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중심으로 한 루틴
나는 시인과 기업가를 존경한다. 시인은 언어로 세상을 창조하고, 기업가는 혁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직업세계에 들어서서 나는 왜 창의력이 부족할 까 늘 고민해 왔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단련된 나는 항상 순차적인 사고에만 익숙해 있었던 거 같았다. 에드워드 드 보노의 " Lateral Thinking"부터 창의력 증진과 관련된 많은 책도 읽어 왔지만, 정작 업무에서 창의력에 기반한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 생각이 막혀있던 좌절의 순간이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 항상 도움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음악이었다.
내게 있어 뮤지션은 존경하는 시인이며, 세상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는 기업가, 혁신가이다. 모든 음악은 창조와 혁신의 산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Taylor Swift는 대표적인 혁신 기업가이자 기업 자체이다. 처음에는 비트 있는 경쾌한 팝을 부르는 Britney Spears, Katy Perry 같은 그저 그런 전형적인 백인 여가수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무료로도(그 미모에 마음도 따뜻한 거 같다) 배포한 앨범 "Evermore"와 "Folklore"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코로나로 회식 없는 저녁시간에 산책하면서 들었던 과거와 다른 조용한 Talyor Swift의 노래들은 다시 내면의 힘을 깨우고, 변해가는 세상을 대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알고 보니 컨트리 가수로부터 시작해, 싱어송라이터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혁신가, 뮤지션이었다. 영화음악의 거장인 Hans Zimmer, Max Richter도 클래식으로 다져진 튼튼한 기반하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혁신가이다.
파워워킹하면서 듣는 Taylor Swift, Ed Sheeran의 곡들은 나의 뇌를 활성화시켜 주고, 들려오던 가사 중의 몇 구절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끌어 주었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샘플코딩을 하면서 듣는 가사 없는 Hans Zimmer, Max Richter의 OST들은 나의 창조성과 집중력을 배가시켜 주는 훌륭한 BGM이다. 내게 있어 음악은 호기심을 채워주는 가장 큰 원천이기도 하다. 클래식 명곡 중 무조음악 같은 혁신적인 곡은 내게 왜 명곡으로 들리지 않는지 궁금해했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내게 아직도 불협화음임을 고백한다) K-Pop이 왜 인기인지 궁금해하다가, 블랙핑크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음악만이 아니라 동영상과 함께 오감을 통해 느껴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5억 뷰 이상의 뮤직 비디오를 찾아보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듣고 있는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접하면서, 제대로 감상하고 감동하는 것은 창의성의 칼날을 예리하게 해 주는 즐거운 방법이다.
나는 기업가가 아니야.
내가 곧 기업이야, 알아
- Jay Z (가수) -
하느님은 치유가 필요할 때, 내 귀를 열어 음악을 내 가슴에 넣어주셨다. 음악을 듣다 보면 치유와 공감을 통해 심리적으로 건강한 리듬을 다시 찾게 된다. 실연의 아픔으로 찾았던 겨율바다에서, 계속되는 야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던 퇴근길에서, 주말에 심신 회복을 위해 찾았던 북카페에서, 주말 저녁 몇 번 보았던 "비긴어게인"이란 버스킹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내 귀를 사로잡은 음악들이 있었다. 이렇게 마음에 다가온 음악은, 집중해서 보느라 잘 인지하지 못했던 영화, 드라마의 OST들을 포함해 어디선가 내게 오려다가 멈추었던 곡 들이었던 거 같다.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내향적이었던 내게 음악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천연 치유제였다. 80년대 금지곡들 중에는 레오나드 코헨의 곡들처럼 허무주의를 부추긴다고 금지된 곡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찾아들었던 거 같다. 수잔, 할렐루야 같은 곡들은 젊은 시절의 상처에 효과적인 치료제였고, U2의 카세트테이프는 내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에 자주 얽혀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주어야 했었다. 첫 뉴욕 출장에서 50% 할인 티켓으로 구입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카세트테이프도 내 첫 자동차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사망했다. 비탈리의 샤콘느와 쇼팽, 바흐도 좋아했지만, Damien Rice, Enya, Birdy, 나윤선의 노래들을 찾아 들은 것을 보면, 사회생활 중에도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처가 꽤 있었던 거 같다. 나윤선의 재즈는 유럽에서 정신과 치료 시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처방전이라고도 하니, 나는 무료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셈이 아닐까 한다.
