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이름의 부부

결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by aloha


아버지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여자의 엄마는 전래 동화나 되는 것처럼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를 끄집어 냈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지금 여자에게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기억되었다. 전쟁 같은 그 시절에 몇 안 되는 평화로운 풍경으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너네 아빠가 내가 적금 탄 돈을 갖고 나가서 오토바이를 사가지고 여자랑 놀러를 간 거야. 한 번은 가죽 잠바를 사 입은 적도 있더라. 내 참. 내가 아등바등 일해서 적금 부어놓으면 기를 쓰고 뺏어서 들고나가지. 그래서 오토바이를 사서 놀러 갔다고 하니 내가 너무 속이 상해서 시골로 내려가 버렸는데... 아니, 그 여자랑 너희 언니를 데리러 온 거라. 이제 자기네 셋이 살 거라나.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도장 찍자고 하더라. 그때 도장을 찍었어야 하는데 내가 겁이 나가지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 그거뿐이야? 하루는 집에 있는데 어떤 노부부가 찾아와서는 너네 아빠 이름을 대더니 나한테 여동생이냐고 묻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깐 너네 아빠가 자기 딸이랑 결혼한다고 집으로 인사를 하러 왔다나. 그래서 물어물어 형편이 어떤가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 아이고 내 참. 형편이 어떠냐고? 에라이, 손바닥만 한 문간방 겨우 하나 얻어서 밥도 겨우 먹고 살 때였다... 그때가. 내가 참... 기도 안 찬다. 맨날 돈은 없지. 그래서 이리저리 이사 다니느라 고생고생을 하는데 가는데마다 여자가 붙어가지고... 아이고 내가 고생한 거 말로 다 못하지... 암... 못하지 못해


아니... 엄마가 다 말하기 숨차다면 내가 더 해줄 수 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너네 아빠가'로 시작하는 그 이야기들은 여자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눈물에 번진 뿌연 여자의 유년 시절의 기억은 집을 나서는 아버지와 그걸 말리는 엄마의 모습으로 채워져있었다. 기어이 못 나간다고 말리는 엄마도 집안 물건 대부분이 방바닥에 패대기쳐져 박살 나고 나면 더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다 부서진 살림 살이들 속에서, 엎어진 밥상을 앞에 두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많은 밤들을 엄마는 여자에게 그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버텨 왔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에게 그것은 포탄이 빗발치던 전장에 잠시나마 찾아온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잠시 한숨 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여자는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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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부모라는 이름의 어떤 부부가 사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여자는 가족, 사랑, 믿음, 희망 같은 액자 속의 말보다 빚, 바람, 외박, 도박, 이런 단어를 먼저 배웠던 것 같다. 천정에 간장 자국이 아직 선명한데 밥상은 또 엎어지고 또 엎어졌다. 어린 시절 집안의 물건은 대부분 다 박살이 나서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 없었다. 다 때려 부숴버린다. 다 불 싸질러버린다. 다 죽여버린다... 어린 여자가 동요처럼 많이 듣고 자란 것은 이런 말이었다. 엄청난 공포에 몸을 떨어야 하는 시간들이었지만 여자는 그때 아버지를 증오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에게 아빠가 나가게 그냥 놔두면 안되냐고 물었다. 우리가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우리랑 함께 있기 싫어서, 밖에 더 좋은 사람이 있어서 갈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니깐 엄마가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안 되는 거야? 어린 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린 시절 여자는 항상 엄마를 보고 있었다. 그건 때론 뒤돌아 흐느끼며 떨리는 등이었고, 때론 설거지통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손이었고, 때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얼굴을 감싸고 있는 팔이었다... 근데 엄마... 엄마도 아빠처럼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어.


