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플라워샵 구경하기
런던을 걷다 보면 건물벽에 파란색의 동그란 명판을 자주 볼 수 있다. 블루 플라크_Blue Plaque는 유명한 인물이 살았던 건물이나 일을 했던 곳 또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인류의 행복과 번영에 공헌한 인물 중 사후 20년이 지났거나 태어난 지 100년이 넘은 인물을 대상으로 선정되는데 현재 런던 곳곳에 950개 정도 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조지 오웰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란셀롯 브라운_Lancelot Brown이나 찰스 브릿지맨_Charles Bridgeman처럼 조금은 낯선 이름의 '정원 디자이너'의 블루 플라크도 볼 수 있다. 첼시 켄징턴에서는 로버트 포츈_Robet Fortune의 블루 플라크를 볼 수 있는데, 그는 앞서 가든 뮤지엄에서 언급한 적인 있는 식물 수집가였다. 중국에서만 생산되면 홍차를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도 재배할 수 있게 한 사람인데 티숍_tea shop 위타드_Whittard에 가면 로버트 포츈 블랜드_No.57 Robert Fortune Blend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런던 산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피카딜리서커스에서 그린 파크를 향해 걷다 보면 왕립 미술아카데미_Royal Academy of Art 건물을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하이드파크 오른쪽에 접해있는 지역이 메이페어_Mayfair인데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 회사가 있고 갤러리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명품숍이나 전통이 있는 고급 상점가들도 있어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바로 블루 플라크였다.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한눈에 발견 한 것을 보면 역시나 나의 신경은 온통 '그것'에 집중 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콘스탄스 스프라이_Constance Spry라는 이름 아래 florist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콘스탄스 스프라이라는 이름과 동일한 플라워 스쿨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1934년에 시작되었다는 꽃꽂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기숙사가까지 갖춰진 저택에서 꽃꽂이를 배우고 정원에서 수업을 위한 꽃을 직접 꺾는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설레게 만들었던 것이다.
런던에는 수준 높은 플라워 디자이너 즉 '플로리스트'로 불리는 이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꽃 여행지로 네덜란드가 아니라 영국, 런던을 제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생산지보다 소비지를 선택하기 위함 이었다. 꽃이 많이 소비되는 곳에서 디자인이 발전하기 마련이고, 꽃 문화가 생활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런던에서는 꽃의 활용범위가 넓고 수요가 활발해서 일찍부터 실력 있는 플로리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내가 영국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영국 디자이너 숍에서 일을 하고 난 이후였다. 특급호텔에서 수준 높은 꽃 문화를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다양한 외국 플로리스트를 영입하거나 디자이너 숍을 유치할 때였는데, 지금은 그때 교육받은 한국 플로리스트들이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 시절 런던에 가 보지 못했지만, 함께 일하는 선배들로부터 런던의 플로리스트나 플로리스트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런던은 식료품점을 비롯해 큰 마트나 동네 마트, 주말 마켓 하물며 길거리에서 까지 쉽게 꽃을 살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꽃 냉장고조차 볼 수 없지만 꽃 품질과 신선도가 상당히 좋아서 놀랐던 적이 많다. 그만큼 많은 양이 빠르게 소비된다는 이야기였다. 가격 역시 크게 비싸지 않았다.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장바구니 속의 채소 값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내 기대와 다르게 꽃집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꽃집이 더 많다. 한국에서도 플로리스트를 꿈꿈는 젊은친구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런던의 꽃집은 일반적으로 꽃과 화분, 초화류를 많이 파는 우리나라의 꽃집처럼 운영되기보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거나 수업을 진행하는 등 교육이나 프로젝트성 작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물론 여느 꽃집처럼 꽃다발이나 꽃병 같은 상품 판매와 꽃배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역시 디자인된 상품으로 여겨져 가격이 무척 비싸다. 상업공간의 디스플레이나, 기업의 홍보 행사, 결혼식 등의 파티 꽃장식 등 규모가 크고 디자이너의 역량이 필요한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국인의 삶에는 꽃장식이 필요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다. 그래서 내가 찾았던 꽃집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고, 내부를 상품으로 가득 채워 놓지 않은 작업실의 느낌이거나, 디자이너의 정체성이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쇼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인들이 플로리스트 교육을 받기 위해 런던의 디자이너 숍을 많이 찾고 있어서인지 어디를 가든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침 디자이너가 수업을 위해 한국에 갔다는 곳도 있었다.
