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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라 Dec 14. 2022

7.   멈추기를 위한 걷기, 산책을 떠나자

 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되어

 나는 보통 아침에 일어난 직후가 제일 우울하다. 전날 밤 잠들기 전 ,'이대로 깨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했던 기도에 대한 반려 메일이 도착한 것 같아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홍시와 자몽이는 어느 새 슬금슬금일어나 내 곁에 다가온다. 홍시는 내 얼굴에 엉덩이를 얹고, 자몽이는 내 얼굴을 핥기 시작한다 . 그리고선 내게 속삭인다.

 "우울할 때는 산책을 떠나는 거야!"

 산책은 흝어질 산에 계책 책을 쓴다.  자신이 생각했던 고민과 생각들이 걷는 과정에서 모두 흩어져 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엄마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에도 일어나지 않고 다시금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발견한 홍시 자몽이는 엄마의 얼굴 앞으로 모여들어 각자 끼잉 소리를 낸다.  소리를 들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없다. 나는  솜뭉치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몸을 일으킨다. 간단히 옷을 차려입고 목줄을  다음 현관 앞으로 나서면, 우리 아이들은 문에 가까이 가다 못해 이족 보행으로 문에 납작히 붙어 완전한 혼연일체가 되어버린다. 산책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엄청난지를 보여준다.

철컥, 문이 열리면 우리는 새공원부터 역사공원까지 몇바퀴를 돌며 산책을 즐긴다.  걸음 걷고 잠시 냄새 맡느라 멈추고, 다시  걸음 걷고 쉬야 하느라 멈추고,   걸음 걷다가  뜯어 먹는 강아지들. 신나서 헥헥 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  불안과 걱정의 생각이 마법처럼 흩어진다. 아이들이 내게 알려준 산책은 '멈추기를 위한 걷기'였다.  

 멈추기를 위한 걷기는 많은 것들을 보게 한다. 하늘, 구름, 종달새, 풀잎, 고양이, 나무, 잔디, 강아지 눈높이의 조각상 등.. 평소 앞만 보고 걷는 나에게는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잠시 멈추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홍시 자몽이는 가끔 코에 걸린 나뭇가지를 자기 손으로 떼지 않고 내 곁으로 가져와 자신의 지저분한 얼굴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한참을 웃으며 사진을 찍다가, 손으로 톡톡 털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다시 제 갈길을 간다. 

 "엄마! 조금이라도 기뻐졌으면 좋겠어"

 하는 아이들의 작은 선물인걸까. 나는 점점 행복해진다. 나는 아이들과 한참을 걷다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면 입으로 '토토토토토'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바람을 가르며 최선을 다해 달린다. 나 또한 땀이 날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멀리까지 한달음에 달려 나간다. 그 순간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서 일종의 [자유]를 얻어 등에 업고 달린다. 도심 속 맹수 두마리와 함께 하는 바람 가르며 달리기는 숨이 턱끝까지 차고 배가 아플만큼 힘들지만 정말 즐겁고 신난다. 한바탕 달리고 나면 홍시 자몽이가 나를 보며 꼭 '엄마 괜찮아? 신나지?' 하고 웃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힘든 산책도 있다.

 홍시, 자몽이는 하루에 적으면 1시간, 많으면 2시간씩 산책을 한다. 지나가는 분들이 홍시 자몽에게 수제 간식을 나누어주시거나 홍시 자몽이 이름을 부르며 멀리서 다가오실 때는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그 때마다 아직 다 치료되지 못한 나의 공황장애의 적신호가 켜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른 새벽과 밤에 주로 산책을 나간다. 홍시 자몽이는 그런 내가 신경쓰이는지, 몇걸음 가다 멈춘 채로 뒤에 선 날 향해 돌아보며 코를 벌릉거린다. '엄마, 괜찮아 더 걸어와도 돼'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가끔 눈물이 난다.

 "엄마, 나오기 직전까지는 힘들었지만, 막상 나오면 그래도 괜찮았잖아! 이걸 잊지 "


 그러면 나는 아이들의 말에 눈을 감고 집에서 밖으로 나오기 직전의 상황을 상상하곤 한다. 준비를 마치고, 1층의 문이 열리는 순간. 상쾌한 바깥의 공기가 나를 흔든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들떠서, 그 순간만큼은 마치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그런 기분을 가지고 홍시와 자몽이의 줄을 잡은 채 서서히 앞으로 걷기 사작한다. 걷다가, 풀을 뜯는 것을 지켜보다가, 신나게 질주하기도 한다. 내 우울함은 산책 시간 동안 점점 풀어헤쳐지고, 마침내 벗어던질 수 있을 정도의 단계까지 날 데려간다. 그러면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시골길을 따라 모험을 해보기도 하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우연히 밝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홍시 자몽이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뵐 때면 발라당 배를 까는 자몽이와 홍시를 보며 한바탕 웃기도 한다 .

 

우리에게 산책이란, 야외배변이나 다른 강아지와의 인사 뿐만 아니라 '잠시 하루의 고민과 걱정을 내려두고 서로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뛰어드는 힐링의 시간'  같다.

 홍시와 자몽이는 사람의 나이로 불혹을 넘었다고 한다. 자몽이는 이미 슬개골 탈구 2기 진단을 받은 상황이기도 하다. 갑자기 나보다 더빠른 속도로 나이들어가는 두 강아지들을 보며 앞으로 아이들이 덜 답답하게 살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주고, 열심히 바깥 산책을 나가며, 함께 출퇴근을 이어나가고, 더 오랜 시간을 기쁨으로 함께하려 한다. 홍시와 자몽이가 좋아하는 야외 애견 카페도 격주에 한번씩은 꼭 다녀오기로 나는 다짐했다. 말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감각, 생각, 느낌 등에 집중할수록 점점 내 삶에서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엄마. 

 -그렇겠지 홍시자몽?

산책 길 가운데 우리는 마치 헨델과 그레텔 처럼 우리의 고민과 걱정을 하나씩 바닥에 떨어뜨리며 뛰어간다. 땀이 빨뻘 날 정도의 산책을 마치면 홍시, 자몽, 그리고 나에게도 밝게 빛나는 눈동자와 속시원한 희망만이 가득할 뿐이다. 바닥에 떨어진 우리의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 조각들은 흙으로 스며들겠지, 그러면 마침내, 우리의 산책은 완벽한 '해방'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배운 '멈추기를 위한 걷기 산책법'으로 우울증 치료에  도움을 얻었다. 빠른 속도로 단기간에 끝내버리는 삶이 아니라, 매일  순간을 즐기며 잠시 머물렀다 다시 걸었다를 반복하는  삶에 대한 이치를 이해하고서 내가 가진 '조급함, 두려움' 등을 흩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것이다. 정말 고마워 내 새끼들. 내 영원한 사랑 홍시,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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