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둘이 다 이혼하면 엄마는 어떻게 살아

결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by aloha


엄마도 외할머니가 할머니 집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아빠랑 살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겠지... 몇 번을 집을 나가봐도 막상 갈 곳이 없더라. 꼬불쳐둔 돈도 없고. 엄마가 젊을 때는 너네 아빠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몸도 비실했거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데 누가 비실한 아줌마를 쓰겠어. 시골에 가도 아버지가 달라서 그런가 오빠네라도 눈치가 보여서 하룻밤 신세를 못 지겠더라. 만약에 할머니가 집이 있었다면 그럴 때 나를 받아주지 않았겠냐. 하지만 어쩌겠니. 그래서 이날 이때껏 발버둥을 쳐봐도 너 네 아빠를 못 벗어났지... 나도 엄마하고 아빠랑 사이가 좋고 우리 집도 다른 집처럼 평범했다면 ...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아니면 든든한 직장이라도 있으면 말이야... 그럼 좋을 텐데, 그치?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나도 혼자 조용히 살다가 죽으면 ... 근데 그게 왠지 무섭기도 해. 이렇게 사는 것도 무섭고 저렇게 사는 것도 무섭고... 어쩌자는 건지. 옛날에 엄마도 그랬어?



엄마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엄마는 이날 이때껏 이를 막 물고 열심히 살았어. 남한테 패 안 끼치고, 손 안 벌리고 열심히 살았단 말이야. 그런데 딸 둘이 다 이혼해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 엄마 인생이 무슨 보람이 있냐고? **아,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살아, 응? 너라도 잘 살아야지... 아이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무조건 살아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해. 알겠지?



