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이 문제, 이혼은 생계가 문제

결혼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by aloha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내 할머니의 병상을 지키던 엄마는 이제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고 했다. 병원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이제 눈물도 안 나온다. 아이고 엄마, 우리 엄마가...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셨네. 내내 담담하기만 하던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사실 따로 있었다. 언니는 잠깐만 왔다가 얼른 가라고 해라. 왜? 다들 큰 사위는 왜 안 왔냐고 물을 텐데 언니가 난처하지 않겠냐. 응, 알았어요. 누가 외손녀들 오나 안 오나 관심이 있겠냐마는 **이가 혼자 덜렁 와 있으면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눈이 반짝할 거 아니냐. 너 네 아빠는 평생 친정 일에 얼굴 한 번 비춘 적이 없는데 딸도 팔자가 똑같구나 하겠지. 그래도 요즘 세상에 외할머니 장례식에도 안 오는 사위가 어딨어? 그러니깐 얼른 와서 절만하고 빨리 가라고 해. 그래도 할머니한테 인사는 드려야지. 엄마의 말은 적중했다. 언니가 얼른 장례식을 떠나고 나서도 여자는 내내 언니의 안부를 묻는 친척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엄마는 아마 더 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여자와 엄마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아니 **이 남편은 얼굴도 안 비추는 거야? 아, 그게... 바쁜 가봐요. 일 때문에 멀리 출장 갔데요. 그으래? 그럼 **이라도 남아서 일손 좀 도와야지. 빨리 가버린 거야?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던데... 아니, 진짜 별일 없는 거야?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의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 맘 나도 알아. 우리 언니 이혼하고 얼마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얼마나 슬프고 눈물이 나던지. 우리 아버지 몸이 아프셔셔 나어릴 때부터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몰라. 몸이 빼짝 말라 가지고 돌아가셨는데... 그때 우리 엄마가 언니한테 당장 큰사위 데려오라고 난리를 치셨어. 벌써 이혼했잖아. 그런데도? 그래, 이혼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안 올 줄 알았는데 장례식장에 와서 내내 자리를 지키더라고. 우리 언니는 물론이고 우리하고도 말 한마디 안 해도 그렇게 와 있었어. 장례식 끝나고 우리 언니는 엄마하고 연락도 끊어 버렸지. 세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고작 친척들이 우리 언니 이혼 한걸 알게 될까 봐 벌벌 떨다니... 이혼이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니?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한숨을 돌리는 엄마를 보자 여자는 궁금해졌다. 이혼한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 엄마? 글쎄... 엄마는, 다른 사람은 다 가정 꾸려서 잘 사는데 내 딸만 실패했다는 소리가 듣기 싫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가 밝히고 싶어 하지 않잖아. 저렇게 직장까지 그만두는 걸 봐. 그냥 나 이혼했다 그러고 씩씩하게 다녀도 될 것 같은데 죽어도 싫다고 하잖아. 누가 묻지도 않는데 뭐 동네방네 떠들 일도 아니고... 아니, 나는 괜찮지만 엄마가 많이 곤란하잖아. 여자의 집은 도시 외곽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래된 동네였다. 안 그래도 동네 아줌마들이 요새 시집간 큰 딸이 자주 보인다고 뭔 일 있냐고 묻더라.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어... 누구네 집 아들이 또 애인이 바뀌었고, 누구네 집 딸이 또 회사를 그만뒀는지 휜 한 동네였다. 여자 역시 출, 퇴근길마다 빼꼼히 내다보는 앞집 아줌마의 눈초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혼이 왜 부끄러울 일이야?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 무슨 일이 있든 무조건 참고 살아야 대단한 거냐고? 그래야 성공이고, 이혼하면 무조건 실패한 거야? 결혼이 무슨 사업도 아닌데 실패라니... **아, 결혼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거야.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만나서 사는데 참고 맞춰가면서 살아야지, 화나고 싸웠다고 무조건 다 이혼해 버려? 가정을 이루는 걸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 돼. 책임감을 가져야지. 엄마, 그 말도 당연히 맞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방법이 없거나 말이야 그러면... 엄마, 이혼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애초에 잘 알아보고 결혼해야지. 엄마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달리 결혼은 복불복이라고 하겠어? 오히려 나는 가망 없는 행복을 기다리느라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는 게 용기 있는 선택인 거 같은데. 으이구, 입만 살아가지고... 니가 뭘 알아? 이게 다 엄마가 빨리 이혼 안 하고 평생 그러고 사니깐 언니가 엄마처럼 될까 봐 얼른 도망친 거 아니야?! 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거 아니냐고... 그래, 다 엄마 탓이다. 지들이 뭘 해도 결국은 다 엄마 탓이지. 자기가 잘 살아야지 뭘 이제 와서 엄마 탓을 해. 이제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잘 살면 되는 거야.



