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환자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by 푸린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사실 직업을 갖는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조증일 때는 누구보다 자신감도 넘치고 활력이 있기 때문에 면접 그 자체에는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감정의 창(감정의 폭)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기복이 있다. 울증기에 접어들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일하는 효율도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둘다 어느정도 겪어보면서 직업을 가져보기도 하고, 바꿔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조현으로 3개월 후, 첫번째 직장은 약국



조현병일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을 정도로 심하게 조울증을 앓고 3개월 후 내가 가진 첫번째 직업은 '약국 직원'이었다. 트라우마가 남았어도 내가 했던 것들은 남는다.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가졌던 직업이 제약회사 품질보증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살려 약국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3개의 병원이 하나의 약국으로 몰리는 곳이라 그곳은 매일 바빴다.


사람은 아플 때, 다급할 때 본인의 날 것의 인성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예민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조현병일 수도 있었던 환자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잘 챙겨먹는 것이다. 특히 조현병, 조울증의 경우에는 발현 초기에 빨리 약으로 증상을 잡으면 잡을 수록 예후가 좋다.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발병하고 한번 병원을 바꾸고 5년 넘게 같은 곳, 같은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약국장은 굉장히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직원이 쉬는 모습은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솔직히 정신병을 앓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어쩌면 더 예의를 차리고 조심하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세상에는 무례하고 자기 잘난 맛에 취해 다른 사람들을 막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나는 본디 사람을 굉장히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과 곁에 있느냐에 따라 모습이 잘 바뀌었는데 그 사람과 있을 때면 더 위축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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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숨을 쉬는 시간은 파트타임으로 오는 약사님들을 마주할 때였다. 그 중 한 약사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 분은 천주교 신자였는데 나도 신자인 것을 알고 제본된 기도 책자와 묵주를 선물로 주셨다. 나의 인생에 있어 감당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 기도만큼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들쭉날쭉한 감정을 조절하는 데도 기도만큼 효과가 있었던 것도 없었던 것 같다. 이것도 사실 간절하고 절실했을 때, 힘들 때나 의미가 있었지만.





두번째 직업 : 제약회사 직원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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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국장과 그 좁은 곳에서 숨막히게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다시 제약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핑계를 대가며 겨우겨우 면접 일정을 빼고 결국 합격한 곳은 두 곳. 각각 전라도와 충청도에 있는 회사였다. 한 곳은 상사가 나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좋은 분이라는게 느껴지는 곳, 한 곳은 연봉이 높은 곳이었다. 나는 돈을 택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묻지 않고 더 일을 잘 배울 수 있고, 좋은 분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 돌아보니 나는 시행착오를 계속 겪으면서도 돈 몇 푼에 나에게 더 좋은 곳을 놓치고 다녔었구나 싶다.


그렇게 선택한 곳은 연봉은 높았으나 퇴사율이 엄청나게 높은 곳이었다. 내 위로 3년 차된 직원과 과장이 유일한 사수였으나 나는 경력직을 인정받고 온 탓에 질문을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래로 들어오는 직원들에게는 알려줘야하는 상황. 거기다가 그래도 있던 사수 2명마저 퇴사를 해버렸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던져둔채.


모르는 것들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견디기 힘든 수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여기에 있는게 맞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2달은 식약처 감사로 밤을 새다 싶이해서 지칠 데로 지쳤던 나는 출근할 때 타의로라도 누군가 나를 차로 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던지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잦은 퇴사, 결국 회사엔 다닐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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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쯤엔 퇴사를 결심했던 것 같다.


이 당시에는 정신과를 다니지 않고 약만 잔뜩 받아서 먹곤 했는데, 약의 부작용이 졸음, 살찜이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는 병원도 약도 걸렀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부작용은 나를 정말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니면 약을 잘 챙겨먹지 않아서 나의 병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걸까?


하지만 당시에는 두가지 원인이 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라면 나만 관뒀어야지. 나보다 더 경력이 많고 능력이 좋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도 다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도망갔던 곳이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툭툭 털려고 했다. 가족들은 너는 이제 다시는 회사에는 다닐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했던 LH, 집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어찌됐든 실패했던 제약회사에 꾸역꾸역 또 들어갔던 나는 대인기피까지 생겨버렸다. 그렇게 다시 백수가 된 나는 벌어놓은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안전한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대문을 열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사람들을 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내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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