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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y 06. 2024

여섯글자글감 <스낵이 있는 삶>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곳을 보고 웃는 시간


여섯 글자글감 첫 번째 이야기 <스낵이 있는 삶>


가족은 각자의 하루를 마치고 꽤 늦은 밤(10시~11시) TV앞에 모인다. 남편이 TV 리모컨 전원을 켜고 만지작 거리면 75인치 사각형에서 '나 혼자 산다'가 방영된다. 이때 누가 부르지 않아도 9살 딸이 1등, 13살 아들이 2등으로 자석처럼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아빠는 부엌 한 켠 곳간 문을 열고 비축해 둔 스낵(새우깡, 썬칩, 오징어땅콩, 포카칩, 오감자 등)을 꺼내온다. 양팔을 걷어붙인 13세는 손에 새우깡을 들고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9세는 꼬깔콘을 열 손가락에 야무지게 끼우고 마녀행세를 하다가 하나씩 쏙 빼먹는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들을 후하게 인심 쓴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맥주 캔을 딴다. 그렇게 거실에 모인 이들의 스낵타임이 시작된다.


매일은 아니다. 대부분 주말이지만 평일에도 대중없이 모인다. 규칙도 약속도 없다. 어른 한 명이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누르면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TV곁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어느새 손에는 스낵이 들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나는 배경음악을 듣고 제목을 알아내 며칠이고 흥얼거린다. 출연자가 신조어를 말하면 ’너는 저 말뜻 알았냐?’, ‘나는 몰랐네‘ 하며 알아들은 한 명의 어깨는 으쓱해진다. 라면을 호로록 면치기 하는 먹방 장면이라도 나오면 일동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군침을 삼킨다. 예능프로에 푹 빠진 사이, 스낵을 이곳저곳에 흘린 아이들에게 현실 잔소리가 터져 나온다. 9살은 13살이 흘렸다고 이르고 13살은 동생이 흘린 것까지 치우려고 손을 뻗지만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해있다. 스낵타임에 끼었다 빠졌다를 번갈아 하던 나는 스낵타임에 줄곧 빠져있는 아빠와 아이들을 관조한다.


때때로 아빠는 스낵을 오물거리다 소파에 널브러져 잠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TV에 집중한다. 9세는 잠이 들어버리기도 하고, 13세는 FIFA게임이 틀어진 패드와 TV를 번갈아 보기도 한다. 그래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 한 공간에서 스낵을 나눠먹으며 같은 곳을 바라본다. 같은 이유로 웃고 깔깔댄다. 이것이 스낵이 있는 삶의 핵심이다.


새우깡과 오감자에 들어있는 염분과 방부제가 건강에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은 가볍게 무시하고, 나는 가족을 가족답게 만들어주는 스낵이란 녀석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같은 것을 먹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넋 놓는 시간의 별 것 아닌 평범함이 마음에 쿵하고 내려앉았다.


우리는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은 곧 중학생이 되고 아빠는 야근과 회식이 잦은 부서로 발령이 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가족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우선순위로 두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스낵이 있던 삶은 가족에게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거실 소파와 예능프로그램만으론 부족하다. TV소리만으로는 아쉽다. 스낵봉지 구기는 소리와 과자를 입 안에 넣고 오도독, 아사삭 부숴먹는 소리가 좁은 거실에 메아리치며 생기를 더해야 완벽하다.


시끄럽지만 단란한,
스낵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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