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암이라니요 I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by aloha





7년 전 겨울이었다. 줄에 매달려 알알이 반짝이는 전구처럼 모두의 마음이 들뜨고 반짝이는 연말 여자는 병원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 복도는 진료실과 대기실을 가르고 있는, 대낮인데도 어둠이 내려앉은 곳이었다. 이 복도를 지나면 환한 대기실에서 엄마가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료실을 나온 지 벌써 몇 분이 지났는데도 여자는 대기실로 가지 못했다. 연신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눈으로 여자를 찾고 는 엄마의 모습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는 급하게 뽑혀 나온 듯 한 장씩 구겨져 아무렇게나 뭉쳐져 있었다. 여자는 고맙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꼭 다물고 있던 입은 열면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던 울음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내내 벽을 보고 서 있던 여자가 뒤돌아 보자 한 여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아무렇게나 뭉쳐진 휴지를 눈에 대고 있었다. 이 복도는 그런 곳이었구나. 환한 대기실로 나가기 전에 급하게 울음을 지워야 하는 곳.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낯모르는 여자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은 당신.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내내 여자에게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너는 내 속을 안 썩일 줄 알았더니, 결국 니가 제일 내 속을 후벼파는구나.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자의 원룸은 바닥에 웅크린 이불만이 가냘픈 온기를 품고 있었다. 엄마,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너무 춥다. 아니 너는, 추위도 많이 타는 애가 전기장판이라도 하나 깔지 그랬니. 전기장판은 무슨, 번거롭게. 보일러 틀면 금방 따뜻해져. 그래, 병원에서는 뭐라 그래? 요즘 뭐 갑상선암이 암축에나 끼나. 수술하면 된데. 근데 암 위치가 그래서 수술은 빨리하면 좋겠다는데...





개인병원에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대학병원에 온 터라 여자는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더 많았고, 더 바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여자의 병은 어차피 달라질 것이 없었다. 갑상선이 이렇게 나비 모양으로 양쪽으로 있는데. 지금 혹은 왼쪽에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오른쪽까지 다 퍼질 테니깐 수술하는 김에 싹 다 제거해 버리는 게 좋아요. 싹, 다, 제거...라는 말에서 의사는 후련함과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여자는 뭔가를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쉬움과 공포를 느꼈다. 저는 한 쪽만 제거하고 싶은데... 여자가 모기만 한 소리로 내뱉은 말에 의사는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여자를 돌아 보았다. 네? 그래요? 음... 어차피 반대쪽도 암이 퍼질 거예요. 아, 결혼은 하셨죠? 애는 있으세요? 아, 아니요.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의사는 다시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럼 반만 제거합시다. 입원하시고, 수술 일정 같은 거는 나가시면 안내해 드릴 거예요. 여자는 며칠 동안의 고민이 의학적 견해가 아니라 여자의 결혼 여부에 의해 이렇게나 쉽게 결정되어버리는 상황이 잠깐 혼란스러웠다. 이미 개인병원에서 반절제냐 전절제냐로 며칠간 고민을 했던 것이다. 나는 반이라도 남겨두고 싶은데 말이야. 의사 선생님은 전절제를 추천하시지만 결국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럼 더 큰 병원에 가 봐. 대학병원 말이야. 아무리 네 몸이라도 의학적인 걸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니? 그것도 뭘 알아야 판단하는 거지. 의사 선생님이 결정해 주시면 좋을 텐데... 결국 대학병원을 찾은 여자에게 의사선생님은 또 전절제를 추천하셨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반절제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과연 결혼이 갑상선을 반 남기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갑상선이 아예 없으면 결혼하기 힘든가 보네. 뭐? 뭐든 남들보다 하나라도 없으면 결혼은 무조건 힘든 거거든. 시간이 지날수록 암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어두운 복도를 지난 때 여자는 눈물을 꾹꾹 다 삼켜 버렸다. 그리고 내내 웃고 다니는 여자를 보며 엄마와 언니도 평정심을 되찾고 있었다. 어쨌든 의사 선생님 기세가 너무 무서워서 그냥 '네' 할 뻔했다니깐. 나는 반쪽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깐 다행이지 뭐. 엄마에게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언니는 여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쪽짜리 갑상선이 불행의 씨앗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싹 다 제거해버리고 싶지 않아.



