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은 아직 어두웠지만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너무 추웠다. 얼음 위에 누워 있는 건 아닐까. 뼈를 스치는 한기에 몸이 떨렸다. 아득하게 공기를 울리던 진동은 조금씩 언어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여자의 귀에 내려앉았다. ***씨, 정신이 드세요? 너무 추워요. 네, 담요 덮어 드릴게요.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가늘게 뜬 눈 사이로 서서히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여자의 시야가 푸른색 담요에 가로막혀 있음을 알아차렸다. 여자의 몸 위에는 이미 담요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너무 추워요... 선생님. 네 네, 이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수술 잘 끝났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여자와 엄마는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거의 진이 다 빠졌을 때 2인 병실을 배정받고 침대에 누워 볼 수 있었다. 6인실에 자리가 없어서 하루는 2인실을 써야 한다고 했다. 2인실이면 좀 더 편하지 않겠니. 하루만 있으면 된다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는 행여나 여자가 마음을 쓸까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2인실은 6인실에서 침대 2개의 공간을 잘라내 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사실 공간적으로는 더 좁고 답답했다. 그리고 이미 옆 침대의 환자와 가족들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침대에는 여자의 엄마 나이 정도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남편이 있었고,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침대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좁은 방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여자는 의아하게 보이기만 했다. 여자와 엄마가 비어있는 침대에 자리를 잡고, 침대와 침대 사이에 커튼을 쳐 봤지만 커튼은 그들의 등에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여자의 침대 앞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여자는 얼른 침대 앞에도 커튼을 쳤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커튼이 살짝 젖혀지더니 옆 침대의 아줌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고, 젊은 아가씨네. 갑상선 수술하러 온 거야? 어디서 왔어? 여자는 이미 아줌마가 전라남도 진도에서 왔고, 큰아들이 절대로 서울까지 가지 않겠다는 아줌마를 억지로 모셔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은 아무 증상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얼굴이 자꾸 붉어지고 열이 오르더니 체중이 늘어서 얼굴이 팽팽해지기까지 했다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도로 새색시가 되었다고 놀렸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큰 병에 걸렸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과를 듣고 하늘이 노래져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는 여자가 어제 병실에 도착해서부터 자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까지 아줌마의 입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온 것이다. 그러니 여자는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민 아줌마의 입이 행여나 또 열릴까 마음이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침 식사가 날라질 때쯤 아줌마의 자식들이 하나둘씩 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내 2인실을 꽉 채운 그 가족들을 보면서 여자는 작게 속삭였다. 엄마, 저 사람들 진짜 민폐 아니야? 왜 저렇게 난리야... 어디 가족 없으면 서러워서 살겠나. 엄마랑 나는 꼼짝없이 갇힌 것 같잖아. 여자의 침대는 사방을 커튼으로 막아 놨지만 그것은 겨우 시선만 차단해 놓은 것이었다. 사람들의 움직임, 발소리와 목소리, 음식 냄새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여자의 감각을 자극해 왔다. 엄마가 아프니깐 가족들이 다 달려왔나 보네. 당연히 걱정되지. 이런 건 이해해야 되는 거야... 근데 엄마는 배 안고파? 얼른 뭐라도 먹고 와요. 나는 검사할 게 많아서 계속 금식인가 봐.