여자는 착한 아이였다. 말도 잘 듣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다들 아이고 착하다... 누구누구는 다 컸네 ... 하며 여자를 칭찬했었다. 하지만 그 칭찬에는 과연 여자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을까. 그저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는 아이를 보는 안도감 정도였을 것이다. 어린 여자는 가질 수 없는 것에 울거나 떼쓰지 않았고 순순히 포기하거나 순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들은 그저 부모님이 자신을 봐주길 바라서였는데... 착한 아이가 되어 갈수록 집안에서 여자는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엄마 그거 기억나? 나어릴 때, 우리 공장에서 살 때 말이야. 바나나랑 빵게를 아빠가 창고에 숨겨 놨던 거. 그때는 대게를 잘 몰라서 다 빵게라고 불렀잖아. 아빠가 김양 준다고 빵게랑 바나나랑 사 와서 창고에 숨겨 놨는데 엄마가 찾아냈잖아. 아, 그거. 기억나지. 내가 옛날부터 너네 아빠 덕분에 형사 아니었냐.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창고에서 너네 아빠가 얼릉거리길래 들여다봤지 뭐. 나는 자다가 와장창하는 소리가 나서 벌떡 일어났던 거 같은데.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뛰어나왔지. 그때 바나나며 빵게가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엄마, 나 그때 바나나랑 빵게 실제로 처음 보는 거였거든. 그 시절에 엄청 비싼 거 아니었어? 그걸 김양 먹인다고 사 온 아빠도 참...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와도 비싸서 안 사 왔을 텐데 말이야. 너무 자상한 거 아니야. 자식 준다고 그런 걸 사 왔을까. 근데 그걸 엄마가 찾아냈다고 마당에 다 패대기 쳐버리다니... 아빠도 참. 아깝지도 않았나 봐. 엄마가 마당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나는 사실 그때... 사흘이 멀다 하고 있는 일이었으니깐, 뭐. 그냥 그 바나나가 너무 먹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사실은 나중에 주워서 먹었어.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 너무 철없었네. 그치? 지금도 가끔 꿈을 꾸거든. 바나나랑 대게가 팝콘 튀기듯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런 꿈 말이야. 그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때 바나나를 주워 먹은 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리나 봐. 엄마한테 미안하고.... 어쨌든 옛날부터 아빠는 끝없이 감추고 엄마는 끝없이 찾아내려고 했어. 그게 사람이든 사실이든. 그게 물건이든 음식이든 뭐든. 엄마는 도대체 왜 그랬어? 그냥 이혼하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아무리 찾아내고 또 찾아내도 그게 엄마 차지가 될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거야? 나는 이제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아. 그냥 이해가 안 돼. 스스로를 고문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아.



남편이 돼서, 아버지가 돼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가정을 이뤘으면 거기에 충실해야지...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는 엄한 표정이 되어 마치 눈앞에 누군가에게 훈계하고 있는 것처럼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 안돼? 하지만 여자의 질문에 엄마의 얼굴은 금세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자신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사실을 대해 내내 순종적이었던 딸이 의문을 던진 것이다. 싫다잖아. 부인도 자식도 너무너무 싫다잖아. 그렇게 싫지 않다면 한평생 그렇게 밖으로 만 돌 수는 없지. 안 그래? 그럼, 그렇게 싫으면 우리를 두고 가버려야지. 너네 아빠는 가지도 않잖아. 그래서? 아빠가 가지 않았다고 해서 엄마는 무슨 희망이라도 품고 이제껏 살고 있는 거야? 엄마는 좀 순진한가 봐. 나라도 안가. 생활비 안 줘도 밥 차려주지, 빨래해주지, 남들 보기에 멀쩡하게 가정 이루고 사는 사람으로 보이지, 뭐가 불만이라고 가? 이혼하면 귀찮고 재산도 분할해 줘야 하는 데 분할할 재산이 어딨어. 나라도 안 간다. 안 그래? 엄마가 어리숙한 거라고. 사람 봐가면서 바랄 걸 바래야지. 이럴 때는 엄마가 용기 내서 이혼하고 엄마 살길을 찾아가야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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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이 말을 고등학생 때도 했었고, 대학생 때도 했었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거의 매일매일 했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엄마에게 하고 있다. 아빠는 아마 자신이 결혼을 왜 했는지도, 자식이 왜 태어났는지도 몰랐을 거야.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더더욱 몰랐을 거고. 아니 관심도 없었으려나. 어쨌든 살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된 거겠지. 아니면 남들이 그렇게 사니깐 결혼도 해야 하고 자식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어찌 됐든 아빠는 가족이 뭔지 가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왜 그런 사람을 붙들고 평생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고 있냔 말이야? 그것도 엄마 고집이야.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면 다 괜찮은 거야?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어쩜 엄마는 아직도 그렇게 순진한 거야?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준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는지도 몰라...



어린 시절 여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살림을 다 때려 부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장 먼저 아버지 앞에 내밀곤 했었다. 엄마가 제발 조용히 해주기를, 제발 아빠를 말리지 않고 그냥 보내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조용히 지나 갈 수 있는데...여자는 아버지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 군소리 없이 다 하는 딸이었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으면 버려 질 것 같아 두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 표정 하나, 아버지 숨소리 하나에만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엄마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자를 지켜 줄거라는 믿음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여자가 어른이 되어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숨죽이고 사는 것이 그때 어린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차라리 상황이 나을지도 모르지.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라잖아. 나는 자식이야. 엄마가 맨날 하는 그 말 말이야. 그 피가 어디 가겠냐는. 그 피가 내 몸에도 흐르고 있는데 나는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어. 아니면 엄마처럼 살게 될까. 딸들은 대부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엄마처럼 산다잖아.



여자가 생각하는 결혼은 한 번 발을 잘못 디디면 헤어 나오기 힘든 늪처럼, 발을 시작으로 온몸에 질척거리면 감기는 뻘처럼 결국 그 무게로 자신을 짓눌러버릴 그 무엇이었다. 누구처럼 살게 되더라도 내 인생은 희망이 없어. 기나긴 전쟁을 피해서 이제 겨우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내 결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나는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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