여자는 사실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덕분에 이제 조금 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이미 20대 후반에 한차례 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온 여자는 다음 날부터 아버지에게 시달려야 했다. 일을 하러 나가라는 것이었다. 젊디젊은 것이 그게 무슨 중병이라고... 누워서는. 그렇게 게을러서야 밥 굶기 딱이다. 그게 다 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아니냐. 매일 아침 여자의 방 앞에서 염불을 외듯 똑같은 소리를 외는 아버지를 여자는 피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여자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암'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여자는 쉬고 싶었다. 전쟁 같은 시간들을 피해서 조금 쉬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화가 나기도 했다. 처음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여자는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갑상선암은 왜 걸리는 건가요?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이 지겨웠던 것일까. 의사 선생님의 답은 여자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평소에 운동이나 식습관을 통해 건강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면 여자는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나님한테 잘못 보인 거지요... 의사선생님의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게 있던 여자는 의사선생님이 혹시 전도라도 할까 싶어 얼른 진료실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건 만나면 직접 말해주려고 했는데... 나 임신했어. 일찍 결혼을 한 친구는 기다리던 둘째 소식을 지금은 만나기 힘들다는 여자에게 전화로 전해주었다. 소개팅과 맞선을 쉬지 않던 친구는 드디어 제 짝을 만나 병원을 가기 며칠 전 여자가 결혼식도 다녀왔다. 힘겹게 임용시험 준비를 하던 친구는 드디어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됐단다. 사촌 언니는 집이 몇 채인지 셀 수가 없고, 이웃집 아줌마는 여자의 엄마만 보면 손녀 사진을 보여준다며 핸드폰을 들고 달려왔다. 모두가 행복한데 나는 왜 점점 더 불행해지는 걸까? 내가 뭘 그렇게 미운 짓을 했다고... 하나님은 나만 밉게 보신 거야? 종교가 없는 여자였지만 교회라도 가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잡궜다.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내내 지치고 힘든 인생이었다. 언제가 올 마음편한 하루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런데 암이라니. 여자는 세상의 불행이 자기만을 향해 달려 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누구누구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한거야... 힘들 때 마다 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인생에 안도하고 있을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결혼 여부는 묻지도 않고 반절제를 해 주겠다는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여자는 머리를 새로 했다. 일 년에 한 번 미용실을 가는 여자가 머리를 뽀글뽀글 볶고 나타나자 엄마와 언니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수술하면 머리 감기도 힘들 텐데... 그냥 확 자르고 오지 그랬냐. 침대에 내내 누워 있을 텐데 무슨 파마야? 그냥 뭐... 서울 올라가잖아. 이 정도 멋은 내야지. 헤헤 웃고 있었지만, 그 순간 여자는 사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갑상선암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아니 철없게도 죽는 것보다 여자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이 더 견딜 수없었다. 그냥... 뭐랄까. 나도 이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쟤보다는 낫잖아' 하고... 안도할 것 기분이 들어. 이건 아주 못 된 마음인데 말이야... 그래도 솔직히, 살다 보면 그럴 때 있잖아.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비로소 나의 일상에 안도하는 마음이 들 때. 다들 행복한 데 나만 이렇게 된 것 같아. 세상의 행복들이 나만 비켜 간다고. 그게 다 내가 못나고 내가 변변치 않아서 그렇게 된 거 아니겠어?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돈도 없고 나이도 들고 이제 병까지 들어버린 내가... 게다가 나는 암 보험도 없단 말이야. 병원에서 웅크리고 있을 내가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겨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파마 밖에 없었다고.



남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사는 걸까. 여자는 궁금했다. 여자의 손에는 결코 닿지 않는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여자는 부러웠다. 나도 한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나 봐.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다 자기 복 대로 사는 거지.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너무 애쓰고 산다고 잘 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깐 너도 너무 속 끓이고 살지 마라. 병이 다 그런 데서 오는 거야. 그리고 나중에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다. 수술하고 잘 하고 와서 씩씩하게 살면 되지. 응? 그건 그렇고 이렇게 캐리어에 짐 싸고 있으니깐 무슨 여행 가는 거 같네. 안 그러냐? 여행은 무슨 **병원으로 여행 가는 거야? 야, 너는 서울 간다고 빠마까지 하고 와놓고 엄마를 비웃냐? 우리는 이렇게 짐 싸서 여행 가고 그런 적도 없잖아. 그러니깐 이제 수술하고 오면 같이 여행도 가고 그러자. 그러니깐 괜히 청승떨지 말고 일찍 자.



시골 사람 둘이 내일 서울 가서 길 안 잃어버릴 수 있어? 코 안 베일 자신 있냐고? 언니는 무슨 쌍팔년도 유머를 하는 거야. 요즘 누가 길을 잃어버려? 나 참...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는 나란히 세워져 있는 캐리어 두 개를 보고 농담을 던졌다. 그 농담은 무거운 침묵을 가르고 어두운 방안에 불을 밝히는 것 같았다. 여자와 엄마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다음날 캐리어를 끌고 큰 병원을 찾아 서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자신들을 생각하며 잠 못 들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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