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행복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테, 테푸 뭐? 그게 절에 들어간다는 말 아니야? 누가 들으면 내가 머리라도 깎는 줄 알겠네. 그냥 절에 며칠 있다가 오는 거야. 이름이야 어찌됐든 네가 뭐 고시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한 많은 속세를 떠나서 비구니라도 되겠다는 거야? 갑자기 절에는 왜 들어간다는 거야? 엄마, 요즘 고시 공부하러 누가 절에 들어가? 그리고 비구니는 또 뭐야? 어쨌든 그런 게 아니라, 요즘은 유명한 절에는 젊은 사람들이 며칠씩 들어가서 체험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 뭘 체험 한다는 거야? 부처님도 안 믿는 애가 절에서 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집에서 절하고 나물에 밥 비벼먹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날씨는 점점 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에 꽃봉오리가 물이 오를 때가 되자 여자도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올해는 벚꽃을 실컷 봐야지. 그동안 꽃구경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잖아. 아직 고개를 젖히고 아름드리 벚꽃나무를 올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여자는 꽃구경을 향해 비장한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뭐든 신경 써서 하지 않으면 다 놓쳐버린다는 걸 알았어.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쌓이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 순간을 악착같이 붙잡아야지. 삶에 대해 자못 비장해 지기까지 한 여자는 병이라는 인생의 고비도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 조심해야지. 뭐, 다시 예전처럼 일도 하고 다 하잖아. 그래도... 막상 일하러 가면 아플 틈이 어딨어. 돈 쓰러 오는 사람이 누가 나 아프나 걱정해주나. 무조건 열심히 움직여야지.
그래서일까. 여자는 점점 일상의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목이 조이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고, 피곤함도 그대로였다. 제가 몸이 아직 회복이 덜돼서 힘들 것 같아요. 아니, 이번만 그냥 해줘요. 저도 약속 다 잡아 놓은 거라 이제 와서 캔슬하면 아주 곤란해요. 여자가 성급하게 일에 복귀한 것도 있지만, 세상은 여자가 아프다고 봐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몸이 힘들기 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돈을 떼먹은 것도 아니고, 왜 전화를 해서 맨날 닦달을 하는 거야.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단골이었는데, 다른데로 홀랑 가버리면 그게 더 섭섭하지 않겠어? 하지만 여자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다른곳을 찾아야 하는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절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전화를 좀 피해 있을 수 있잖아. 큰돈 버는 일도 아니고 나도 좀 쉬고 싶어. 큰돈을 못 버니까 부지런히 해야지. 먹고 사는데 쉬는 게 어디 있어? 밥을 굶어봐야 정신 차리지? 엄마는 맨날 그 소리야? 그럼, 일 안하는 동안 내가 안 먹으면 되잖아. 흥, 하루만 굶어도 배고프다고 나도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게 아니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당아당 벌어서 모아놔야지. 먹여 살려줄 남편도 없는 것이...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래? 여자는 엄마의 이야기가 이제 어디로 물길을 틀지 잘 알고 있었다. 그대로 뒀다가는 잔소리로 댐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엄마가 알아? 아이고, 엄마는 평생 놀고 먹었나보다, 그치? 세상 사람들한테만 섭섭한 게 아니네... 엄마한테 제일 섭섭해. 섭섭은 무슨...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너도 알아야지. 너는 게다가 먹여 살려줄 남편도... 엄마 제발 그만해.
결국 엄마의 만류에 짐을 꾸리기 가지 몇 달이 더 걸렸다. 7월을 코앞에 두고서야 휴가를 겸한 템플스테이가 결정되었다. 뭐를 가져 가야 할지 망설이다가 절에 전화를 해 봤더니 몸만 와도 된다고 했다.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다 비워내고 오세요.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벌써 속세를 떠난 듯 호젓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여자는 생각했다. 서른다섯 살의 여자가 집밖에서 지낼 때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한 법이다. 방바닥에는 기초화장품과 선크림, 색조화장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드라이기와 헤어제품도 함께였다. 이제 머리통 하나 지났을 뿐인데 필요한 것이 넘쳐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법당에 앉아 있을 때도 행여나 푸석푸석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을 수 는 없다. 윤기 나는 맨얼굴처럼 보이도록 가벼운 화장은 필수이며, 웨이브가 살아있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뒤로 묶어야 한결 분위기가 있어 보일 것이다. 왠지 절이 주는 경건함과도 어울릴 것 같았다. 여자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마스크 팩과 헤어트리트먼트를 빼놓은 것이 생각났다. 이러다가는 이 방을 다 짊어지고 가겠는데…….
다음 날 아침 여자의 손에는 책가방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그 안에는 절에서 꼭 입어야 한다는 절복 두 벌과 로션하나, 선크림, 약병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핸드폰과 지갑, 손거울, 손수건 정도였다.
절은 제법 높은 곳에 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 타고 절 입구 도착 했을 때 이정표는 산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7월의 더위, 귀를 찌를 듯 한 매미소리 말고도 평소에는 듣기 힘들었던 산새 소리와 소나무의 진한 향이 여자 앞에 펼쳐져 있었다. 수술을 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중 여자는 명상과 절운동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 짧은 글이 여러 인연을 이어 여자는 난생처음 절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수술을 하고 흔한 드라마처럼 여자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겠다고 결심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하는 여자의 모습은 흔하디흔한 그 모습과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자신이 정말 절박하고 진지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별노래를 부르며 거리에 눈물을 뿌리고 다니는 모습을 본다면 손발이 다 오글거리지만, 이별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그 사람이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늘부터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주변의 매미소리가 전부 여자를 비웃는 소리라고 해도 그 순간 여자는 정말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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