음악에는 공감의 힘이 있다. 대학교 서클생활 시절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의 곡들을 MT에서, 학교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면서 불렀었던 기억이 새롭다. 5 공화국의 스포츠 우민화 정책을 그렇게 비판했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대화가 홈런 쳤었던 구장에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2절째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싱가포르 연수 때 동료들과 톱텐 등 라이브 뮤직 바를 찾아다니가, 대도시에 가면 뉴욕의 블루노트와 같은 재즈바를 자주 방문했었다. 한때는 2시간 내내 서서 힙합가수 Craig David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Insomnia를 따라 부를 때, 나는 MZ세대가 된 느낌이었다. Naver 뮤직에 가입해서 가족공용 뮤직함에 있는 Big Bang, 2NE1의 노래를 들으면서, 외계인이 되어가는 십 대 아이들과 몇 마디 대화라도 할 수 있게 해 준 게 음악이었다.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도달한다
- 플라톤-
어떤 음악을 듣는지가 우리를 결정한다고도 한다. 음악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은,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개인도 성장하고 변화하듯이 나의 정체성도 계속 변하는 것 같다. MP3로 다운로드하였던 그 많던 노래들은 이제 Streaming으로 대체되어, 주기적으로 새로운 Playlist가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음색이 독특한 가수,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나가다가 필이 꽂히면 기억해 두었다가 주말에 검색해 보곤 한다. 그렇게 검색해서 찾은 목소리로는 김필, 리한나(Rihanna), 카멜라 카베요가 있었고, 목소리가 (타) 악기인 악동뮤지션의 이수현, 싱어송라이터인 로제, 에드시런, 테일러스위프트, Sia, Billie Eillish도 즐겨 듣게 되었다. 대부분 대중적인 팝 뮤지션들이었고, 유튜브 뮤직에서 조회수가 일정 수준이상인 곡들이다. 왜 이런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듣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게 다가오는 곡 위주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한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지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 다른 사람과 Playlist를 공유해 보면, 훨씬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는 나는 "Quiet"의 저자 수전케인과 비슷한 거 같다. 수전케인의 "비터스위트"(달콤 씁쓸한 감정)라는 책에서 본인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 주고 있는데, 들어보니 내 최애곡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내향성을 넘어서 슬픔과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창의성, 초월, 사랑으로 전환시키는 힘에 주목하자는 저자에 많이 공감이 간다.
기술(Technology)을 업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마술(Magic)까지는 못 가더라도 예술(Art)에는 이르고 싶었다. 예술, 교양의 궁극적 형태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공자 말씀이 기억난다.
악(樂)에서 이루느니라 成於樂
공자는 악(樂)을 최고의 교양형태로 생각했던 것 같다. 주자는 "악은 사람의 성정을 길러 삿되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어, 끝내 학문을 완성시킨다"라고 주석하였다. (논어집주)
첫째, 운동과 함께하는 음악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지구력을 높여주는 치료제이다. 인류가 생존에 유리한 환경으로 이동하기 위해 장거리 여정을 나설 때부터 음악은 응원가였다. 지난번 블로그에 파워워킹, 산책, 자전거를 타면서 듣는 음악에 대해서 소개드린 바가 있다. 아침 기상 알람은 Cold Play의 Viva La Vida로 시작한다. 빅스비가 유튜브를 불러서 노래를 불러주니 기상이 한결 가볍다. 스마트폰에 큰 글씨로 가사가 보이는 유튜브 뮤직을 켜놓고, 비트 있는 음악으로 트레밀에서 파워워킹을 한다. 우리가 듣는 최초의 비트는 어머니 뱃속에서 듣는 Heartbeat이다. 발라드가 편안한 이유는, 발라드의 비트수가 엄마 뱃속의 비트수와 유사한 BPM(Beat Per Minute) 65-80회 부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속 5km, 경사 10도로 트레드밀에서 하는 20분 파워워킹에는 조금 더 높은 110~130 BPM의 신나고 경쾌한 뮤직을 듣는다. 처음엔 옛날 곡들인 Van Halen의 "Jump", Bee Gees의 "Staying Alive"로 시작했었는데 요즈음은 아주 신곡은 아니지만 Talyor Swift, Ed Sheeran, Mroon 5, Chris Brown의 노래를 들으면서 파워워킹을 하고 있다. 무료로 세로토닌, 옥시토신, 노르아드레날린을 듬뿍 넣어 천연호르몬제를 처방해 주는 뮤지션들에게 아침마다 감사하고 있다.
