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거 기억나? 결혼하고 첫 설날 말이야. 내가 *서방이랑 집에 갔더니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 준비하다 말고 나와서는 둘이 어서 아버지한테 세배하라고 했잖아. 거실 쪽으로 돌아보니깐 아버지가 떡하니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었어. 그때 거실 창으로 햇살이 쫙 들어와서 아버지 등 뒤가 환하더라고... 나는 갑자기 그 순간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는지 몰라. 너는 그게 할 소리 냐. 설날 부모한테 세 배 하는 게 당연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그때 엄마가 너무 이상해 보였는데... 뭐? 며느리 들어오면 병풍 산다더니, 우리 엄마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네, 그런 생각 했다니깐. 40년 가까이 살면서 설날에 엄마, 아버지한테 내가 새 배를 한 적 있어? 나는 세 배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시부모님한테 세배하려고 유튜브에서 겨우 배웠단 말이야. 인터넷에서 배웠다고? 아이고, 딸 잘 가르쳤다고 어디 가면 엄마가 칭찬 많이 받겠다. '칭찬 많이'를 유난히 끌면서 말하는 엄마를 여자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때 엄마는 내가 알 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 여자는 아버지가 궁색한 살림 살이를 때려 부수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다 죽여버리겠다고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명절 내내 초점 잃은 멍한 눈으로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있는 엄마 모습도. 엉망이 된 집안을 치우고 끼니마다 고픈 배를 눈치 봐야 했던 나는 어땠을 것 같아? 그런데 세배를 언제 배워? 엄마는...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다른 집이 설날에 어떻게 보내는지도 나는 모른다고. 가족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돼 버렸다고. 그런데 엄마는 사위 들어왔다고 갑자기 다른 집 사는 거 흉내 내고 싶었던 거야? 아버지는 또 사위하고 딸한테 세배 받고 싶으셨데? 참 이상해... 나는 그날 부끄러워서 아버지 얼굴도 못 쳐다보겠던데. 자식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봐. 엄마, 사람 사는 도리보다 다른 사람 어떻게 사는 지보다 자식 마음을 먼저 좀 봐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부모가 아직도 니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랴. 자식한테 사람 사는 도리를 가르쳐야지. 이제 니 인생은 니가 사는 거야.
여자는 언제나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휴 첫날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전쟁 같은 부모님의 싸움은 반나절이면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엄마와의 시간이 여자에게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번번이 길을 잃고 헤매던 그곳, 그 시간들.
장모님 모시고 바람이라도 쐬고 올까? 여전히 여자의 아버지는 명절 첫날이면 집을 나가 연휴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명절이라면 기가 질리는 언니도 친정에 오지 않았고 엄마는 이제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고 있을 여자를 남편은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와, 우리 남편 고맙지만 안 그래도 돼. 내가 나중에 가 볼게. 여자도 집에서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 명절이면 차라리 엄마를 외면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버지도 말릴 수 없고, 엄마도 보고 있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편까지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여보는 얼씬도 하면 안 돼.
여자의 엄마는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면 다음 날 새벽,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그전에 자식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도시락도 손에 들려주었다. 밥상에는 아버지의 밥도 차려져 있었다. 먹고살자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때 엄마는 아마도 초인적인 힘을 끌어냈을 것이다. 아니면 '사람의 도리'가 엄마를 움직이게 했을 수도. 그래서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지쳐 있었고, 멍한 눈으로 천정을 보며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엄마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 시작했다. 다 쓸데가 있다니깐. 이렇게 이야기하며 떨어진 양말짝 하나까지 챙겨놓는 엄마를 여자는 점점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는 남은 음식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집은 점점 버리지 못한 물건으로 채워졌고, 냉장고도 알 수 없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마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나 봐. 무슨 소리야? 우울증이라니? 왜 TV에서 본 적 없어? 집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 말이야. 너는 엄마를 무슨 그런 사람 취급하고 그래. 아니, 엄마는 다 쓴 화장품 통 하나도 못 버렸다니깐. 그건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지. 너는 그럴 때 없어? 너무 피곤하고 정신없이 살면 그런 건 예삿일이야. 너도 참...