이혼은 칭찬받을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기가, 그 말을 직접 내뱉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니의 이혼을 여자 역시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외부와의 연결된 모든 끈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차라리 누군가 왜 이혼했냐고 묻는다면 차분하게 앉아서 두런두런 설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나았을까. 그저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뱉게 될 이혼했다는 한마디에 따라붙을 온갖 상상력이 언니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나만 사랑받지 못했다는 열등감 일 수도 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다들 잘 사는데... 언제나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있는데, 사람 사람은 다 잘 사는데... 나 만. 언제나 나 만, 결국 나 만 이렇게 돼버린 기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니를 가둬버린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빈손이 되어버린 언니는 살길이 막막했다. 그 당시 혼자 일을 꾸려 가고 있던 여자는 그런 언니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자매라도 다 커서 만나면 서로 메울 수 없는 공백이 더 큰 법이다. 언니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여자에게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삶의 한 부분 끈을 놓고 무기력해져 있는 언니를 일으킬 힘이 여자에게는 없었다. 이제 **이가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 너희 언니가 지금 얼마나 힘들겠니. 이럴 때 니가 힘이 돼줘야지. 부모라도 내가 보태줄 게 있나. 모쪼록 둘이서 힘이 합쳐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안 되겠어. 하지만 그것은 가라앉고 있는 배에 여자와 언니가 함께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언니와 함께 고립되고 있었고,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던것이다.


엄마, 내가 무슨 재주로 언니를 책임져? 언니가 엄마나 고집인 센지 엄마도 알잖아... 게다가 지금은 일을 하려는 의지도 없는데...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하냔 말이야. 여자는 사실 그때 무척이나 도망치고 싶었다.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언니로부터.



이혼의 아픔보다, 가슴에 남긴 큰 상처 보다 더 큰 것은 생계였다. 언니와의 불화와 엄청난 노동을 견뎌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없었다. 마음이 맞지 않는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여자는 종종 언니에게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부부는 이혼이라도 하지, 형제, 자매는 도대체 어떻게 벗어나는 거야? 모든 말이 서로에게 서로를 비난하는 화살이 되어 꽂혔다. 여유가 없었던 그들의 마음은 꼬일 대로 꼬여 그 어떤 말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언니는 여자에게 더욱더 의지하고 있었다. 죽도록 괴롭히지만 놓아주지 않는 그 무엇. 언니는 마치 전 남편과 마치치 못한 싸움을 끊임없이 여자에게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언니가 안쓰럽지도 않냐? 제발 좀 사이좋게 서로 이해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 이혼한 게 뭐가 그렇게 불쌍할 일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까지 다 이해해야 하냐고?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그 고통을 모르는 건 맞지만... 이혼이 저렇게 사람이 망가질 일이냐고. 그리고 그게 왜 나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냔 말이야. 그래도 하나뿐인 언니 아니냐? 우리가 식구 아니냐고? 아이고, 이혼을 했으면 지 혼자 저 멀리 가서 살 것이지. 왜 친정으로 돌아와서는 내 숨통 막고, 지 동생 숨통 막고 사는지... 그렇게 자신 있었으면 훌훌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살 것이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여자의 하소연에도 엄마는 '그저 우리는 가족이니깐' 참아야 한다고 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십 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누구는 그 십 년 동안 집값이 몇 배나 뛰었고, 누구는 땅값이 올랐고, 누구는 주식이 올라서 외제차를 샀다지만 여자와 언니는 여전히 빠듯한 생계를 이어가느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하지만 자기 삶의 무게 보다 더 슬픈 것은 속절없이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깐 그때 너무 어렸네. 서른세 살이었나? 너하고 이 일 시작할 때 말이야. 응, 그랬지. 지금 마흔다섯이 넘었으니깐... 음... 울고불고 서로 뜯고 싸우느라 좋은 세월은 다 지나가 버렸네. 그때는 좋은 세월인지 몰랐어. 세상 다 산 것처럼 늙어버린 기분이었으니깐. 서른세 살에? 그럼, 지금부터라도 재밌게 살아... 지금이라도 잘 살면 웃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겠지만... 그래도 여자와 언니가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면 지난 10년은 헛된 세월만은 아니었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때가 비록 남들이 말하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지라도.