여자는 결혼 한 언니의 집에 간 그날이 떠올랐다. 오래된 아파트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깨끗했다. 식탁 위에는 그릇마다 랩이 씌워진 밥상이 얌전하게 차려져 있었다. 반짝이는 수저마저 어색했던 그 식탁에는 아무도 앉은 적이 없었다. 그저 그릇에 씌워진 랩 아래로 이미 다 상해버린 음식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랬다. 그 집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썰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따듯해야 할 언니의 신혼집이. 필요한 거 몇 가지만 챙기면 돼. 식탁 앞을 서성이던 여자에게 언니가 쇠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너는 옷만 몇 가지 챙겨줘. 으응. 언니는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는 서랍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의 언니는 옷이 많지 않았다. 크지 않은 옷장에는 한복도, 결혼 예복도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여자의 눈길이 힐끗 그곳에 멈췄다. 한복을 맞추던 날, 결혼 예복을 사러 백화점을 몇 바퀴나 돌았던 날이 생각났던 것이다. 여자는 결국 애써 눈길을 돌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가지 챙겨서 방을 나오려는데 열린 안방 문 사이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언니가 침대에 걸 터 앉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 챙겼어. 그래, 그럼 이제 가자. 확인 안 해 봐도 돼? 됐어. 별로 중요한 것도 없어. 현관문이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것이 끝이었다.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다는 쉐비시크 풍의 하얀색 가구, 파스텔톤이 화사했던 새 이불들, 백화점 쇼핑은 처음이라고 쑥스럽게 웃던 손에 들려있었던 그릇 세트, 대리석 상판과 나무 상판으로 엄마와 언니가 내내 실랑이하던 식탁...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든 반짝이는 살림살이들이 그 문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언니는 그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손에는 고작 작은 손가방과 옷 몇 가지만 들려 있을 뿐이었다. 언니가 결혼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왜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은지 언니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정리하고 싶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어. 이혼만 해주면 된다고 했어. 그러니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엄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어떻게 엄마가 그래? 뭐라고 말을 해야 엄마도 이해를 하지. 서로 싸워도 풀고 살 생각을 해야지. 결혼 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혼이 말이 되냐, 응? 다들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엄마 주변에 이혼한 사람 아무도 없다. 친척들을 봐. 어디 이혼한 사람 누가 있나. 이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원래 결혼해서 사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신혼 초에 몇 번 투닥거렸다고 이혼할 거 같으면 대한민국 사람 다 이혼했다. 이 철없는 것아.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엄마는 다리 힘이 풀렸는지 몇 번이나 손바닥으로 바닥을 고쳐 짚어가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서방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야겠다. 그럼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가겠지. 아니면 사부인한테 전화해서 좀 말려 보라고 하던지.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는 듯 고함에 가까웠던 엄마의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함께 점차 울음이 섞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언니를 데리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가 여태껏 직장 생활해서 아등바등 모은 돈도 모자라서 내 퇴직금 받은 거까지 다 보태줬어. 너네 아빠는 어디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해도 관심이나 있나. 근데 그걸 다 버리고 온 거야? 왜? *서방이 잘못했으면 위자료라도 받아서 나와야지.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친정에 온 이후 내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워 있던 언니였다. 그런 언니가 답답했던지 엄마는 침대 머리맡에서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엄마는 딸을 벌떡 일으킬 만한 말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화라도 나게 하면 굳게 닫힌 그 입을 열 수 있을까. 그때 이불이 획 걷히더니 언니가 벌떡 일어나 돌아앉았다. 그럼 한복이랑 갖다 줄 테니깐 엄마 입을래? 아, 엄마 한복도 이번에 새로 맞춘 거잖아. 그럼 엄마는 이불 줄게. 그릇이랑 냄비 뭐 그런 것도 다 줄게. **아, 너는 내 가구랑 침대랑 줄까? 내 예복도 예쁘다고 했었잖아. 아, 이참에 우리 집 살림을 싹 다 바꾸자. 냉장고 하고 TV고 뭐 다 있잖아. 엄마 소원이면 내가 싹 다 가지고 올게. 아니면 팔아 볼까? 얼마나 되는지... 그 돈 엄마 갖다 줄게. 그럼 됐지, 응? 아이고, 진짜 속이 다 섞어 문드러진다. 내가 돈 달라고 이러냐. 도대체 왜 안 산다고 하냔 말이야? 엄마는 오로지 너희들 잘 살기만을 바랬는데...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꼴을 봐야 되냐고...



엄마의 노동은 이바지 음식에 한껏 멋을 낸 마른 오징어 꽃이 되고, 청고추 홍고추 예쁘게 얹은 전이되고, 말캉말캉한 떡이 되었다. 언니가 치열하게 보냈던 20대의 시간들은 반짝이는 놋그릇이 되고, 이불이 되고, 한복이 되어 지금은 어두운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니깐 엄마, 내가 그런 거 다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냥 가전제품하고 살림살이만 몇 가지 사면 된다고... 뭐 대단한 집에 시집을 간다고 우리 형편에 그렇게 바리바리 한 거야... 그냥 형편 것 하면 되지.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였는데... 사돈집에서 예를 다 갖춰서 다 하자는 데 그럼 어쩌냐? 결혼식은 신랑집에 맞춰줘야 니가 흠이 안 잡히는 거야. 니가 잘 살았으면 그런 게 다 빛이 나는 거란 말이다. 엄마가 돈이 썩어 나서 혼수며 예단한다고 그렇게 쫓아 다닌 줄 알아? 다 너 잘 살라고 그런 거 아니야? 너 잘 살으라고. 그런데 이렇게 일 년도 못 살고 돌아와 버리면... 엄마는... 엄마가 울부짖기 전에 여자는 엄마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울부짖음이 엄마 자신의 인생과 섞여 결국 가슴을 쥐어뜯기 전에 말려야 한다고. 그래서 언니와 엄마가 서로의 가슴을 할퀴기 전에... 하지만 여자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입을 뗐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언니는 결혼식을 앞두고 내내 한숨으로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안 되나 하는 말을 함께 걷던 길에서 문득 내뱉은 적도 있었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여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는데. 여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당직 서고 오전에 일찍 퇴근하는 날 있잖아. 시어머니가 전화가 와서는 시누이가 수박이 먹고 싶어한다고 좀 사 오라고 하잖아. 그 한겨울에 수박을 어디 가서 사니? 나는 겨울에 수박을 파는 줄도 몰랐어. 게다가 밤새우고 정신도 몽롱한데 말이야. 그때 동료 선생님이 백화점에 가면 있지 않겠냐고 그러데. 서둘러 백화점으로 가다 말고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래서 저녁에 그 사람이 들어오길래 이야기했지. 지금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도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서 애가 타는 데 내가 한겨울에 시누이 먹을 수박 구하러 다녀야 하냐고? 그랬더니 뭐래? 그 대답이야 뭐 뻔하지. 내가 왜 다시 돌아왔겠니. 괜히 말하기 입만 아프고... 그때는 여자의 외할머니가 요양병원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 뼈가 부러졌을 때였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병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여자 역시 외할머니와 엄마를 동시에 걱정하느라 애를 때울 때이기도 했다. 그때 여자는 친정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언니가 야속하기만 했었다.



