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목소리가 말을 건네면, 참으면 병. 뱉으면 업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by aloha


목탁소리가 잠을 점점 몰아내고 있었다. 살짝 눈을 뜨자 창호지 밖은 아직 어두웠단. 그 순간 방안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자도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방에서 잔걸까? 하얀 두부를 썰어서 프라이팬 가득 올려놓으면 이런 모습일까? 두부를 부칠 때 여자는 조금의 빈공간이라도 만들기 위해 두부를 이리저리 밀치던 기억이났다. 어젯밤 썰어놓은 두부만한 요를 깔 때 방안은 흡사 프라이팬 위의 모습 같았다. 요 사이에 공간이라고는 팔 하나 정도였다. 다른 사람의 요를 밟지 않는 예의를 차릴 수 있을 딱 그 정도. 정신의 반을 꿈속에 놓고 도대체 방안의 사람이 몇 명인가를 세고 있던 여자는 퍼득 정신을 차렸다. 이내 질서정연하게 이불은 모두 정리가 되었고, 방은 예의 그 모습처럼 텅 비었다. 여자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 새벽 4시. 아직 밖은 어두웠고, 7월의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한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돌계단을 따라 오른 가파른 경사 끝에 대웅전이 있었다. 대웅전 안에서는 노란 불빛과 함께 목탁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대웅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다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발아래 모래가 밝히는 서걱서걱 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대중을 대상으로 명상 수행을 진행하는 동안 절에서 지내기로 했다. 일정기간동안 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게 된다. 그러니 일손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여자는 허드렛일이나 좀 도와보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템플스테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상관이 없는 일정이었다.



여자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절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아닐 테니, 사람을 피해간 곳에서 또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원래 일을 해도 쉬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몸은 고되지만 일은 할 때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쉴 때는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모습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그런 걱정은 첫날부터 사라졌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잠들 때까지 절에서는 해야 할 일이 모두 정해져 있었다. 아침예불 후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여자가 머물고 있는 처소와 공양간 등 절 구석구석을 청소해야 했다. 그리고 시작된 아침공양 마저도 만만치 않았다. 그냥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었다. 어찌나 예법이 복잡한지 여자는 머리가 어질어질 할 지경이었다. 후에 누군가는 밥 한 숟가락 먹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면 불만을 터트리는 통에 내내 어색하던 사람들이 함께 웃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는 복잡하기는 해도 그 시간이 좋았다. 비록 밥 한 숟가락에 나물 몇 가닥이 전부라고 해도 그 밥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지나왔을 모든 손길에 감사 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음식을 입에 넣고는 손을 가리고 천천히 씹었다. 내 육신을 버티기 위해 밥을 입에 넣고 있지만 누군가 배고픈 이가 나를 보고 괴로워하지 않도록 입을 가린다고 했다. 여자는 옥수수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씹었다. 찰진 옥수수 알갱이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단맛이 확 밀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대강당 같은 곳에 둘러 앉아 있었다. 그릇을 부딪치거나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도 없었다. 모두가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을 떠서 천천히 씹고 있었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식사시간을 누군가는 음식이 체할 것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음식의 맛을 그렇게 제대로 느껴 본 것은 그때가 처음 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씻지 않고 그대로 보관한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 하기는 했지만.