엄마, 언니를 보면 이혼이 쉬운 건 아니야. 무엇보다 사는 게 막막하잖아. 아버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언니와 함께 집에서 나온 여자는 어린 날의 그때처럼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 지금은 결혼하니깐 임대주택이라도 살 수 있지. 언니랑 사니깐 그런 것도 없어. 의료보험이랑 국민연금도 다 따로 내야하고... 언니는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니더라고. 게다가 나이 든 여자 둘이 사니깐 좀 불쌍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야. 불쌍하기는 뭐가 불쌍해 보여? 아니, 다른게 아니라 돈이 없으니깐 말이야. 나이는 자꾸 드는데 돈이 없으니깐 뭔가 주눅이 들더란 말이지. 이혼은 용기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용기가 나게 하는 건 돈인가 봐. 엄마가 왜 맨날 용기가 안 난다고 했는지 이제 내가 알겠어. 그래... 유명 탤런트들이나 이혼하는 거지, 엄마 세대에 여자가 돈이 어딨어. 그래서 다 그냥 참고 사는 거야. 또 몰라. 여자가 똑똑해서 재산 분할도 받고 위자료도 받을 수 있으면 모를까. 너 네 언니 고생하는 거 봐라. 차라리 결혼 안 하고 직장 다니면서 퇴직할 때까지 따박따박 월급 받았으면 지금 얼마나 속 편하게 살고 있겠냐.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려고 하나 보네. 엄마는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그런가 봐.



여자는 생각했다. 결혼은 과연 사랑일까, 생계일까. 여자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정말 결혼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일까. 근데 너는 아직도 시부모님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도 *서방이 착하니깐 좀 참고 살아. 엄마 속 시끄럽게 좀 하지 말고. 알았어? 아니, *서방이 아무리 착하긴 하지만 시부모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 안 하니깐 나도 딱히 방법이 없단 말이야. 며느리 도리는 해야 한다는 거지. 시부모님들께서도 다 살아오던 데로 사는 거지 무슨 나쁜 마음으로 그러시는 것도 아니고... 그 연세에 갑자기 생각이 바뀌니. 아무리 아들이라도 부모 생각을 갑자기 어떻게 바꾸겠냐고. 너도 이해를 해야지. 엄마도 결국 며느리가 참고 이해하면 다 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또 시작이다. 아니, 내가 며느리 도리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나도 힘들고, 시간이 없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는 왜 생각 안 해? 며느리가 좀 무심하면 버릇없다 건방지다 생각하지 말고, 먹고 사느라 바쁜가 보다, 시간이 없나 보다 왜 그렇게 생각을 못 하시냐고? 그러지 말고 시댁에 너 얼마나 버든지 한 번 보여드려봐. 아마 그거 번다고 그렇게 바쁘냐고 비웃을 거다. 엄마! 하루 종일 추운 데서 일해도 이거 밖에 못 번다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방이 적이라더니... 엄마가 뭐 그래? 나 이렇게 벌어도 지금까지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잘 살았어. 열심히 사는데 왜 갑자기 비웃음 당해야 하는 거냐고? 돈 못 버는 며느리는 시댁 가서 죄인마냥 눈치 보면서 일이나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서러워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지. 그래야 아니다 싶을 때 용기 낼 거 아니야. 나 참... 지금 이혼하려고 일 열심히 일하겠다는 거야? 으이구 이 철없는 것아, 열심히 노력해서 *서방하고 더 잘 살 생각을 해야지.



참을 거지만... 인내하겠지만, 무조건 참지는 않을 거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인생이 마구 흘러가 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왜 나만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거야? 왜 아무도 나를 위해 참아주지 않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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