참 이상하지 않니? 뭐가? 일의 경중을 나누는 기준이 말이야. 시댁 일은 무조건 중요한 일이고, 친정 일은 무조건 별거 아닌 일이야. 게다가 외할머니 일이라니까 더더욱. 이게 말이 되니? 세상의 저울로 측정하는 외할머니라는 이름의 무게는 여자와 언니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와 언니의 어린 시절에는 온통 외할머니가 가득했으니깐. 그들에게 일의 경중을 따지라면 그것은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도 일하는 사람인데 집안일도 내 차지, 시댁 챙기는 것도 내 차지, 결국 시누이가 임신하니깐 그거까지 내 차지 더란 말이야. 우리 엄마랑 할머니 보러 갈 시간도 없이 맨날 오라 가라 하고... 하지만 그 모든 것 들을 참아낸 언니가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당직을 서는 날 그 사람이 외박했다는 걸 알게 됐어. 화도 나지 않았고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어... 그냥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언니는 애당초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저 결혼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결혼이 참 이상 한 거더라고. 엄마한테는 굳이 얘기하지 마.



언니는 회사도 그만두고 말았다.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돈을 벌었던 언니는 결국 그 돈이 엄마를 거쳐 아버지한테 가는 것을 보고 차라리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돈은 모이지 않았고, 모아봐야 종착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인 돈이었다. 엄마 돈도 부족해서 내 돈까지 아빠한테 다 뺏길 수는 없단 말이야. 그때 여자의 귀에 언니의 외침은 절박하게 들렸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이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연수를 받기 위해 떠나 던 날 언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언니는 즐거워 보였다. 언니는 엄마와 여자를 종종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그때 언니는 자기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 직장을 더는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고 싶었는데... 더는 힘들 것 같아. 그냥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둔다고 했어. 왜? 이혼한 사람은 직장도 못 다니는 거야? 정년도 보장되는데... 너도 이제 먹고 살 걱정을 해야 되잖아. 어쩌자고 그러는 거야? 엄마의 다그침에 언니는 또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도대체... 말을 해야 그 속을 알지. 자식이래도 내가 어떻게 다 알겠니? 그 속에 들어가 보지를 않았는데...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 다더니 그 말이 딱 맞구나. 이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거야? 아이고, 답답하다 답답해. 쟤가 원래 저렇게 말이 없었냐? 언니를 마치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듯 내내 의아한 얼굴로 쳐자보던 엄마는 결국 여자를 돌아 보았다.







그때 여자는 자신에게까지 밀려오는 파도를 미처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해일 일지도 몰랐다. 여자까지도 집어삼켜버릴 시커먼 해일은 이미 언니를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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