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존재일 것이라는 망상

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by 푸린
* 출처 : pixabay


2018년, 처음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한 때로 돌아가본다. 도대체 나는 왜 조현병, 조울증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앓았던 것일까?




난 뭐가 그렇게 아팠을까?



당시 나는 제약회사를 2년 반 정도 근무하고 퇴사한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겪었던 부당한 일들을 툭툭 털어내지 못했던 나는 지금 돌아보면 지독히도 괴롭게 후유증을 앓았던 것 같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더 심하게 앓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직 사유를 누군가가 물어보면 모두 내 탓, 나의 실수로 돌려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막내라는 이유로 업무 책임의 총받이가 되기도 했고, 내부고발자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모두가 아닌 것을 알면서 모른 척하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뿐이었나? 차장은 나를 오피스 와이프라 칭하거나 일하는 옆모습을 보고 싶다며 파티션을 없애고, 사무실에서 대놓고 1박 2일로 단둘이 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회식자리에서는 악수하자며 손을 주무르는 등 성희롱으로 책임을 물을 만한 일들도 서슴지 않았다.


근데 이게 다 내 책임이라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회사를 다시 다니기 위해서는 모두 내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실수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문제가 없을 만한 사유가 될까 밤새 고민했다. 그래도 1년밖에 안된 신입사원한데 10년 차 과장이 해야 할 불만처리, 교육업무를 1년 동안 맡기고 해낸 것을 보면 나는 뭘 해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열정이 식지 않은 건지 에너지가 그래도 있었던 건지, 지방에서 서울로 나는 주에 2번씩 올라가서 취업 컨설팅을 들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그 역에서 매일 주저앉아 통곡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한계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오히려 내가 편해진 것은 정신질환이 발병하고 놓아버린 시점이었던 것 같다. 너무나도 위험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말이다. 조현병이나 조울증의 증상이기도 한데 나는 나 스스로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됐다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신적 존재가 됐다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라 정부에서 나를 지켜보고 쫓아다닌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까지 발현이 된 것은 서울역에서였다.


그날은 취업 컨설팅 전에 면담을 요청해서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선생님에게 밑도 끝도 없이 좋은 자리에 나를 취직시키면 되겠다는 말을 하고, 수업을 빠졌다. 그러고는 서울역으로 곧장 갔다. 나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쫓아오고 있고 도망가야겠다는 망상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라도 현실에서 절박하게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갑자기 쫓기는 기분이 들면서 표도 끊지 않고 9번 플랫폼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서울역으로 와야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행히도 마침 아버지는 서울에 일이 있으셔서 와계신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신 채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상한 행동을 계속해서 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참을 바닥에 앉아있었다. 그 와중에 휠체어를 탄 분이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도록 돕기도 할 정도로 정상과 비정상을 오갔다. 당시에는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했던 행동들이지만 이제는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증상이었구나 느낀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데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때의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못하게 한다.



기차에 올라타서 좌석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아서 전화만 하는 나를 이상하게 느낀 승무원이 와서 표를 끊고 오라고 나를 내려보냈고, 다행히 실랑이를 하지 않았던 턱에 붙잡혀가거나 하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곧 아버지가 오셨고 당장 본가로 내려갈 수 있는 표가 없었기에 서울역에서 밥을 먹고 그 근처를 3시간 넘게 산책을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걸으면서 나의 기운을 빼서 가는 동안 잠들기를 바라셨거나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평소에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걷곤 했었는데 그날은 팔과 손이 얼얼할 정도로 아버지가 힘을 주어 팔짱을 낀 상태로 손을 잡고 걸으셨다.


그 당시에 나는 이상하게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들떴다. 얼마 만에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죄책감, 억울함에서 벗어났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설렜다.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겼다. 그날은 다행히 본가 가는 동안은 지쳐서 내내 잠을 잤고, 기차 안에서 본 화면도 나를 위해 따로 제작해서 송출한다는 망상 외에는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집으로 갔다. 그날은 얼마나 걸은 건지 엄지발가락이 피가 터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피가 날 정도로 걸었음에도 모를 정도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본가에 도착해서 나를 재운 후 어머니와 치킨을 드시면서 내가 어딘가 이상해졌음을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과부하가 걸리다 못해 정신을 놓아버렸다.





특별한 존재여야만 의미가 있는 삶인가




어느 날보다 맑은 아침, 비극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1%도 예상하지 못하고 방심한 그 순간, 교통사고로 차에 치인 것 같은 일이 나에게도 발생했다. 사실 이 날 나는 이미 죽었다. 큰일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끝나서 정말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도 이 날을 생각하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의 시작이었고,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가 생긴 날이기도 했기에 반드시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꼭 특별한 존재여야만 삶의 쓸모가 있는 것일까? 이제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 나는 무엇이든 될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나는 지극히도 평범하고 또 평범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게 나를 더 건강하게 해 줌을 믿는다.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길이 됐다. 실수를 하더라도, 혹은 길을 좀 벗어나고 아프더라도 말이다. 꼭 주인공일 필요도, 특별할 필요도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도 완전하고 반짝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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