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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Nov 21. 2024

당신의 청렴신호는 주황색입니까?

청렴의 시작

‘청렴’이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공무원과 같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성품이지만, 그 의미를 일반인에게 확대해 적용하면 ‘재물에 대한 사사로운 욕심이 없음, 필요한 만큼만 알맞게 소유함, 사양하는 품위가 있음’ 등으로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청렴의 본뜻이 탐욕의 절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출간된 <결코, 배불리 먹지 말 것>에서 책의 저자 미즈노 남보쿠는 놀랍게도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것이 식습관에서 비롯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관상을 보는 직업인으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이 음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태어날 때 이미 하늘에서 정한 음식의 할당량이 있다. 주어진 할당량보다 더 많이 먹고사는 사람은 불행과 번뇌가 끊이지 않으며, 절제하지 않아 건강과 가정이 파괴돼 불행하게 된다. 즉,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할 수 있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미즈노 남보쿠는 관상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만 중년 이후로는 음식의 절제를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수많은 제자들에게 성공과 부의 철학을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음식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인생의 행운을 끌어온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의 얼굴은 ‘살아있는 답안지’여서 편안한 얼굴을 띄고 인상이 좋은 사람은 절제력이 좋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역설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서 음식의 할당량을 정한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생계를 위해 필요한 양 이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과 행복에 좋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돈의 속성>을 쓴 김승호 회장도 그의 저서 <사장학 개론>에서 “재능이란 배가 부르기 전에 음식을 중단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과식을 경계하는 일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음식을 절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 그 능력을 재능이라고 말했을까요. 그는 내 몫으로 하나 더 취할 것을 절제해 남과 나누는 선함은 결국 덕으로 쌓이고 건강과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간 배가 불러도 참지 못한 양념치킨들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습니다. 내 몸속으로 들이는 음식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과연 내 삶을 이끄는 지휘관이라 할 수 있을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는 일에서 시선을 확장하면, 청렴은 필요를 초과하는 모든 것을 절제하는 ‘자기 통제’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절제는 타인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늘씬하고 건강한 외모를 꿈꾼다면 계획한 식단을 초과하지 않도록 식욕을 억제해야 하고, 생활비가 예산을 웃돈다면, 최신 유행을 좇는 쇼핑은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탐욕을 달래기 어렵습니다. 뷔페에 가면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접시에 수북이 담긴 음식으로 마치 내 위가 곳간인 양 가득 채우고, 온라인 쇼핑몰의 1+1 파격세일에 눈이 휘둥그레져 어느새 제품 배송지를 입력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렇게 불어난 것은 자산도 덕도 아닌, 늘어진 뱃살과 미어터지는 옷장입니다. 꿈꾸던 늘씬 탄탄한 외모와는 점점 멀어지고, 쓸모를 다하지 못한 물건들로 집안이 거추장스러워집니다. 옷장은 가득 차 있는데 입고 나갈 옷은 없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 내려 본 아랫배는 이미 불록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위에는 무려 세 종류의 포스트잇, 클립 100개가 담긴 통, 각종 테이프, 스무 개가 넘는 필기도구가 꽂힌 연필꽂이가 놓여 있습니다, 그 외에 필요할지 몰라 구비해 두었지만 1년째 안 쓴 문구도 보입니다. 주방과 안방은 또 어떨까요. 냉장고와 팬트리, 옷장과 수납장도요. 멀리 찾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 내 지갑과 가방 속에는 없어도 그만이거나, 드물게 필요할지 몰라 구비한 물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 어떤 타격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청렴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쓸모를 다 하지 못한 물건으로 채워진 냉장고나 서랍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청렴신호는 주황색일지 모릅니다. 저 또한 ‘왜? 필요할지 몰라서 가지고 있는 건데?’라는 핑계를 늘 주머니 속에 넣고 있습니다. 처음 내린 눈은 바닥에서 녹지만 녹을 새도 없이 많이 내리면 그때부터는 쌓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많이 소유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눈 쌓이듯 마음에 쌓이면 과욕에 둔감한 상태가 되고, 유혹이 찾아왔을 때 나의 청렴을 훼방 놓고 말 것입니다.      


청렴하지 않은 정치인, 유명인사 등이 뇌물로 자산을 증식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잇속을 챙겨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는 기사를 종종 봅니다. 일반인인 제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명예와 인기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 소화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과욕을 절제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부정부패를 염두에 두고 욕심을 부렸을까요? 작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 눈덩이처럼 쌓여 무너진 결과가 아닐까요?     


앞서 언급한 책에 따르면, 필요를 초과해 소유했다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는 등 적절한 쓸모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당장의 소유를 버리고 쓸모를 나누면 그것은 미래에 더 큰 가치로 되돌아옵니다. 일상에서 잠깐 멈추어 ‘필요와 소유’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서랍에 속 여러 개의 핸드크림은 주위에 나누고, 책상 위에는 자주 쓰는 문구만 알맞게 챙겨 둡니다. 음식을 조리하고 주문할 때에도 적은 음식을 천천히 맛있게 먹겠다는 결심을 선행합니다. 중요한 미션이 아니라면 수요에 못 미치는 공급은 사양하고 양보하는 것이 맞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그마한 점검과 다짐을 미루다 보면 과욕은 미래의 나에게 막대한 비용을 청구할지도 모릅니다. 그 비용은 건강과 재무상태의 붕괴일 수 있고, 관계의 몰락일 수도 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 오늘날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유혹으로부터 단단히 동여매야 하는 것은 마음속 절제의 끈입니다.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라도, 거저 얻는 기회라 하더라도 반드시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냉철하게 점검하여 지나친 과욕으로 삶을 그르치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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