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by 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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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Unsplash


본가로 내려간 나는 며칠을 내리 잠만 잤다. 이때까지는 부모님도 이직 준비로 너무 피곤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셨는지 내버려 두셨다. 잘 먹고 푹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LH행복주택에 당첨이 돼서 계약금을 넣어야 하는 시기가 됐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자더라도 계약금은 꼭 해당 기간 안에 송부를 해야 했다. 여기에 간단한 문제가 나의 심각성을 더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인지능력이 매우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일일 자동이체 한도 때문에 계약금을 전부 이체하려면 은행에 가서 한도를 풀고 계약금을 송부하는 것이었다. 바로 LH로 계약금을 넣지 않고 은행업무를 하면서 어머니는 내 계좌로 이체를 하고 추후에 어떻게 할지를 알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간단한 일인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후 계약은 본인이 직접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올라왔다. 아버지는 달라진 나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셨고, 무사히 도착한 것을 보고는 계약도 잘 처리하겠지 하셨던 것 같다.





조울증이 폭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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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했다. LH에 가서 계약금을 넣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반나절을 내내 헤맸다. 치매 걸린 실험 쥐가 된 기분이었다. 같은 자리를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을 즐겼던 것 같다. 사실 그게 더 무서웠다. 가게의 간판들에 일련의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마치 게임에 들어가 있어서 현실에서 벗어난 것 같은 그 기시감, 그 기분을 만끽했다. 계약 관련자들을 맞닥뜨렸을 때, 악마처럼 보이거나 내 눈을 고개를 틀어가며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환각에도 시달렸다. 모두가 그렇게 보였던 것은 아닌데, 그런 몇몇 사람들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계약 업무 시간이 끝났음에도 구석에 앉아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상하게 느꼈던 당시 책임자는 출입구까지 데려다주며 내일 와서 다시 해도 된다며 집으로 보냈다. 그때서야 은행을 가야 하루 최대 이체 금액 한도를 풀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됐던 듯하다. ATM기와 계약 장소만 6시간 동안 빙글빙글 돈 것이다. 택시를 타고 이미 문을 닫은 은행 앞에 가서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다음에는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순간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잠시 정신을 돌아오게 했다. ‘OO아, 아무것도 하지 말고 택시 타고 최대한 빨리 집에 가’ 그리고 다음 날은 일어나서부터 환각과 환청과 망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움직이는 게 힘들어질 정도가 됐다.


계약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하지만, 내가 이미 혼자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임을 확인해 버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첫차를 타고 새벽부터 올라오셨다. 기력이 쇠해서 그랬다고 판단한 엄마는 일을 마무리 짓자마자 수액을 맞게 했고, 그마저도 나에게 의사가 독극물이나 특정 약물을 주입해서 특별해진 나의 정신을 흐리게 하려는 수작을 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기절했다가 다 맞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바늘이 꽂힌 팔을 잡아 뜯어야 하나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증상이 그야말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의 희생과 노력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도 문제는 지속됐다. 하룻밤을 어떻게든 그 집에서 잤어야 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두 나를 위해 모였다. 온갖 망상과 환청, 환각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 밤새도록 다 같이 누워 손을 잡고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외웠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증상들은 이렇다. 몰래카메라나 감시자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생각, TV 속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거나 뉴스 기사 중에 잔인한 것들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망상, 환청에 시달렸다. 음식, 심지어는 물에도 독을 탄 것 같은 생각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거나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는 등 이상 행동들을 했다. 집에는 두 명 정도가 자살한 것이 보인다며 당장 이사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동생을 다른 원룸에 이사시키고,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본가로 데려가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데려간 병원에서는 입원을 해야 한다며 좀 더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신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친구를 잘못 만나 그렇다며 편지를 쓰시면서까지 입원만은 안된다고, 통원치료를 하겠다고 의사 선생님을 설득하셨다. 그 순간조차 나는 태양이 나를 따라온다, 어떤 계시를 주는 걸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아버지는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고 계셨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 호소가 통했는지 통원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3개월 정도는 치료에만 집중했다.


처음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였던 나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PTSD,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에 지독하게 시달리기도 했다. 이럴 때도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아픈 와중에도 컴퓨터 활용능력 2급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막상 시험을 보러 가서는 쉬워서 아직 완전히 바보가 된 건 아닌가? 하고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당시 했던 지능검사 결과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정신과에서 IQ 검사는 통상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사를 했었고, 아니나 다를까 평상시보다 훨씬 낮은 IQ 결과를 봤기 때문에(평균 수준 범위 내이긴 했지만) 바보가 됐다는 생각을 솔직히 아직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병을 앓고 나면 뇌세포가 5%씩은 줄어든다는 결과도 있다고 한다.





조울증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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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 같은 시간들을 나 홀로 견뎌내야 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쉬웠을 것이며 스스로 파멸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이, 정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순간까지 갔을 때 나에게 남은 최선의 인간관계는 ‘가족’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증’의 관계를 지속해 왔던 엄마는 나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고, 곁을 지키며 사고를 방지해 주셨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직관이 우리에겐 있다. 위험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캐치할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보호자'는 가족이었으며, 말할 수 없이 힘든 순간들을 함께하고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고마운 사람들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로 인해 겪은 그들의 슬픈 감정이나 모든 심정들은 나를 위해 묻어두기로 하신 건지 여전히 들을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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