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도록 바라왔던 휴직기간이 주어졌다. 이제 나에게는 연차 외에는 방학도 없겠지? 하며 한 달만 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직장생활을 해왔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으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얘기를 매일 했다. 그게 이뤄진 거라고 해야 하나? 작년 10월 나는 기어이 허리디스크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쉬고 싶다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건 쉬는 게 아니라 아픈 거잖아?
1년 동안 정말 딱 죽는 게 어쩌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1년의 질병휴직 기간, 아니 정확히는 11개월. 이제 마지막 달이 저물어가고 있다. 25년 달력을 넘김과 동시에 나에게는 새로운 일상이 주어진다. 복귀가 코앞이기 때문이다. '허리가 일주일은 버텨줄까?' 하는 통증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그동안 밀려있던 일 폭탄은 어쩌지?'와 같은 걱정에 이르기까지 생각은 꼬리를 문다. 누구도 나를 이것에서 구해줄 순 없다. 최근에는 '괜찮아, 별일 있겠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을 되뇌고 있다. 그러던 중 '슬픔을 건너다'라는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슬픔.
슬픔은 참 나의 오래된 습관이지. 하면서 책을 읽었다.
'슬픔은 건너다'는 굉장히 직관적이다. 채도가 선명하다.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의 상황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뾰족한 가시밭, 사막, 바다, 숲까지 온전히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다양한 모습을 띄고 다가오는 슬픔처럼 말이다.
처음 병가로 2달여를 쉬던 재작년에는 쉬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일을 관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으니 말이다. 작년 11월에는 입원해서 신경성형술을 했고, 그러고서도 보조기를 잡고 일어서는데 2달이 더 걸렸다. 그리곤 질병휴직을 쓰게 됐다. 질병휴직 제도가 있었지만 실행되기로는 첫 사례였다. 몸이 안되는데도 서류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필요한 에너지가 많았다.
(당연하게) 걷고, (당연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당연하게) 반듯이 누워 잠을 잤다.
그 모든 당연한 것들이 괄호 속에 묻혔다.
조금씩 가능해지는데 9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것조차 기적과 같은 일이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직까지 괄호가 빠지기는 무리다. 처음 쓰러지고 1년쯤이 지나서는 디스크가 흡수됐지만 몸이 불편할 정도의 통증은 여전했기 때문에 차라리 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까지 꾸역꾸역 올라가서 수술을 위한 검사를 다시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물었고, 이 이상은 보존치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차라리 더 아파서 수술을 해버리고 싶다는 못된 생각도 했다.
나는 4-5번 디스크가 튀어나왔고, 당시에는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24.10월 경에는 칼로 자른 듯하게 흡수된 것을 알 수 있다.(이것도 찍는 단면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곤 한다.) 여전히 움직이거나 걷는 것, 오래 앉아있는 것에는 제약이 있다. 흡수된 부분도 있지만 3-5번까지가 다 퇴행된 상태라 평생 완치는 없다고도 한다.
그림책을 보다가 깜짝 놀란 페이지가 있었다.
캄캄한 동굴 속에 비친 작은 불빛이라 생각한 것. 그로부터 선물 받았던 그림에 배만 빠진 장면이 그러져 있었다. 간절하게 매달렸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한 것이었다. 반짝반짝하고 아름답던.
그토록 귀이 여겨주고 보살펴주는데도 몸은 나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초 질병휴직은 3개월을 계획했는데 어느새 1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꼭 그 시간만큼 멀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오롯이 혼자 남았을 때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여전히 그대로인, 그러나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나는 변하지 않더라.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기도 하고, 지난 시간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서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 하는 순간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나는 정리와 청소를 취미처럼 즐겨하는 사람인 걸 알게 됐다. 인테리어와 집 꾸미는 데도 진심이고 꽤나 소질이 있다는 소리도 듣는다. 이제는 그 노하우들을 글로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허리 통증에 여전히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잠시 무리하면 허리를 관통하는 통증이 온다. 온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통한다. 그런 날은 꼬박 며칠을 누워 지낸다. 그래도 전처럼 시술을 받아도 안될 정도로 최악인 상태가 아니다. 몇 시간에서 며칠을 쉬면 다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곁에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내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누굴 만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림책 말대로 나는 '전혀' 말고 '완전히' 달라졌다.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주는 너와 함께 말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내 상황은 "사소해"라며 내 등을 토닥이고, 나의 강점을 더욱 빛나게 갈아주는 너와 있다. 달라진 내일은 더 멋져질 우리를 위해 오늘 닥친 슬픔의 바다를 또 한번 건너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