여자와 같은 이유로 절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여섯이었다. 남자가 셋 여자가 셋이었는데,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지쳐 있었지만, 하루종인 고된 노동에 지칠 때면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하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럴 때면 육체를 고단하게 함으로써 정신에 휴식을 주는 처방이 잘 듣고 있다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다. 40대 중반의 콧날이 오똑한 그녀는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으로 돌아 왔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했는데 돌아갈 집이 없어서 일단 절에서 머물기로 했다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돌아갈 가족이 없다는 뜻일까. 가족이라고는 어머니 뿐이었는데 왜 타국에 나가서 오랜 시간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여자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여자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남자는 돈만 벌다가 결국 이혼을 당해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와 여자와 나이가 같은 남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좀처럼 말이 없었고, 야윈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중국에서 공부하다가 지쳐서 머리를 식히러 왔다는 청년과 스무 살 중반의 예쁜 아가씨 둘은 입으로는 취직도 문제고 결혼도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자의 눈에는 그저 밝고 귀여워보였다. 이렇게 여섯 명은 아침 공양이 끝나면 함께 절 여기저기를 손보러 다니거나 대웅전 앞마당에 잡초도 뽑고, 방에 모여 앉아 명상수행에 참여 할 사람들을 위한 안내판도 만들었다. 그냥 하라면 다 하는 거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들어 온 그들은 역시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만큼 저마다 지우고 싶은 아픔이 많다는 것일까? 아픈 마음에 내려진 육체적 노동이라는 처방은 꽤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많이 와서 공양간에 물이 넘친다는 데 가서 좀 봐주세요, 하면 그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가서 열심히 땅을 파고 물길을 만들었다. 그런 식이었다. 정해진 일과 정해진 방향은 없었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팀이 되어 일을 해결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곤혹스러운 시간은 따로 있었다. 일과의 사이사이에 법사님이 찾아와, 이제 좀 쉽시다 하고 미숫가루가 든 주전자라도 내려놓으면 시작되는 것이었다. **법우님, 아까 땅을 팔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네, 네? 음... 그게 좀 힘들었나? 아니, 재밌었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뭐 그렇죠. 네... 그러셨군요. 몸이 힘들 때 내 마음은 들여다보셨나요? 여자는 그 선문답 같은 대화를 들으며 자신의 차례가 올까봐 미숫가루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아... 이런 거 진짜 싫은데. 주전자를 든 법사님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 질 때쯤 속삭이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아, 무슨 미숫가루 한잔을 마음 놓고 못 마시게 하는 거야. 이건 쉬는 시간인 건지 뭔지... 그러니까요. 나는 일 할 때가 차라리 더 편해요. 저 멀리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법우님, 잡초를 뽑을 때 어떤 마음이 올라오나요? 내 마음 속 분별심이 뽑혀 나오는 것 같아 시원하지 않으신가요? 짐짓 점잔을 빼며 법사님 흉내를 내는 목소리에 모두가 웃었다. 얄미운 사람들 머리채를 톡톡 뽑아내는 것 같아 시원하기는 합니다 만... 큭큭. 그 때 지나가는 발소리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법사님의 허락 없이는 입을 열 수 없는, 그들은 모두 묵언 수행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점차 사람들은 법사님과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공양간에서 김치를 담글 때, **법우가 계속 힘든 일은 저에게만 시키는 것 같아 화가 났었어요. 본인은 쉬운 일만 하면서... 그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했고, 힘든 일만 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자기 안에 마음을 가감 없이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싸움판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법사님의 허락 없이는 자기 순서 외에는 모두가 ‘묵언’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명상 수행 기간이 다가 올수록 절에는 일손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과 함께 섞여 일을 하게 되자 법사님과 만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드러내는 감정은 더욱더 다양해져갔다. 급기야 묵언을 어기고 여기저기 소소한 다툼이 일어났고, 종종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는 일들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법사님은 누군가 집을 싸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여자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야 뭐, 또 중생이 번뇌에 사로 잡혔구나... 그런 마음 아닐까요? 이곳에 온 이후로 사람들은 사용하는 단어마저 달라지고 있었다. 그냥 공짜 일꾼하나 사라지네. 어쩌나... 하는 마음 아닐까요. 그래서 저렇게 마음을 써서 달래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자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지금 옆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속된 생각을... 짐을 싸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에 멀리 이웃 도시로 외출을 나갔던 법사님이 부랴부랴 보습을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뒤 몇 시간째 방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마치... 이곳이 우리 같은 사람의 슬픔과 상처를 원료로 돌아가는 거대한 공장 같아요. 사람들이 법사님과 마주 앉으면 눈물부터 터트리잖아요.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맡겨지는 일들이 한가득 이예요. 여섯은 명상수행이 진행되면서 각자 일로 흩어져야 했다. 일은 그 전보다 더 많아 졌고, 법사님과 함께 둘러앉는 시간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싫었는데, 그 시간마저 없어지니깐 이제 아무런 보상도 없는 기분이 드네요. 결국 여기도 밖의 세상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 마음이 든다면 법우님,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셔야 해요.