둘째, 독서, 코딩과 함께하는 음악은, 창의적인 작업을 위한 BGM으로 마음을 준비하게 해 주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멜로디가 뇌를 자극하여 가끔 영감을 길어 올려주기도 한다. 고3 여름 방학 때까지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수학의 정석을 풀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가사들이 방해가 되면서, 그 후로는 뭔가 집중할 때 가사가 없는 음악을 볼륨을 낮추어 들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가 대표적인 배경 음악이었다. 최근 몇 년 전에는 Hans Zimmer, Max Richter와 같은 영화음악 OST가 작업을 위한 동반자이다. Hans Zimmer의 Time (영화 Inception의 삽입곡)은 샘플 코딩할 때, 영화처럼 또 다른 깊은 꿈의 세계로 계속 ㅇ내려가는 기시감을 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Eiro Nareth 버전의 Time은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을 통해 내 뇌 안의 새로운 뉴런을 생성하도록 도와준다. Max Rich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Mrs. Dalloway : War Anthem은 장엄해서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사소하게 느끼게 해 준다. 코로나 전 자주 들리던 선릉역 최인아 책방에서는 독서에 특화된 피아노 곡을 들려주고 있어서, 부탁 끝에 mp3 파일을 얻었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가만히 내 내면을 가볍게 건드려서, 감수성을 높게 해주는 데 같은 음악인 유튜브 주소(3시간)가 있어 공유한다. ( 참고 : https://music.youtube.com/watch?v=9Q634rbsypE )
셋째, 운전과 함께 하는 음악은 여행의 동반자이자 졸음방지 묘책이다. 나는 운전할 때 졸음운전을 제일 무서워한다. 특히 운동 후나 식후에 운전할 때는 점점 더 그 위험성이 커지는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이 장시간이던 때부터, 혼자서 운전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습관이 되었었다. 이때 졸음운전을 방지하는 묘약은 노래 따라 부르기이다. 차 안은 에코효과가 극대화된 완벽한 나만의 음악 스튜디오이다. 200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로 변화관리 강의를 직접 들었을 때, 60이 넘은 여자 노교수인 로자베스 모스 캔터 교수가 자작곡 한 랩을 직접 부르면서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압도된 후, 나도 일반적인 노래가 아닌 랩도 시도해 보기도 했다. 리쌍의 눈물은 엇박자 곡이라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뇌를 활성화해 안전운전을 하게 해 주었다. 출근길에는 경쾌한 노래를, 퇴근길 무렵에는 잔잔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방에서 영혼을 불살라야 했던 을 생활에서 가끔 놀라운 실력 발휘를 하게도 해주었다.