애써 별거 아닌 일처럼 넘기려는 언니를 보며 여자는 언니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좁고 잡동사니가 가득한 방에서 언니는 교복과 체육복을 하루에 두 번씩 빨아 널었다. 문간방에 딸린 작은 부엌에서 샤워를 하느라 공동 수도에 호수를 연결해 놓으면 주인 할머니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손녀가 안쓰러운 외할머니가 주인 할머니가 없는 틈에 고무대야에 물을 미리 받아 놓으면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그 물을 다 쏟아 버리곤 했었다. 더럽다는 것이었다. 씻고 빨래하고 씻고 빨래하고... 학창 시절 수돗가를 떠나지 않는 언니는 자기만의 싸움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언니는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태연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마가 끌어안고 살고 싶었던 것은 더 이상 입지 못하게 된 헌 옷이나 다 쓴 화장품 통, 손잡이가 떨어진 냄비 같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남편이 다 가져가 버리고, 애써 지키려고 한 가정마저 손안에서 자꾸 부서지는 모래처럼 느껴졌을 때 엄마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그런 것들뿐이었다. 엄마가 손에서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사람의 도리'나 '다른 집처럼 사는 가족' 대신에. 하지만 덕분에 여자의 어린 시절은 매일매일이 집안일로 채워졌다. 학교에 갔다 오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을 하는 것 외에 여자는 다 할 수 있었다. 그것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이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된 언니가 이사를 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여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에는 작은 냉장고 하나와 TV , 침대 같은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냉장고 안도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주방 싱크대에는 여자가 놓고간 접시 하나와 숟가락 하나가 굴러다녔다. 그것 말고는 모든 곳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어? 여자의 말에 언니는 웃기만 할 뿐 별 대답이 없었다. 다만 끊임없이 여자가 지나는 곳을 따라다니며 닦고 있었다. 밥도 집에서는 잘 안 먹는다는 말에 여자는 서둘러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 마음을 여자는 모르지 않기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내 씩식한 언니를 보며 여자는 자신만 아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성격이 다른 두 딸도 피해 가지 않았다. 그 그늘 아래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구나. 여자는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까지가 삶인지 알 수 없는 엄마의 인생에서 여자와 언니도 점차 물러날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명절에도 더 이상 집에 가지 않았고, 눈만 뜨면 쓸고 닦던 집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점차 잊혀 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엄마한테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지만 남편 덕분에 행복했을 때 엄마가 먼저 떠올랐다. 평생 이런 행복을 몰랐을 엄마가... 좋은 풍경을 눈앞에 두고 섰을 때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보며 도시락을 들려주던 엄마를 잊은 것만 같아서 미안했던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가 밥상을 날리면 그걸 냉큼 받아서 치울 정도로 이골이 나있었어. 나는 내가 이제 단단해졌구나 생각했어.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얼른 다시 밥상을 차려드릴 만큼 여유도 있었지. 그때는 내가 이제 엄마를 지켜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같아. 엄마한테 정말 잘하고 싶었어. 나는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 옆에 있을게... 그러면 엄마는, 세상에 좋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그러셨는데... 사회에 나오니깐 사는 게 쉽지 않더라고. 엄마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말이야. 아버지랑 엄마는 변함이 없었어. 세상에 부딪혀서 힘들때 마다 엄마한테 기댈 수 없어서 화도났어. 그래서 엄마한테서 도망쳐 버렸어. 엄마는 이제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핑계 대고 말이야. 그깟 '사람 도리'는 다 갖다 버리라고. 누가 알아 주더냐고 꽥꽥 소리도 질렀지. 조선 발광을 다 했다니깐. 하지만 엄마의 그 '사람 도리'가 아니라면 나는 진작에 버려졌을지도 모르지. 그 고단한 인생에서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최선을 다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또 죄책감에 시달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잘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죄책감과 부끄러움은 다 내 몫이 되었더라고. 엄마와 멀어지는 첫 번째 방법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거라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는 영영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엄마한테서도 말이야. 그리고 그게 여보한테 너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