위기를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불청객을 바라보는 눈빛을 어린 여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외할머니가 돌아올 집은 도시 변두리의 작은 문간방에 살고 있는 막내딸의 집이었다. 때때로 집 앞 골목이 왁자지걸해 뛰어나가 보면 여자의 외할머니가 동네 노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언제나 그 시작은 '왜, 딸네 집에 와있나? 아들이 없나?' 하는 질문 들이었다. 그것은 가난한 동네 노인들의 괜한 텃세이거나 시비 같은 것이었다. 그럼 대찬 외할머니는 지지 않고 언제나 '아들이 없기는 와 없나. 장승같은 아들이 넷이나 있지' 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동네에 나가기도 여의치 않으셨는지 내내 집에만 계신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은 외할머니는 여자에게 글자도 가르쳐 주고 옛날이야기도 해주셨다. 그 이야기는 글자를 배우다 들켜서 할머니의 엄마에게 싸리 빗자루로 맞은 이야기도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고 내내 투닥거리는, 게다가 누구네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딸에게 의탁해 계시는 것이 편했겠냐 만은 그때 할머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성격이 대차고,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며느리들은 못살겠다고 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는 재혼을 하고 여자의 엄마를 낳았다. 그러자 외삼촌들은 재혼한 외할머니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모양인지, 아내의 푸념을 핑계로 외할머니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여자가 고등학교 2학년쯤이 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골목에서 외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동네가 떠나가 듯 들리고 있었다. 또 동네 노인들과 시비가 붙었나 싶어 얼른 뛰어나가 보니 외할머니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 옆에는 집에서 쓰던 밥그릇이며 반찬통 숟가락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는데, 아이고 우리 아 배고플 텐데.... 이를 어쩌노. 빨리 밥 갖다 줘야 하는데. 거의 흐느낌에 가까운 할머니의 고함소리만 텅 빈 골목을 울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지나간 시간이 다 아픔 이기기만 하다면 그 사람의 머릿속은 어떤 기억들로 채워져 있을까. 그것은 빈 공책 같은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가끔 자신의 머리가 텅 비어 버린 걸 느낄 때가 있었다. 애써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 그런 순간을 마주 할 때마다 여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여자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외할머니는 더 이상 시골 외삼촌 네로 내려가지 않으셨다. 내내 외삼촌들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던 여자의 엄마는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하게 수험생을 벗어난 여자가 외할머니를 돌봐야 했다. 엄마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밖으로 돌고 있었고 여자의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건 여전히 엄마뿐이었다. **이 데리고 다니면서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지가 이제 와서 할머니를 모른 척하면 안 되지. 외삼촌의 목소리는 전화기를 넘어 여자의 귀에도 들려왔다. 아무도 여자에게는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것은 여자를 키워줬던 외할머니에 대한 당연한 도리 같은 것이었다. 아들들의 집을 떠돌며 며느리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여자의 손을 놓지 않았던 외할머니였다. 아버지가 달라 키우는 내내 안쓰러웠던 막내딸. 그 딸의 어린 딸은 집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외할머니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 누군가 의견을 물었어도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하루 종일 밥을 달라고 했다. 밥 안주냐. 배고파 죽겠다. 사람을 굶겨 죽일려고 저 못된 것이 밥도 안 주고. 밥상을 치우고 앉을라치면 외할머니는 또 악을 썼다. 잠시 잠잠해졌나 싶으면 아무 옷이나 마구 껴입고는 집에 가야 한다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외할머니의 양쪽 발에는 가각 다른 신발이 끼워져 있었다. 할머니, 어디 갈려고 그래? 여기가 집인데. 응? 아, 나는 집에 가야 해요. 해질 때 다 돼서 빨리 가야 한단 말이오. 여자가 외할머니 팔을 붙들고 끌어 봐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는 힘이 장사처럼 세져서 여자의 손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뿌리쳐졌다. 실랑이를 벌인 지 한 참 만에야 여자에게 눈길을 준 외할머니는 근데 아주머니는 누구요? 하고 묻곤 했었다. 여자를 빤히 보고 있던 외할머니의 눈. 주름이 자글자글 한 얼굴에 난 작은 구멍 두 개가 그저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때 어디를 헤매고 계셨던 걸까. 여자가 힘이 다 빠져서 털석 주저앉을 때면, 그런데 밥은 안 줄 거요? 하는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때 여자를 괴롭히던 건 육체적 피곤 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바심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할머니만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공부도 해야 할고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 말이다. 어둑한 방에서 외할머니와 둘이 마주 앉아 있으면 여자는 자신의 미래마저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여자의 죄책감만 깊어져 갔다. 그때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자의 외할머니는 결국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여자가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닐 때였다. 100살이 멀지 않은 외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지는 것 말고는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식으로서는 더 힘든 일이었을까. 매일 저녁 전화통을 붙들고 울먹이는 엄마에게 외삼촌들은 별 말이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요양원에 가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엄마를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요... 