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절에서의 생활은 여자에게 도저히 익숙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달리 수행이라고 말할까. 토요일에도 새벽 목탁소리는 어김없이 여자를 깨웠다. 몸은 일어나 요를 접고 있었지만, 잇몸이 얼얼할 정도로 힘이 없었다. 피곤이 극해 달해 있었다. 절 생활에 주5일은 없었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을 때 여자의 심경은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그래도 또 적응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가면서 달라지는 것도 있었다. 모두들 자기만의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잘린 식빵을 기름에 구워 설탕을 솔솔 뿌린 그것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누군가 소리쳤다. 고개를 든 여자의 눈에 잇자국이 선명한 식빵을 누가 훔쳐갈세라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면 입속의 빵이 채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다시 한 입 베어 물기위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평소 같으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을 텐데요... 요즘 얼마나 맛있는 게 많아요? 이래봬도 제가 맛집 찾기 전문가거든요. 그런 내가 이 빵 한 쪼가리에 이렇게 행복하다니. 여기 와서 제 행복의 역치가 엄청 낮아졌습니다. 모두가 입가에 설탕가루를 묻히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런 게 여기 방식 인가보네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통제 아닌가? 모든 욕구를 다 억압하고 기본적인 것만 제공되니, 빵 하나만 줘서 전부다 이렇게 기뻐하잖아요. 더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우리다 제 발로 들어 와서 이걸 먹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대웅전에 하루종인 눈감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돈까지 내고 들어와 있잖아요. 그러네요. 내가 내 발로 기어들어 와놓고는... 참... 하하.
여자는 피곤함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다. 괴롭고 힘들었던 자신의 일상이 돌연 천국의 풍경이 되어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일까. 평소에 당연한 듯 누렸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모두 금지 되었다. 매일의 힘든 삶을 버티게 했던 즉각적인 즐거움을 밖에 놓고 왔으니 처음에는 모두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람들은 저마다의 작은 행복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단순히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 것이 여기 온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술에 취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음식에 취하게 만들던, 진통제를 놓듯 짧은 쾌락을 끊임없이 공급하며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실체를 이곳에서는 오롯이 마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여자에게 그것은 가족이었고, 결코 만족스럽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끈질 지게 따라붙었던 괴로움들. 다 잊고 그저 덮어버리려고만 했었던 지난 시간들. 자꾸만 고개를 드는 그것들을 누르기가 여자는 점점 힘이 들었다.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자신의 고통과 마주 앉아야 할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여자는 화장실 휴지를 모으다가 쓰레기통에서 초콜릿 봉지를 발견 했다. 여기까지 제 발로 들어온 사람들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몰래 초콜릿을 까먹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정신없이 잠자리에 들기 바빴던 여자도 스님의 저녁 법문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매일 밤 9시에 시작되는 스님의 법문이 여자도 궁금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여자도 그때 발견한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화장실과 씻는 것 그리고 빨래만이 여자의 최대 관심사였다. 게다가 처음 한 달 동안 생리가 멈추지 않았다. 역시나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남아있었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그 흔적을 지우는 것 까지가 여자가 생각 할 문제의 전부였다. 오늘은 뭘 입을까,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주말에는 어디 갈만한데 없나. 요즘 극장에 뭐하나. 따위의 고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여자는 나물과 잡곡밥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와 싸워야 했고, 반은 울면서 들어가던 재래식 화장실의 한 칸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눈만 뜨면 달려 나갔다. 누가 새치기라도 할까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공동 샤워장 앞을 꼼짝없이 지켜야 했고, 샤워장에는 친환경 비누 한 장이 전부라 씻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아 괴로웠다. 여기 저기 피가 잔뜩 묻은 요를 발견 한 날이 있었다. 요의 주인은 불이 켜지기 전 그것을 허겁지겁 접어서 장롱에 넣고는 그 날 바로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요를 세탁기에 넣으면서 여자는 그 누군가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낯선 시간이었다.
전쟁 같은 하루의 끝에 드디어 몸을 요에 눕히는 그 꿀맛 같은 순간을 조금 미루게 만든 것은 바로 밤하늘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생겼다. 별이 무척 많았다. 산사의 밤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낮 동안 바쁘게 지나던 발길을 붙잡았던 이름 모를 들꽃도 있었다. 여름의 자연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여자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 서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해가 지는 것을 보았다. 산 중턱에 어둠이 깔리면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원래 취침시간이 지나고는 경내에 돌아다닐 수 없었지만, 스님의 법문이 진행되는 동안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여자도 앉아서 법문을 듣다가 잠이 몰려 올 때 쯤 밖으로 나왔다.
