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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라 Jan 28. 2023

10. 삶이 힘들 때는 한 줌의 솜뭉치를 끌어안고

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되어


 하루종일 사람이 미웠던 하루였다.

내가 쏟아부은 진심이 저들에게는 그저 한번 웃고 내다버릴만큼의 우스갯소리에 불과했음에 고통스러웠다.

미움이 차고 넘칠 때쯤 일과를 살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아침  시에 일어나고,  시에 밥을 먹고, 언제쯤 운동을 하고, 이런 것들을 모조리 포기하고 집에만 갖혀있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가는지도, 멈춘지도 모를 만큼 나는 멍청하게 시간을 죽여갔다.


“홍시, 자몽. 너희는 이 따위 인간을 엄마로 만난 걸 후회하지?”


홍시와 자몽이는 그저 헤헤 웃으며 내 곁을 지켰다.

세상이 싫어진 나에게,

그런 혜량없는 웃음은 보배 같았다.



무수한 판단과 저울질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대가없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강아지, 아니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끝내 모를 감정일 것이다. 내가 나의 존재 자체로도 무한한 사랑을 받을  있다는 느낌 말이다.


고로 나는,

어둠의 동굴을 파고드는 대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분노스럽고 끔찍한 세상으로 나아가서,

돈과 사회적인 잣대, 평가질과 급 나눔 사이에서 기필코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삶을 살아내기에 있어, 고통스러워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가장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이었던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사람이 없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누군가의 기준에 맞게 변화시키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나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시련이자 공포였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로 마음 먹었을  나는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으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 그리도 큰 희생을 초래할 줄 몰랐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했었다.

“홍시, 자몽! 내가 너희들처럼 귀엽고 보드라웠다면

나에게 이런 이별의 슬픔은 없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 두 아들내미인 홍시 자몽이는 그런 내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엄마,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해요.

그래야 엄마가 불안 없이 행복할 수 있거든요.”



엄마, 엄마가 우리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 우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요?  세상  어떤 잣대로도 우리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사랑만 해주겠다고 했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엄마가 어떤 사람이든 그저 사랑할 뿐이에요



인생을 살아가며 학벌, 직업, 연봉, 외모, 재산 등 으로 판단되어 지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분노 대신 회피를 택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나는 분노를 택하기로 했다.


마카롱 반죽 기계를 돌려놓고서,

견딜  없는 우울함에 작업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불현듯 유광의 작업대 문에 비친  모습을 마주했다.   깨달았다. 나는 우울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터질 듯한 분노를 터뜨리지 못해

억울함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살아오며 만난 이들 중

단 한명이라도 나를 불쌍히 여겨 죽여줬다면

나는 여지껏 이토록 끔찍하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도 못하는 어린 핏덩이에게 자아가 생겨

성인이 될 때까지 불륜, 치정, 가난, 폭력, 방임, 유기,

성추행, 가스라이팅, 학대, 정신병 과 같은

똥무더기에 나를 평생 굴려왔으면서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나를 홀로 세상을 내보낸 사람들.

 몸과 마음의 생살이 찢기며 나부끼는 것을 보면서도 저들 말년의 노후나 효도 등을 바라는 

버러지같은 것들에게.

어찌 나는 여전히 잠식당해 있는가.


끊임없는 애정 결핍으로부터의 불안함은 어떻게 끊어내야 하고 부모 없다는  흠이 되지 않는 결혼은 어떻게 이뤄야 하고 어딜 가나 책잡히지 않고 마음이 풍요로운, 사랑 받고 자란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은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박탈감과 상실감의 정도가 심해지자

길거리에 부모의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결핍으로 말미암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일평생 어른들이 조져놓은 내 인생을

스무살이 넘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내 돈과 시간을 들여

거적데기와 다름없는 내 전신을 기워내며

겨우 겨우 살아내야 하는가.


이제는 죽고 싶지 않다.

그저 모조리 다 죽여버리고 싶다.




"홍시, 자몽. 엄마가 다니는 정신과에서 이제 약을 줄여보자셔"

"멍멍?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 차도가 있다는 거잖아!"

"그치만 엄마는, 나아지지 않았는 걸. 이제 완전히 무력해졌어"




 "성인이니 혼자 이겨내야 한다느니,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힘들다느니 하는 역겨운 소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어.

홍시 자몽, 엄마는 생존해 있는 것조차도 너무 벅찬데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뭔가를 원하는 것 같아.

그 기대에 못 미치면 자꾸 실망하는 거지.

 그이들에게  인생에 대한 기대를 걸라고  적이 없는데 말이야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내일 아침에는 잠에서 깨지 못했으면 좋겠어"


"홍시 형아, 엄마가 많이 힘든가봐"

"자몽아,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한가봐. 엄마의 엄마를 어떻게 찾아주지?"

"엄마가 하나님께 십년이 넘도록 '엄마를 주세요' 라고 기도 했었대. 신이  순간 함께할  없으니, 인간의 곁에 엄마를 두었다고 하면서 엄마에게도 그걸 달라고 기도했던  들었어"


"그렇지만 기도가 이뤄지지 않았잖아"

"그렇지. 친어머니, 새어머니, 양어머니, 신어머니...

엄마의 삶에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한번도 엄마를 품어주지 않았어."


"그러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걸까?"

"홍시 형아,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어쩌면 이미 한참 전에 들어주셨는데 우리가 모르는  수도 있지 않을까?"

"한참 전에? 그래! 어서 이 소식을 엄마에게 전해주자!"



"엄마! 엄마의 기도는 이미 한참 전에 이뤄졌어요!"

"홍시, 자몽. 그렇지 않아. 하나님은 엄마를 내려달라는 기도도, 엄마가 안되면 남편을 빨리 내려달라는 기도도 모두 들어주지 않으셨는 "


"하나님은, 직접 엄마의 엄마가 되기로 하셨어요!"

"직접 말이야?"


 "맞아요!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엄마를 가졌으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자다 와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맞아요 엄마! 자몽이와 제가 매일 하는 것처럼 

엄마의 품에 안겨서 한숨 푹 자고 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예요"



"그리고 엄마, 우리는 엄마를 만난  한번도 후회한  없어요. 엄마는 우리의  우주예요. 그래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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