2인실을 벗어나서 6인실로 옮겨 갈 때 여자는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대가족으로부터 해방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때 여자는 몰랐다. 결국 다섯이나 되는 대가족을 만나게 될 줄은. 6인실은 시장의 한복판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병과 싸우고 있는지 여자는 정말 신기하기 만 했다. 그곳에서 여자와 엄마는 섬처럼 떠 있었다. 사방에 커튼을 치고 숨죽이고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 여자는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 장난스럽게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안뇽, 안뇽, 잘 다녀올게' 하고 손을 흔들었지만, 엄마는 내내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왔다는 소리가 없어서 얼마나 걱정되던지... 여자는 엄마를 보고 잠이 들고 엄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그래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늦은 밤 어슴푸레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위는 깜깜했고, 엄마의 목소리만 아득히 들려왔다. 아니, 금식이라면서 피는 왜 그렇게 자주 뽑아가요?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지금은 계속 호르몬 수치를 검사해야 해서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몇 시간 간격으로 누군가 톡톡 건드리는 것을 여자도 느끼도 있었다. 피를 뽑아 갔던 거였구나... 그리고 여자는 다시 잠이 들었다. 엄마도 참, 병원에서 다 알아서 하는 거지? 피 뽑아서 검사해야지 그럼 어떻게 알아? 별게 다 걱정이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고개를 들지는 못했지만 지난밤 엄마를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 피를 아주 콸콸콸 뽑아 가더라니깐. 내가 다 아까워서... 피를 그렇게 자주 뽑아가면 니가 얼마나 힘들까 싶은 거지. 엄마는... 이제 좀 덜 아픈 거야? 응, 별로 안 아파. 괜찮은 거 같애. 근데 엄마 밥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나도 이제 혼자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깐 엄마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원래 간병하는 사람이 병난다잖아. 그래, 알았어. 지금은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니 걱정이나 해. 전쟁을 함께 겪는 전우라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때 엄마와 여자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아니, 아직 시집도 못 간 아가씨가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떡해요? 얼른 몸조리 잘해서 쾌차하세요.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 줄 테니깐. 으응? 아... 네...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아직 통증이 좀 남아서... 아니야, 아니야. 일어날 필요 없어요. 나도 이래 봬도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어. 그러니깐 젊은 사람은 진짜 금방 괜찮아진다니깐. 내가 어머니 연락처 받아놨어. 그럼 또 봐요. 불시에 들이닥친 손님은 여자에게 말할 기회도 한 번 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여자는 엄마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아니... 요 앞에 휴게실에서 커피 마시다가... 자꾸 물어보잖아. 뭘 자꾸 물어봐? 엄마 먼저 말 한 건 아니고? 아이고, 우리 딸이 혼자 늙어가는데 어디 소개해 줄 사람 없을까요, 하고 말이야. 너 수술하고 누워 있는데 엄마가 정신이 나갔니? 엄마는 병원에만 오면 왜 그래? 예전에 나 수술했을 때도 그랬고, 엄마 수술했을 때도 옆에 아줌마가 나만 보면 중매한다고 그랬잖아. 엄마들은 원래 다 그런 거야. 혹시 아니? 이렇게 인연을 만나게 될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엄마는 좀 순박한 거 같단 말이야. 얘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아니, 진짜 누가 소개라도 해 줄 거라고 믿는 거야? 진짜?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을 누가 소개해 줘? 다들 그냥 하는 소리지... 호기심도 있고, 불쌍해 보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뭐... 엄마한테 잘난 척하고 싶은 걸 수도 있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자신을 쳐다보는 엄마를 보고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잘난 척은 무슨 잘난 척이야? 너도 참 생각 좀 이쁘게 해라. 됐어. 알았어. 이제 엄마가 진짜 조용히 있을게. 커튼 딱 쳐놓고 너만 보고 있을게. 됐지? 아니. 근데... 너도 눈이 있으면 사방을 한 번 둘러봐. 전부 가족들이 와서 저렇게 애가 타서 챙겨주고 하는 거 안 보이니? 너는 어쩔 거야? 엄마가 천년만년 살아 있을 것도 아니고... 맨날 아프다 소리 달고 사는 애가... 나중에 너 아프다고 하면 누가 물 한 그릇이라도 떠 줄 거냐고? 엄마, 나 이제 수술 한 지 겨우 하루 지났어. 벌써 시작하는 건 너무 한거 아니야? 그리고 나 아플 때 물 떠달라고 결혼하는 거야? 그럼 오히려 결혼하면 안 되지. 퇴원하면 더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관리할 테니까 걱정 마. 그리고 나 아직 고개를 못 들어서 아무것도 안 보여. 하지만 여자도 알고 있었다. 양쪽 침대에서 들여오는 환자와 가족들의 대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속삭임들. 커튼을 쳐도 그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엄마와 아빠가, 형제자매들. 남편이, 자식들이, 친구가, 동료들이... 가족은 한 나무에서 시작된 무수한 가지처럼 끝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주변을 탈탈 털어도 엄마밖에 없는 여자는 잘 못 살고 있는 것일까.
여자는 다음 날부터 병원에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엄마 기억나? 저번에 수술했을 때 말이야. 걷기 운동하고 병실로 돌아가는 데 간호사가 나를 향해서 막 뛰어오더라니깐. 피주머니가 넘쳐서 환자복이 시뻘겋게 됐는데, 내가 모르고 계속 돌아다녀서 간호사가 무슨 일 난 줄 알았다고 하더라. 옛날이야기를 하며 혼자 깔깔거리고 웃은 여자를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열심히 운동해서 빨리 회복할 거야. 그때도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 칭찬해 주고 그랬어. 그래서 또 칭찬받으려고 이러는 거야? 칭찬은 무슨... 그렇게 한심하게 쳐다보지 마. 꼭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의지할 데가 없는데 어떡해? 그러니깐 혼자라도 씩씩하게 살겠다는 데 엄마가 왜 그래? 여자의 팔을 잡고 있는 엄마를 뿌리치며 여자는 소리쳤다. 됐어. 붙잡아 줄 필요 없어. 나 혼자 할 거니깐.