런던을 걸으며 종이지도가 아이패드 속 구글맵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많은 플로리스트의 숍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미리 갈 곳을 정해서 찾아갔지만, 사실 나는 어느 지역을 가든 꽃집부터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는 길에서 혹은 모퉁이를 돌 때 갑자기 꽃집이라도 만나게 되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름 난 곳이 아니더라도 런던 꽃집은 어디나 아름다웠고, 꽃을 팔고 꽃을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리젠트 스트리트는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옥스퍼드 서커스역까지 이어져있는 큰길이다. 그 길을 쭉 따라 걸으면 리젠트 파크까지 닿을 수 있다. 리버티 백화점_Liberty은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데 큰길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가 있어 자칫 놓치기 쉽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외관이 백화점 이라기보다는 시대극의 한 장면에 나올 법한 모습이고, 무엇보다 백화점 입구를 아름답게 만드는 꽃들이 가득해 백화점이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벽화점 입구에 마치 꽃장식처럼 존재하는 꽃집이 바로 ‘Wild at heart'다. 꽃만큼 마음의 격정을 일으키는 것도 없으니 멋진 이름이 아닐 수 없다.
Wild at Heart _ Great Marlborough Street, London, W1B 5AH
Wild at heart의 독특한 로케이션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꽃집이 있다. Turquoise Island라는 이름의 숍으로 '터키석 섬'이라는 이름답게 푸른색의 건물 외관도 멋지지만 위치가 독특하다.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 끝에 위치한 웨스트본 그로브는 고급 주택가와 디자이너 부티크, 레스토랑이 섞여있는 한적한 거리였다. 길 한 중간에 마치 꽃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처럼 존재하는 꽃집은 그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Wild at heart는 광고 디자이너였던 니키 티블즈의 숍으로 그의 전직의 영향인지 몰라도 꽃집이 눈에 띄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원래 첼시의 킹스로드에도 샵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패브릭 제품도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패브릭 디자이너로서도 재능이 있었다는 데, 이처럼 런던의 플로리스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Wild at Heart_222 Westbourne Grove, London, W11 2RH
첼시플라워쇼로 이미 한 번 구경했던 슬론스퀘어 근처에서는 꽃집의 조상님이라 불릴 수 있는 모이어스 스티븐슨_ Moyses stevens을 만날 수 있다. 클래식한 느낌의 외관에 걸맞게 1876년에 설립되었다는 간판이 눈에 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_Victorian era(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 1837~1901 과 그 이후 40년인 에드워디안 시대까지 포함)에는 식물과 꽃(절화)으로 집안이나 테이블 위를 장식하거나 꽃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처음에는 꽃 한송이를 머리에 꽂거나 가슴에 꽃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꽃은 점점 필수 악세사리가 되었고 더 크고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영지나 정원을 가진 귀족들은 정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통해 꽃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 중산층들이 꽃을 공급받을 곳이 필요 했던 것이다. 이런 수요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꽃집_flower shop' 이다. 더불어 집안에 들여놓을 수 있는 크기의 식물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묘목상이나 판매를 위해 꽃을 재배하는 농장과 상인들도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된다. 더불어 꽃장식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아지게 된다. 새로운 품종을 선보이는 자리였던 '플라워 쇼'에도 디자인의 개념이 추가되기 시작하고, '테이블 데코레이션 _table decoration'이라는 수업이 생겨나기도 했다. 솜씨좋은 주부의 영역이었던 '꽃꽂이'가 차츰 플라워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윤곽을 잡아가던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꽃집을 만나는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까지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곳은 첼시 인 블룸 시즌에 더욱 아름답게 꾸며진 외관을 보기 위해 많이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MOYSES STEVENS SLOANE SQUARE_ 188 Pavilion Road, London SW3 2BF
MOYSES STEVENS BELGRAVIA 53 Elizabeth Street | London SW1W 9PP
모이어 스티븐슨은 로드샵뿐만 아니라 유로스타를 탈 수 있는 세인트 판크라스 역이나 셀프리지 백화점에도 볼 수 있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여행 중에 몇 번 이 꽃집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꽃은 이렇게 우리 인생의 시간 곳곳에서 필요한 것이다.