돌아가면서 모시는 게 더 낫잖아요. 하지만 결국 외할머니는 요양원에 가셨고, 침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고관절 뼈가 부러져 돌아가셨다. 끝까지 수술을 고집하며 외할머니의 병상을 지키던 엄마를 여자는 기억한다. 퇴근 후에 병원에 드나들며 여자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할머니가 수술을 받고 무사히 일어나기를 바랬을까 아니면 여자의 엄마가 이제 그만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기를 바랬을까. 무거운 짐이 라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아직도 우리 엄마가 지금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혹시 엄마가 저 작은방에 누워 계시는 건 아닌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 볼 때도 있어.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때 일을 떠올리는 여자에게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며칠 후, 이른 아침 여자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여자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슬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기도 때문인 것만 같아 엄청난 죄책감에 주저앉고 말았다. 장례식은 철저하게 큰외삼촌과 그의 장남인 사촌오빠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큰 특실에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졌고, 장례식장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곳에 여자의 자리는 없었다. 여자는 기분이 이상했다. 외할머니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건 여자였는데, 누구보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것도 여자였는데... 여자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펑펑 울 수 있는 자리도 없는 상황이 그럴 생각도 없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외할머니는 여자에게 아픈 기억이자 슬픔이었고 죄책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외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글자는 글자라기보다는 그림 같았다. 학교에서 들어가면서 할머니의 글자는 다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싸리 빗자루로 맞아가며 몰래 익힌 외할머니의 그 글자들을 여자는 차마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 그런데... 그때 나는 사실 힘들었어. 응, 그래. 외할머니한테 하나도 안 고마웠어. 외할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도 너무 초라해서 부끄러웠어.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돌봐주니깐 이쁘고 반들반들해 보였는데 나만 꾸질꾸질 한 얘 같았단 말이야. 그때는 엄마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너희들을 돌봐 줄 정신이 없었어.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엄마의 목소리는 낮고 기운이 없었다. 내내 착하기만 하던 딸의 말이 낯설게 느껴져서 일까.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외할머니한테 엄마가 나를 왜 낳았냐고 물은 적이 있어. 내가 태어나서 엄마는 정말 행복했을까 궁금했거든. 오히려 내가 태어나서 할머니도 너무 힘들고, 엄마도 너무 힘들고... 사실은 나도 너무 힘들었으니깐. 그러니깐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어? 그런 말 하면 못쓴다. 서방 때문에도 얼마나 애태우고 사는데, 니까지 그런 말 하면 너희 엄마는 무슨 낙으로 살겠냐. 그러면 못쓴다고 막 혼내셨어. 엄마가 그러셨구나. 엄마의 눈은 어느새 외할머니를 찾아 헤매듯 먼 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힘이 쭉 빠지는 거 같더라고. 응? 할머니도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시는 거잖아. 왜 다들 그렇게 힘든데도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80년을 살아도 모르시다니. 엄마의 눈은 다시 돌아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옛날 어린 여자를 보듯이. 어리석은 아이를 보듯이. 나는 외할머니한테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어. 사실은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게 싫었거든. 우리 집에 오지 마시라는 말을 못 하는 엄마도 미웠어. 나를 키워주신 게 아니라 엄마를 도와주신 건데 다들 나한테만 보답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외삼촌들도 다 미웠어.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너무너무 미웠어. 그래서 그때 나는 결심했던 거 같아. 이 담에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 같은 건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야. 가족이 함께 사는 건 끊임없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래서 서로를 미워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만드는 일 같았거든.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는데 말이야.







가족은 서로 의지 하는 관계가 아니야. 나는 산다는 게 마치 멈추면 부서지는 수레를 달리게 하는 것처럼 계속 바퀴만을 굴려대는 기분이었어. 가족을 유지한다는 게 말이야... 쉴 새 없이 내 역할만을 해내야 하는 그런 기분 알아, 엄마? 애당초 왜 수레가 출발했는지 조차 모른 채 부서지지 않으려면 자갈 길이든 돌 밭이든 계속 굴려야 하는 거. 그런 기분 말이야. 나는 사실 멈추고 싶었어. 나는 더는 굴러가고 싶지 않았다고. 그냥 부서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단 말이야. 그 힘든 시간을 견뎌왔는데 도대체 뭐가 남은 거야? 나는 궁금해. 우리 가족 중에 과연 누가 행복했을까 하고.



여자는 불행해질까 봐 항상 겁이 나는 딸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딸이었다. 여자의 엄마는 끊임없이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야' '그래도 우리는 지금 함께 있잖아, 라고 말하는 엄마였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 너라도 말이야'라고 말하는 엄마였다.



그래서 여자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결혼을 생각했을 때 엄마를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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