처음에는 봉사하는 사람들의 처소를 관리했다. 여자 혼자 따로 떨어져 소임을 맡게 된 것이다. 묵언 수행이 저절로 된 것은 혼자 있기도 했지만 할 일이 넘쳐나기도 해서였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떨어진 이불이나 법복을 꿰매고, 비품들을 정리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봉사자들을 안내 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봉사를 하고 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소소한 일을 나눠 주기도 했다. 뭐야, 왜 즐거워 보이지? 혼자 안 힘들어요? 여자를 힐긋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을 건넸다. 그러면 여자는 그냥 빙긋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장 힘들다는 공양간으로 일이 바뀌었다. 선풍기 하나 없는 7월의 날씨 속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하루 세 번 지어야 하는 곳이다. 이어서 하기 힘든 일이라 짧게 짧게 경험이 많은 어머님들이 교대로 맡아주던 곳이었다. 법사님이 가장 신경 써서 어루만지는 곳이었지만 어머니들은 며칠을 버텨내지 못했다. 덕을 많이 쌓고 대대로 복을 짓는 일이라고 해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깐. 여자는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작은 공양간 안에도 권력이 존재했고 파벌이 존재했다. 오늘 국은 누가? 오늘 반찬은 누가? 뭐가 맛있고 뭐가 좋았다는 말이 흘러나오면 그 사람의 어깨가 으쓱 솟아오르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 이거 누가 한 거야? 하며 반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건 그날 그 사람은 허리를 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여자는 점점 깨닫고 있었다. 부처님의 공덕이 내려지길 바라고 모두가 이 힘든 일을 자처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솔직했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었고, 직장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라니 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어느 곳보다 사람들은 솔직했고, 서로 대립했다. ‘이거 누가 했어’의 주인공은 주로 여자였고, ‘그거 맛있더라’의 주인공은 주로 키가 크고, 말을 할 때마다 반은 울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공양간에서 두 번째 서열쯤 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법사님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보여도 눈물바람인 사람이었다. 여자는 그 사람 옆에 열심히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마지막에 한 숟가락 떠먹어 보고는 ‘됐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가 맛있다고 이야기 하면, 그거 내가 했잖아 하고 나서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국수는 이만큼 삶으면 될까 대중없이 한 움큼 쥐고 서 있는 사람이었다. 무심코 ‘네’ 했다가 삶은 국수가 너무 많이 남았다는 타박을 견뎌야 하는 것은 역시 여자 몫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속세든 절이든 다 똑같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불편하게 해도 대립하는 것 보다는 그냥 참는 것이 여자는 마음 편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공양간 일을 맡은 후에 너무 행복하고, 자심감도 생겼다고 했다. 얼굴 표정마저 달라져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칭찬 한마디를 꼭 건넬 정도였다. 여자는 그런 사람과 대립 하면서 까지 자신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공양간은 숨을 헐떡거릴 만큼 힘든 곳이었다. 게다가 가파른 돌계단이 한 참 이어진 곳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다. 땀에 흠뻑 젖어 철썩 붙어 있는 옷을 여자는 처음으로 입어 본 것이다. 씻으려고 벗으면 벗겨지지가 않아. 어찌나 무겁고 몸에 딱 붙어버렸는지... 몸을 축 늘어뜨리고 옷을 벗고 있던 여자는 옷이 쭉 찢어지는 소리에 얼른 몸을 세웠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람이 얼른 한마디를 보태 준 것이다. 여자가 민망해 할까봐 찢어진 옷을 함께 벗겨주며 자기도 벌써 두 개나 찢어먹었다고. 여자를 배려해서 한 말인지 진짜 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자는 고마웠다. 언제나 공양간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내나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왜 눈에 띄지도 않는 걸까.