그 날도 꿈결처럼 스님의 목소리가 아득해 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여자를 생생한 정신으로 확 잡아끄는 단어가 있었다. 시체를 보면서 수행을 한다고?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한다고 했다. 서서히 살아있을 때의 형체를 잃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여름밤 산 속에서 듣기에는 여간 오싹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몇몇은 벌써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육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이 왠지 여자의 마음에 남았다. 절에 들어온 이후에 계속 뭔가를 내려놓으라는 데... 여자는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육신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으라니... 언제나 불만가득한 내보습에 괴뢰워하는 것도 육신에 대한 집착인가. 피와 살을 나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에 진저리 치는 것도 어쩌면... 내내 알쏭달쏭하기만 한 여자는 결국 어느 때처럼 강당을 빠져 나왔다.
약한 불빛만이 돌계단을 노랗게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대웅전에 올라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살금살금 대웅전 마당에 올라서자 멀리 히말라야시다가 하늘 가까이 뻗어 있었다. 어둠에 묻혀 그림자처럼 윤곽만 뚜렷하게 드러났다.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흔들지 않았다면 그림이라도 해도 좋을 모습이었다. 대웅전이 잘 보이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 산의 꼭대기 역시 검은색 윤곽만 드러내고 있었다. 돌산에 가까운 그 산은 한 낮에 구름을 걸치고 있으면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고요함과 아름다움에도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자는 깨닫고 있었다. 대웅전 안이 깜깜했다.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냄새를 맡으며 반들반들한 나무 바닥위에 서 있으면 여자는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나무 냄새도 났다. 밤에 돌아다니면 안돼요. 그 때 여자의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여자가 내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밤 산책 덕분이었다. 그 시간동안 여자는 다시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자신에게 안도했고, 비집고 나오는 고통의 시간에서도 잠시 벗어 날 수 있었다.
오빠가 찾아 왔답니다. 여자가 대웅전 방석을 하나씩 뒤집고 있을 때 종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저는 오빠가 없는데요. 저를 찾아 온 게 맞나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면 또 다시 올라오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으니 여자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친오빠도 사촌오빠도 아는 오빠도 없는 여자였다. 더군다나 이 산속까지 여자를 찾아 올 사람은 더더욱.
작은 종이가발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흙길을 밝고 서있는 까만 구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구두 신은 사람을 본지가 언제였던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여자는 내내 산속에 있었던 사람처럼 그 까만 구두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게다가 8월인데 좀 덥지 않을까. 아는 얼굴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까지 여자를 찾아 올 일은 없는 사람이었다. 절에 들어갔다고 해서요. 영양제 하나 갖다 주려고 왔어요. 많이 힘들 것 같아서... 게다가 오빠라니. 그는 여자보다 나이도 어렸다. 아직 여러 가지 생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여자는 가만히 서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일을 하던 중이라, 여기는 원래 면회가 안돼요. 면회라는 단어에 여자는 아차 싶었다. 그것은 그들끼리만 사용하는 농담 같은 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찾아와도 종무소에서는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끼리 감옥이나 군대에 비유하며 면회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이 들으면 오해를 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운 단어이기도 했다. 종무소에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뭐 제가 감금되어 있는 건 아니고요... 딱히 누가 감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종무소의 전화를 받고 내려온 터였다. 하지만 여자는 스스로가 그 어색하고 의아한 자리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그냥 택배로 보내주셔도... 아니 아니... 꼭 보내달라는 얘기는 아닌데... 하여튼 감사합니다.
여자는 초록색 알약이 가득 들어있는 갈색 유리병을 상자에서 꺼냈다. 스피루리라라는 다고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그것을 설명서에 적혀 있는 데로 일곱 알 꺼내서 씹기 시작했다. **법우, 혼자 도대체 뭘 먹는 거야? 네, 네? 온 입이 초록색이네. 뭐 맛있는 거 먹어? 황급히 거울을 들여다보니 여자의 입 주위는 물론 입안까지 온통 초록색이었다. 그냥 물에 꿀꺽 먹으면 될 것을... 이게 뭐야. 하지만 그때 여자의 정신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온 거야?
시체를 보면서 수행을 한데요. 시체가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 예요. 남자가 보낸 문자에 여자는 이렇게 대구했다. 저는 지금 절에서 이런 법문을 듣고 있어요. 절에서 뭘 하냐고 남자가 물었던 것이다. 저도 들어 본적 있는 것 같네요. 여자는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종교가 불교예요? 아니요, 군대 있을 때 법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교회나 성당은 다 초코파이를 주는데 절에서는 김밥을 줬거든요. 그리고 웃는 이모티콘. 아,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군대 이야기라는 건가? 여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빨리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모두들 잠든 밤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여자는 핸드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불빛이 이불 밖으로 새어 나갈 것 같아서... 먼저 잘게요. 그럼.
