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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Jul 06. 2024

어쩌면 오늘날 숏폼은 시(詩)가 아닐까?

시인 말고 숏폼피플(Short-form People)

*사진 속 A와 B는 같은 색이다. 그러나 B가 더 밝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위에 어떤 요소를 배치하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달라 보이는 인지편향 오류 때문이다.

숏폼(Short-Form)이란 15-20초 정도의 짧은 영상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를 말한다. 유튜브에서는 쇼츠(Shorts), 인스타그램에서는 릴스(Reels)라 부른다. 개그, 아이디어, 레시피, 독서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15초 이내에 담기 위한 축약 전쟁의 산물이다.


최근 SNS에서 ‘요즘 한국인들은 줄이지 못해 안달 난 사람 같다.‘는 비판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숏폼을 생산해 수익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다소 비꼬는 말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숏폼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 공급도 많은 건 당연한 일.

 

나도 최근 릴스 만들기에 부쩍 흥미가 생겨 하루에 서너 개는 거뜬히 만들고 있다. 만드는 데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1-2시간이 소요된다.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에 어떤 영상, 사진, 음악을 쓸 것인지를 고민하고 시청자의 흥미와 관심을 붙잡기 위해 최소 10초에서 최대 30초를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10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므로 전달할 내용이 많은 경우 동영상 또는 음성 배속을 2-3배 빨리 하기도 하고, 긴 문장도 짧게 축약하는 등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흥미를 붙들지 못하면 시청자는 재빨리 영상을 ‘다음’으로 넘기고, 특별한 임팩트가 없는 릴스는 금세 잊힌다. 끝까지 조회하지 않고 넘겨버린 릴스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확률이 낮아져 조회수도 낮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청자가 오래 머무른 릴스, 즉 두세 번 조회하고 댓글이나 좋아요, 저장, 공유 등의 반응이 일어나는 릴스일수록 불특정 다수에게 상위 노출된다. 이는 콘텐츠 공급자의 수익이 걸린 문제이므로 콘텐츠 공급자는 영상이 재빨리 ‘다음’으로 넘겨지지 않도록 보다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한다. 여기서 ‘후킹’이란 표현이 생겼다.


‘Hook’는 흔히 아는 후크선장의 갈고리다. 후킹문구는 시청자의 관심을 갈고리처럼 낚아 채 영상에 보다 높은 관심과 반응을 보이게 하는 문구를 말한다.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 라거나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OO’ 등 ‘당장 클릭하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은(이 말도 후킹이다.)’ 클릭을 부르는 단골 문구가 넘쳐 난다.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후킹문구만 모아 정보로 제공하기도 한다. 기발한 후킹 문구를 계속 생산해 내는 사람들의 뇌는 얼마나 창의적인가!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적 측면에서 인간은 늘 편리한 방법으로 생활방식과 외모 등을 발달시켜 왔지만 인지편향의 오류로 반드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는 짧은 시간에 중요한 정보를 담은 가성비 콘텐츠를 원한다. 벽돌책을 못 읽어도 거기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단기간에 얻고 싶어 한다. 어려운 단어로 설명한 내용은 거부한다. 요리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려도 요약한 영상은 30초를 넘지 않아야 한다. 짧고 쉽고 간결한 설명에 어울리는 음악까지 삽입된 콘텐츠는 요즘 사회의 욕망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혹자는 숏폼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느니 중독에 빠지기 십상이라느니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한다. 독서는 무조건 옳다는 관점에서는 숏폼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나는 아직 이 글에서 숏폼의 옳고 그름에 관해 논할 준비는 안 됐다. 다만 직접 릴스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경험하며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날 숏폼은 시(詩)가 아닐까?



시란,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다.(출처: 위키백과) 숏폼도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나 인사이트를 짧은 영상으로 압축해 표현한 것이다. 나는 릴스 수십 개를 만들면서 몇 개의 문장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기 위해 높임말을 최소화하고 부사도 덜어내고 오로지 핵심 내용만 남기려 부단히 애썼다. 배경음악과 어우러진 리드미컬한 문구를 고민했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미디어와 전자기기 혁신이 가져온 세상에서, 어려운 글을 오랫동안 읽는 것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시(詩)‘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인(詩人)’ 대신 ’ 숏폼인 ‘,’ 쇼츠인(people)‘같은 신조어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대학 새내기 조카에게 “요즘 뉴진스랑 아이브 노래 듣고 있는데 너무 신나고 좋더라.“라고 말했더니 ”이모, 진짜 K-POP 너무 좋아.“라고 답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가요를 K-POP이라 부르는 것 아니야?’라고 물으려다가 그랬다간 한물 간 촌스러운 이모로 낙인 될 것 같아 참았다. 트렌드는 빠른 속도로 교체되고 사용하는 용어의 쓰임도 같은 속도로 달라지는 듯하다. 혹시 그런 움직임 위에서 숏폼도 ‘요즘날의 시’의 한 형태라 불러도 좋을지 글을 빌려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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