눈에 띄려고 애를 쓰는 건 단연 공양간 반장님이 최고였다. 언제나 여자를 옆에 데리고 다니는 반장님은 벌써 오래전부터 공양간에 봉사를 오는 사람이었다. 올 때마다 양 손 가득히 주방에서 쓰는 전자제품과 간식이 들려 있었다고 했다. 단연 공양간 최고의 권력자였다. 여자가 잠깐이라도 엉덩이를 땅에 붙일라 치면, **법우 나랑 같이 좀 가자, 하며 여자의 손을 끌었다. 으슥한 공양간 뒤 장독대 사이에 서서는 옷을 걷어 등을 보이는 것이다. 더운 열기에 살이 짓무른 데다 땀띠까지 섞여 있어서 붉은 살이 끈적끈적 했다. 반장님이 내민 약을 발라주며 여자가 물었다. 방에 가서 편하게 바르면 되지 왜 여기까지 오세요? 아이고, 사람들이 볼까봐 그러지. 다들 걱정하니깐. 법사님 귀에라도 들어가 봐. 당장 일도 못하게 하실 텐데... 집에 가라고 돌려보내시면 어떡해? 에이 설마... 다들 하루만 일하면 나가떨어지는 통에 공양간은 늘 일손이 부족한데 법사님이 설마... 괜한 걱정 다 하시네요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렇게 생각이 깊으신 분이 어쩜 여자의 짧은 휴식시간을 뺏는데 는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으실까 싶어서였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이 미운 게 아니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따라와 약이나 발라주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 한 거지. 하지만 어른이라면 나도 좀 생각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다들 철없고, 이기적이고, 그저 눈에 띄고 싶어나 하고... 칭찬 받고 싶어 가지고... 여자도 벌써 자신의 마음을 드려다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말로 꺼내 놓지는 못했지만. 얼마 후 여자는 반장님 등에 연고를 발라주다 지나가는 법사님을 발견했다. 법사님, 여기 반장님 등 좀 보세요. 짓물이 나고 엉망인데 법사님이 걱정 하실까봐 약도 맨날 구석진데서만 발라요. 여자의 외침을 들었는지 법사님이 돌아보자 반장님이 황급히 옷을 내리며 여자를 돌아봤다. 반장님이 원하시는 게 이거 맞죠. 저 진짜 눈치 짱이죠?



사람들의 마음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반장님은 잘 때도 여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 있을 때는 여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일이 끝나고 회의를 할 때는 가장 먼저 여자를 공격했다.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데 여자를 이용하다니... 여자는 슬퍼졌다.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는 신경 스겠습니다. 반성합니다. 언제나 똑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소임이 바뀌었다. 이거 혹시 징계 같은 건가? 혼자 깔깔 거리고 웃는 여자를 보자 지나가던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오늘부터 법우님이 그거 하는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있는 남자가 말하는 ‘그거’가 여자의 앞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일명 ‘똥휴지’라고 불리는 그 것이. 이걸 다 태워야 한다는 데요... 혼자서 할 수 있겠어요? 태우는 건 문제가 없는데... 음, 비닐 안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보기가 좀 그러네요. 계속 깔깔거리고 웃는 여자를 남자는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여자는 드럼통 안에 휴지를 잘 모아 담고는 종이에 불을 붙여 던져 넣었다. 불길이 활활 잘 타오르면 또 다음 통을 비웠다. 휴지의 양은 많았지만 불길이 너무 커져도 안 되고, 연기가 너무 피워 올라도 안 되기 때문에 조금씩 넣어야 했다. 여기서는 정말 숨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네요.