육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배고픈 것도 내려놓을 수 있나... 출출한 배를 쓰다듬으며 여자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 듣고 있어? 네? 저요? 그래, 우리 **법우는 결혼 안하냐고? 여기 아직 20대 아가씨들도 이렇게 결혼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혼자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아, 네... 저는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너무 고르지 마. 사람이 중요하지 무슨 조건을 그렇게 따지는 거야? 그럼 그럼, 요즘 젊은 사람들 너무 조건을 따져서 다들 결혼하기 힘들다고 하잖아. 우리 때는 그냥 밥그릇에 숟가락 젓가락만 있으면 다 살았는데... 아니 왜 냉수 떠놓고 절을 하라고 하시지요?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옛날 얘기를 하세요? 그런가... 허허. 여자는 결혼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했지, 조건을 따져가며 고르는 중이라고는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에게는 그 말이 그 말인지 갑자기 여기저기서 다양한 충고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자는 사실 그 쪽이 더 편하기도 했다. 결혼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거나,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라거나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해 줄 사람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보다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는 쪽이 보기에 나을 것 같았다. 아니, 여자 친구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다행히 그때 공격의 화살이 여자와 나이가 같은, 늘 표정이 없는 그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아, 네. 이제 결혼 해야지. 나이가 얼마야? 그게, 제가 아직 모아 놓은 돈도 얼마 없고 해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자 여자가 더 어색해 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돈은 둘이 결혼하고 차차 모아가면 되는 거지. 결혼식도 거창하게 할 필요 없어. 둘이 좋아서 연애했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가족들하고 친구들 불러서 국수나 삶아서 대접하면 그게 결혼식이지. 국수는 우리가 삶아 줄게. 어때요? 툇마루에 앉아 있는 어머니들이 사이에서 그럼 그럼, 우리가 해주지, 해줄게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그의 어색한 웃음은 이제 함박웃음이 되어있었다. 여자는 그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면 인상을 쓰고 있던 그를 웃게 하는 단어는 여자친구, 결혼, 국수 같은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우리가 원빈, 이나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국수만 삶아주는 결혼식을 할 수있단 말인가. 여자는 소리치고 싶었다.
**법우도 이제 집에 돌아가면 금방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예요. 그때 사람들 나이에서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이렇게 봉사도 하고 복을 많이 지었는데... 그럼, 그래야지... 어딜 가나 결혼 이야기뿐이었다. 왜 다들 덮어놓고 결혼을 하라는지 여자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지금 여자 앞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들은 법사님만 만나면 못살겠다고 가슴부터 치는 사람들이었다. 남편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무엇보다 왠수 같은 자식놈들 때문에 내가 정말 못살겠다고. 여자는 언제나처럼 겉으로는 웃으면서, 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이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이제 다 큰 여자가 엄마 탓이나 한다며 화내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모든 것은 바보 같은 여자 자신 때문이었다. 돈이 없어서였나, 예쁘지 않아서? 아니면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열심히 살지 않아서 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지쳐서 삶에 대한 의욕마저 잃고 있었다. 그게 집착 이예요. 그냥 놓아버리세요... 그냥 살면 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그냥 살면 되요. 스님의 법문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 여자는 여전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고 있어요. 뜨거워 죽겠지요? 스님, 어떻게 놓을까요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 할까요? 그냥 놓으세요. 거기에는 방법도 요령도 없습니다. 그냥 놓아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여자는 묻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놔 버릴 수 있는 건가요?
하지만 그 답을 찾을 틈도 없이 어느 날 여자의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큰외숙모가 돌아가셨어. 빨리 집으로 와라. 어린 여자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던 그 외갓집이었다. 그곳에 이제 외숙모가 없구나. 여자의 기억 속에 그곳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흘렀고, 3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사라져 가겠지. 육신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일까. 모두가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테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읍내로 나가는 차를 수소문해 놓고 여자는 자리에 누웠다. 그때 남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요? 네, 내일 집으로 돌아가요. 갑자기요? 외숙모가 돌아가셨어요.
다음 날 아침 종무소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주차장을 벗어나자 멀리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긴장한 듯 굳은 자세로 앉아 있는 남자는 여자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도대체 몇 시부터 여기에 앉아 있었던 거예요? 그게...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어떡해요... 하하. 남자는 자신이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민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웃기 시작했다.
훗날 여자의 남편이 된 남자는 그때 자신이 얼마나 설레였는지 이야기 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과 함께한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때 남편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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