넷째, 힐링 음악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이자, 심연의 아픔을 치유하는 치료제이다. 음악은 아픈 가슴을 머리가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게 해 준다. 내 플레이어 리스트에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 Damien Rice, Enya, Taylor Swift, Birdy, Adele, U2, 나윤선, 로제, 윤미래가 들어있다. 애널로그 시대에 턴테이블의 도너스 판을 사러 청계천을 갔던 기억, 레오나드 코엔의 테이프가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에 얽혀서 세심하게 수리했던 기억이 새롭다. 드라이버로 테이프를 분해하고, 끊어진 테이프를 가위로 잘라 다시 스카치테이프로 연결한 후, 연필을 테이프 구멍에 넣어 돌려 다시 복구하면 마치 내가 맥가이버가 된 듯했다. U2의 찰랑거리는 기타 선율과 리드보컬 보노의 음성은 그 시절 내 치즈케이크였다. 애널로그 미디어가 변화하여 MP3, 레이저디스크, CD를 거쳐 지금은 스트리밍으로 변화되었지만, 나는 뮤지션에게 내 영혼이 깊고 내밀한 곳까지 들어오도록 허락한다. 200km 행군하던 한 밤중 휴식시간에 음대 출신 동료가 불러 주었던 "Free as the wind" "Living on a jet plane"은 저절로 내 가슴에 들어왔다. 군장을 메고 누워서 밤하늘을 보고 있는 10분을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으로 바꿔 준 동료에게 감사했었다. 기회가 되면 나는 언젠가 아일랜드로 음악여행을 가고 싶다. 저항과 고통의 역사와 척박한 기후 탓인지, 마음을 치유하는 뮤지션이 많다. U2, Damien Rice, Enya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리시 펍에서도 라이브 뮤지션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다섯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음악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주고 나도 변화시켜 주는 좋은 기회들이다. 가능하면 콘서트도 가보고 음악 주제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직접 본다. 혼자서도 좋지만 같이 들으면 더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 같다. 대학교 시절 MT에서는 "메아리"라는 동아리에서 발간 한 악보를 보고 기타 반주를 넣어주는 선배가 부러워서, 뿔줄 기타를 마련했던 적이 있다. 뜨거웠던 학생운동의 BGM이 아침이슬이었는데, 메아리 운동권 가요 중의 하나였다. 소련이 비틀스의 Get Back을 금지한 것처럼, 아침이슬은 금지곡이었었다. 스포츠를 5 공화국의 우민화 정책 중의 하나라고 비판했던 내가, 한대화가 역전 만루홈런을 쳤을 때 나도 모르게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따라 부르고 있음 인지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음악은 독재정권의 선동과 선전에도, 저항을 위한 학생운동에도 효과적이었던 거 같다. 생애 첫 비행기이자 첫 해외출장지인 싱가포르에서 동료들과 저녁마다 라이브 바를 찾아다녔다. Van Halen의 Jump부터 Pretty Woman 삽입곡인 It must have been love처럼, 라이브를 소화하는 필리핀 뮤지션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가끔 해외 출장을 가면, 구글링 해서 저녁 무렵 재즈 공연을 감상한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지인들과 공감하며 동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된 듯한 느낌과 분위기가 너무 좋다. 40대 중반에 모 카드사가 주최하는 콘서트에 몇 번 참석하면서, 현장에서 감상하는 공연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첫 공연은 생소한 Hip Hop 가수인 Craig David의 콘서트였는데, 휘성이 remake 한 "Insomnia"말고는 모르는 곡들이었다. 스탠딩석에 그녀와 함께 서서 즐기다, 열광적으로 떼창 하는 MZ세대에 중앙무대로부터 주변 펜스까지 밀려나서 두 시간 내내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몇 곡 모름에도 불구하고, 같이 따라 부르다 보니 오감이 총출동하였고 MZ세대와 일체가 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뒤로 공연은 클래식 콘서트처럼 미리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지금은 자주 콘서트를 가지 못하는 대신, 대형 스크린과 고급 오디오로 즐길 수 있는 음악, 미술 관련 영화는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가능하면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는 데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 "레미제라블" , "보헤미안 랩소디", "맘마미아" 등이 새롭다.
참고
1. 비터스위트 (수전케인)
2. 쓸모 있는 음악책 (마르쿠스 헨리크)
3. 한글세대가 본 논어 (배병삼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