셀프리지 백화점에서 만났던 꽃집은 또 있다. 'The real flower company'라는 꽃집으로 보자마자 첼시 플라워쇼에서 봤던 그린색 부스가 떠올랐다. 햇박스를 활용한 독특한 패키지가 아주 인상적인 꽃집이었다. 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어디에 담겨 있냐도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꽃병이나 바구니 뿐만아니라 공간과 시간까지도 포함된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면 종이백에 담아주는 것이 기본이 되었지만 초창기만 해도 손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국 디자이너 숍에서의 경험을 살려, 종이백이 꽃다발도 보호할 수 있고 훨씬 더 고급스러운 선물의 느낌이 난다고 설명하자 나중에는 그 종이백 덕분에 손님들이 더 찾기도 했었다. 그런 패키지의 시작이 런던의 꽃집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이나 꽃집의 시그니처가 되는 패키지를 개발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쉽고 손님들의 이해를 받기까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런던의 꽃집들은 언제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꽃집은 잦은 변화를 겪는다. 유행의 변화 이거나, 고객들에게 다양한 스타일의 꽃을 선보이고 싶은 의도겠지만 셀프리지 백화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집의 팝업스토어처럼 (현재는 일본의 유명 체인 꽃집인 '아오야마 플라워 마켓'의 팝업 스토어를 볼 수 있다) 그 주기가 점 점 짧아지고 있다. 앞으로 소개할 재인 패커나 폴라 프라이크의 숍도 리버티 백화점이나 셀프리지 백화점을 이미 거쳐갔다. 그래서 직접 꽃집을 구경 가는 것이 좀 더 그 꽃집만의 분위기를 느끼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he Real Flower Company'의 꽃집은 그 패키지와 똑같은 녹색의 왜관이 사랑스러운 한 곳과 클래식한 나무색이 멋진 두 곳의 숍이 있었다.
The Real Flower Company - New Kings Road
66 New Kings Road, London, SW6 4LT, United Kingdom
The Real Flower Company - Cale Street
13 Cale Street, Chelsea, SW3 3QS, United Kingdom
맥퀸즈 플라워_Mcqueens flower는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퀀이 플로리스트 칼리 엘리스와 함께 시작한 꽃집이다. 플라워스쿨이 유명해서 한국인들도 많이 찾았던 곳인데 몇 해 전 청담동에도 숍과 스쿨을 열었다. 콘스탄스 스프라이의 블루 플라크가 있는 메이페어로 최근 숍을 옮겼는데 베스널그린 역 근처의 학교 같은 분위기를 벗고 고전적 건물이 화려한 꽃과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서울에서도 맥퀸즈의 스타일을 배울 수 있지만 런던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나 삼일 동안의 단기 플라워 코스를 겸한 여행상품도 있고, 런던의 다양한 꽃 수업을 연계해주는 유학원도 많아서 이제 런던에서 받는 꽃 수업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도 실력 있는 플로리스트들과 멋진 꽃집들이 많이 있어서 꽃꽂이를 배우는 일은 이제 우리 일상에도 가까이 들어와 있다.
