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분명 이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조울증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시작이 그걸까? 생각하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 점들이 많다. 사실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조울증은 십몇 년은 겪어오다가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그 증상이 심해지면 알게 되기도 하고, 명확한 이유때문에 발병하기도 한다.
일단 나는 조울증은 모르겠지만 우울증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사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있긴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몰라도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만큼 감수성이 풍부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누구라도 눈물을 보이면 항상 같이 울고 있는 사람도 바로 나였다. 물론 그런 감정의 깊이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도 잘했고, 순식간에 읽어치우기도 했다.(덕분에 수능 언어만큼은 4개월 공부했으면서도 1등급을 맞았다.)
대학생때는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와의 문제때문에 달려오는 트럭 앞에 뛰어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때는 '죽는게 차라리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매번 술에 잔뜩 취해서 '내가 죽으면'을 시전하는 어머니때문에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으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하지? 그렇게 해주고 싶다' 같은 생각까지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나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내려갔을 때는 머리가 뽑히거나 맞는 일들도 생겼다. 이유는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사온 티셔츠와 엄마를 위한 구두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놓고 짠내나는 물건을 사오니 안타까운 마음이셨겠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했다. 이유도 모른채 맞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을 눈물로 쓸어담으며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일하는 백화점은 손님으로만 올 것이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공부를 미친듯이 해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잘' 살아보이겠다는 욕심을 가진 나는 완벽주의 성향을 갖게 되었다. 누구보다 예뻐보이고 싶었던 나는 렌즈를 빼고는 집앞에 편의점도 가지 않을 만큼 외모를 꾸미는데 진심이었다. 그리고 항상 좀 더, 좀 더 날씬해지고 싶어서 지금은 '나비약'이라고 불리우는 다이어트약이나 보조제들을 섭취하기도 했다. HPL이나 람스같은 시술을 받기도 했다. 그 때 내 인생 최저 몸무게인 49kg를 찍을 수 있었으나 음식을 극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그 예민함에 주변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기도 했다. 다이어트약은 정신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부작용으로 많은 사례들이 방송에 나오기도 하는 걸 봐서는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의 폭이 넓은 사람이거니와 원가족과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갖게된 완벽주의적 성향은 약간의 편집증과 우울증, 감정 기복을 가져다줬다. 사실 이 모든게, 그리고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한 나의 모습때문에 조울증이 발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타인이나 다른 상황들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발병한 조울증은 나와 함께 평생 갈 것이며, 항상 관리해야 할 지병이 된 것이다. 숨기고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내면은 곪아간다. 정신 질환이야말로 그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흔히들 병식을 느낄 때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내가 지금 어떠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구나, 무엇때문에 아플 수 있구나 파악하는 것부터가 치료의 핵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