말끔한 수세식 화장실은 오물의 흔적을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빠르게 지워버리지만, 여기서는 그대로 쌓여간다. 모든것이 그런 식이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같은 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장실 푸라고 안 하는 게 어디에요? 그랬다면 정말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잘난 체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변소는 단기 출가한 분들이 함께 풉니다. 변소 푸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여자는 푸핫 하며 웃음이 터트렸다. 그것이야말로 이곳에서 일을 시키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수록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그럼 나도? 여자의 말에 남자는 흐뭇한 듯 바라보았고, 여자는 전혀 다른 의미로 계속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금세 속도가 붙는 여자는 다음 날부터 신나게 똥휴지를 태웠다. 똥이 거름이 되고 감자가 되어 우리가 먹으니 똥은 결국 나이고...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고 했던가. 여자가 똥휴지가 연기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창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남자가 달려왔다. 아무래도 연기가 대웅전 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법우님, 좀 더 천천히, 조금씩 태우세요. 연기가 결국 '나'인데 똥휴지 태운 연기 좀 맡는다고 무슨 큰일이 날가 싶어 여자는 의아하기만 했다.




혼자서 여기저기 떠돌며 일을 하던 여자는 오랜만에 다섯 명과 마주 앉았다. 법사님도 함께였다. 전부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절에 들어 온지 이틀 만에 천 자르는 가위로 서로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머리를 한 번 감아보고서야 한 달에 한 번 온다는 미용봉사를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크림을 바르는 것도 잊었는지 다들 얼굴이 새카맣다. 산비탈에 위치한 절의 이곳저곳을 오르내려서 인지 몸무게도 줄어 보였다. 회색의 절복은 마치 평생 입어 온 제 옷처럼 어울렸다. 별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법사님이 입을 열었다. 각자 자리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럼 한 명씩 이야기 해볼까요. 이제 제법 이야기를 하는데도 익숙해져 있었다. 일은 이래서 힘들고 사람들은 저래서 힘들고... 한사람에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한 참이나 걸렸다. 명상수련을 온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제 다들 이 절의 주인이라도 된 것 처럼 보였다. 법사님의 시선이 여자에게 머물자 사람들이 큭큭 웃기 시작했다. 오다가다 여자를 보거나 건너건너 여자의 고생담을 들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새로운 일이 재밌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여자의 말이 끝나도 법사님은 계속 여자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때 여자는 아차 싶었던 것이다. 그 말은 언제나 여자가 해 온 말이었다. 기계처럼 따박따박 내 뱉었다가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일까 조금 바꿔보기도 했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또 똑같은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여자는 언제나 상대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말을 하거나, 그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찾아서 하는 습관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힘든 척을 좀 했어야 하는데... 여자는 뭔가 덧붙일 말이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법우님이 언제 쯤 자기 속마음을 얘기 할지 궁금하네요. 네, 네? 제가 극한으로 계속 밀어 붙여보겠지만... 힘들어서 죽겠다는 소리를 할 때도 됐는데 말이 예요. 볼 때마다 생글생글 웃고 다니니 참. 이제 어디다가 데려다 놔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일은 죄다 시켜 놓고 이제 와서 뭐 좀 있어 보이기라도 하고 싶은 건가? 여자는 법사님의 그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언제나 적당히 섞여있기를 선택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자기도 하면 된다. 덥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덥다고 하고 춥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춥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이면 적당히 상황에 어울리는 몇 마디를 덧붙이면 그만 이었다. 여자라고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절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누군가는 정말 밉기도 했고, 한 대 때려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행동과 말이 전혀 다른 뻔뻔한 사람을 대할 때면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들어 내내 얼굴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떠날 때는 그들 모두 아쉬워하며 여자와 손을 잡거나 안아주었다. 여자도 처음에서 함께 아쉬워하며 감상에 젖은 그들에게 응했지만, 점점 그 작별의 시간동안 혼자 방에 들어와서 쉬는 쪽을 택했다. 몸도 힘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온갖 감정을 다 드러내던 그들과의 헤어짐이 전혀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드라마의 마지막 회같이 모든 것이 훈훈하게 끝나는 것이 여자는 점점 어색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고 해도 여자는 더 이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이니 여자도 더 이상 속에 없는 말을 하는 수고가 귀찮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적당하게 상황에 섞여 있을 뿐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본 적도 없었고,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써 본적도 없었다. 언제나 생글생글 거리고 다니며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어디에서도 편하지 않는 사람.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결국 나한테 바라는 건 그거였잖아. 여자는 법사님 앞에서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음 날 여자의 소임이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대웅전 안에서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 그 뒤에 앉아 있는 역할이었다. 대웅전 안은 시원했고, 여름철 소쩍새 소리가 운치를 더해 주었다. 가끔 명상을 하던 사람들이 쉬러 가면 그 때 방석을 햇볕에 뒤집어 놓으면 그만 이었다. 이렇게 편안한 일이 있었다니. 혼자서 처소를 다 관리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불과 싸우고, 무엇보다 어머니들의 무시무시한 권력다툼 속에서 숨죽이다가 변소간을 돌며 똥휴지나 태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게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대웅전 옆에 있는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쉴 수도 있었다. 지천에 간식도 널려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일은 오랜 시간 봉사를 오던 사람이나 절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허락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두고 나를 그렇게 고생스러운 곳으로만 돌려놓고... 뭐, 나를 극한으로 돌아서 속내를 털어놓게 할 심산 이었다고? 나는 속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자는 점점 혼란스러웟다.