소설책 두 권을 다 읽었을 때 퇴원이 허락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깐 책 읽기가 좋네. 그런데 집까지 어떻게 가지? 이렇게 빨리 퇴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끌고 갈 캐리어가 두 개나 있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가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여자는 아직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처지였다. 엄마와 여자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엄마의 눈빛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 봐라.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엄마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도 아직 겁이 나는 일이 많아.
여자의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휴'하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는 게 꼭 한판씩 깨서 올라가는 게임 같네. 익숙한 집안의 공기가 여자의 콧구멍으로 흘러들어갈 때 여자는 살 것 같았다. 이야, 역시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이제 진짜 살 것 같다. 엄마, 안 그래? 아휴, 긴장이 풀리니깐 뱃속이 난리다. 너도 배고프지? 얼른 밥해야겠다. 넋이 빠지는 것 같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필사적으로 여자를 붙들고 있었다. 아니야, 엄마도 좀 쉬어. 그냥 시켜 먹으면 되지. 너는, 환자가 뭘 시켜 먹어. 아직까지는 순한 걸로 조금씩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엄마 너무 힘들잖아. 근데 엄마, 집에는 언제 갈 거야? 집? 한 달 정도는 여기 있어야 하지 않겠니? 내가 가버리면 너 밥이랑 다 어떻게 해? 아버지 난리 날 텐데... 엄마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을 멈추었다. 아니면, 니가 엄마랑 집에 가자. 거기서 좀 지내면 밥 걱정도 없고.... 됐어, 됐어. 다시 병 얻어 올 일 있어? 굶어 죽어도 난 여기 있을 거야. 엄마가 난처하면 그냥 나 혼자 있을게. 나 밥해 먹을 수 있어. 걱정 마.
평생을 밖으로 돌아도 밥은 꼭 집에서 먹는 아버지는 밥을 목숨처럼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엄마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었다. 여자가 병원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벌써 엄마의 전화는 쉼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놈의 밤. 아이고... 내가 참. 딸자식이 아프다는 데 며칠 좀 어디 가서 해결하면 될 것을... 아니다. 나 안 갈련다. 여기 한 달 있을 거야. 점점 울상이 되어가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 엄마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엄마와 여자의 불안한 마음은 그 목소리에 조금씩 덮혀지고 있었다. 우리 집 주소는 모르잖아, 그치? 설마 밥 안 해준다고 여기까지 쫓아올까 봐 그러는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여자에게... 엄마와의 기억은 별로 없다. 고단한 인생에서 딸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행운은 엄마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해가 지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밥상을 차렸다. 주린 배가 아니었다면 여자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엄마의 밥상에서 차마 숟가락을 들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엄마가 여자만을 위해 밥을 하고 있었다. 냄비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김과 음식 냄새는 작은방을 금방금방 채워 나갔다. 여자는 엄마의 뒷모습을 내내 바라보면서 하루 세 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었지만 여자는 그 시간들을 보내며 엄마가 처음으로 자신의 엄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별로 말이 없었다. 병원에서 다른 가족들을 보며 조바심치던 엄마는 왠지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여자도 마음이 놓였다. 그 순간들이 어쩌면 여자가 살면서 처음으로 오롯이 엄마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자기 자신이 초라해서 견딜 수 없다고 울부짓던 여자는 엄마와 생선가시를 발라내며 웃고 있었다.
일찍 자라 어른이 된 아이는 사실 영영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구절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어리광 한 번 피운 적 없이 의젓한 여자를 엄마는 자주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여자는 사실 누구보다 엄마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늙은 엄마의 간병을 받으며 죄송함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사실 엄마가 자신만 보고 있다는 사실에 아픈 것도 잊어버리는 철없는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엄마는 평생 밖으로 도는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고 가슴 치며 살았다. 하지만 내내 그런 엄마의 뒷모습만 보고 자란 것은 것은 바로 어린 여자였다. 여자의 어린 날의 가득 채웠던 것은 언제나 작게 들썩이던 엄마의 등이었다. 살면서 겨우 사랑 그게 뭐라고 하며 큰소리쳤지만, 마흔이 넘어도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면 엄마한테 먼저 달려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실은 여자였다. 엄마는 세 끼 밥으로 끊임없이 여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