29 North Audley Street W1K 6WY
제인 패커와_Jane Packer와 폴라 프라이크_Paula Pryke는 2000년 대 초, 중반 런던에서도 가장 유명한 플로리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꽃집을 오픈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정원에서 막 따온 꽃' 같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대세지만, 그 당시 다양한 꽃들을 모던한 디자인으로 담아낸 두 플로리스트는 화려하지만 세련된 플라워 디자인의 대명사였다. 화이트와 블랙을 멋지게 활용한 제인 패커의 꽃과 과감한 원색을 고급스럽게 사용하는 폴라 프라이크의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누구의 꽃인지 구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꽃을 보고 플로리스트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시절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원서 코너에 앉아 하루 종일 감탄의 눈으로 두 플로리스트의 책을 보던 내가 Jane Packer의 숍에서 근무하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었다. 그래서 런던에 있는 제인 패커의 숍에 처음 갔던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리젠트파크에 가기 위해 셀프리지에서 베이커 스트리스를 따라 걸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길 중간쯤에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인상적인 제인 패커 숍이 있다. 런던은 꽃집마다 독특하고 멋진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인데, 굳이 숍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멋진 외관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얼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괜히 꽃집 앞을 서성거렸던 기억이 난다.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인 패커는 내가 런던에 갔던 첫 해에는 만나지 못했는데,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75 - 77 George St. London W1U 8AQ
런던의 꽃집은 대부분 고급 주택가나 멋진 상점가에 있기 마련인데 폴라 프라이크의 작업실은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지나 엔젤역으로 가는 길가에 마치 예술가의 작업실처럼 조용히 숨어 있었다. 그곳을 찾기 위해 조용한 주택가를 계속 헤매고 다녔는데 하얀색의 집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우연히 발견한, 빨간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마가목 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나무를 기준으로 삼고 나서야 더 이상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을 수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플로리스트의 책상 위에는 막 수업을 끝냈는지 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싱싱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고 안도했던 내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제인 패커가 차분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꽃을 만진다면, 폴라 프라이크는 힘 있고 경쾌하게 꽃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첼시 플라워쇼에서 사인을 요청했을 때, 제인 패커에게 꽃을 배우러 왔냐고 묻더니, 자신에게는 왜 오지 않냐고 쾌활하게 묻던 사람이기도 했다.
제인 패커나 폴라 프라이크 역시 앞서 소개한 콘스탄스 플라워스쿨에서 꽃을 배웠다고 한다. 식물의 광범위함 만큼이나 새로운 재료들이 계속 발굴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행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을 계속 공부해야 하지만 처음 꽃을 배웠던 선생님이나 꽃꽂이 수업은 큰 영향력만큼이나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런던에서도 제인 패커나 폴라 프라이크에게서 꽃을 배웠을 법한 젊은 세대의 플로리스트 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력 있는 플로리스트들이 계속 등장하겠지만, 내가 열정 가득한 시절 꽃을 배웠던 곳과 그 수업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꽃집 구경이 너무 숨가쁘다면, 잠시 숨을 고르며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 이제는 블랙으로 외관이 바뀐 제인 패커 샵에서 베이커 스트리트를 건너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옥스퍼스 스트리트의 번잡함을 벗어나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눈에 띄는 오래된 저택이 바로 월리스 컬렉션_Wallace Collection이다.
Hertford House, Manchester Square, London W1U 3BN
The Wallace Collection - The Wallace Collection
하트퍼드셔 영주와 그의 후손들이 18~19세기 걸쳐 수집한 프랑스의 그림과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개인 컬렉션으로 평가받으며 푸생의 그네_The Swing, 1767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17세기에 그려진 푸생의 그림 속 풍경은 앞서 이야기했던 영국의 ‘풍경식 정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네'를 보러 갔다가 자주 찾게 되었는데, 어느 귀족의 저택에 몰래 들어온 것처럼 비현실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로코코 시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생활 도자기와 가구가 전시되어 있어 아직도 누군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가로운 오후, 그 곳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으면 벽에 걸린 그림들과 실내의 아름다운 장식물에서 어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욕망하지만 시간은 결국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만다. 이제는 모두 전시품이 되어 버린 그것들이 그 언젠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것도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해도 고전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사라져도 남겨져 있는 것. 그처럼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계속 등장해도 나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그 시절의 그들은 내 마음속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아한 커튼이 쳐진 창밖으로 런던 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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