몇 십 명이 되는 사람들이 한방에서 함께 자고 생활하며, 밥도 함께 먹었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맡겨진 일은 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이 함께 있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감추고 살아온 여자는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터뜨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들 속에서 점점 자신을 숨길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아래 꽁꽁 숨겨온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마음... 자꾸만 비집고 나올 자신의 모습을 애써 누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기가 점점 힘들었다. 일은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모두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요령을 터득해 나간다.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은 자꾸만 고개를 들고 나오는 나의 모습이다. 바보 같은 나의 모습, 초라한 나의 모습.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나의 모습을 결코 좋아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이다.



그냥 다 괜찮은 척 하면서 웃고 있자.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겠다고 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 결국 일하나 더 시켜보려고 볼모로 잡겠다고 그러는 거니깐. 어차피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안 볼 사람들이야. 아니... 여자가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으니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자가 생각하기에 사람들과의 인연의 끝은 결국 뻔했다. 결국은 결국은 다... 여자는 자꾸만 열리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굳게 단속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밤이면 머리를 흔드는 고라니의 울음소리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곤 했다. 누가 짐승을 잡는 건가요? 아니요, 고라니 울음소리예요. 누군가의 물음에 누군가가 답했다. 고라니는 엄청 순하고 착하게 생긴 동물 아니야? 피를 토하듯 무섭게 울부 짓는 울음은 ‘고라니’라는 말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한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순한 얼굴을 하고 깊은 밤 혼자 울부짖는지도 모른다. 늦은 밤 혼자 화장실을 찾아 가는 길, 여자는 멀리서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 소리는 끔찍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해서 여자의 몸 여기저기를 찢어 놓는 것 같았다. 여자는 자신도 한 번 쯤은 그렇게 울부짓는 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꾸역꾸역 삼켜가며 살다보니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나만 참으면, 다 조용히 지나 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 후련하자고 다 쏟아내 버리면 또 누군가는 상처받는 테니깐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참으면 병이되고, 뱉으면 업이된다고 했다. 절에 와서 들은 말이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여자는 자신이 업을 짓지는 않았지만 결국 병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 그러니깐 참지 말고 그저 지켜보라는 말도 떠올랐다. 아니, 이게 뭐야? 나 깨달은 거야? 여자는 갑자기 훤하게 뜬 달 아래서 눈이 동그랗게 커진 자신을 보았다. 어두운 재래식 화장실을 가기가 무서워 미루다가 터져버릴 것 같은 아랫배를 부여잡고 결국 방을 나섰던 여자였다. 하지만 어느새 여자는 그 사실도 잊은 채 어두운 돌계단에 우두커니 서서 그렇게 내내 고라니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제 그 소리는 그냥 짐승의 우는 소리일 뿐 그 어떤 괴로움도 고통도 실려 있지 않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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