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기분이 극단적으로 들뜨는 조증과 깊은 우울감이 반복되는 만성 정신질환이다. 단순한 기분 변화의 범주를 넘어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파동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질환은 제대로 치료하고 관리하면 충분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며,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나다.
조울증을 겪으면서 조심해야 할 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제로 내가 겪으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고, 쉽게 또 빠져들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울증을 앓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약물 복용의 일관성 유지다.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나아졌다고 판단해 임의로 약을 중단하거나 줄이곤 한다. 나 또한 증상이 나아지면서 약을 차차 줄이거나 단약을 목표로 치료에 임하곤 했다. 약을 매일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히. 먹기 싫은 약을 증상이 나아지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줄이고 싶지 않겠는가?
가족들이나 친구들, 주변에서도 정신질환으로 정신과약을 복용한다고 하면 먹지 말라는 얘기들을 더 많이 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살찌니 먹지 마라' 일테다. 실제로 조울증약은 살찌는 약들이 많다. 나도 30kg가 넘게 찐 상태이기도 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지독한 허리디스크를 앓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울증 약은 앞으로 얘기할 조증이나 울증의 충동 조절, 내가 겪던 관계 망상, 무기력을 조절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분명히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먹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을 오히려 칭찬하며 누구는 그런 증상이 있어도 참아내며, 버텨내며 병원은 안 간다고 무안을 주기도 했다. 그게 진짜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는 모른 채 말이다. 정말 정신질환이 중증으로 가지 않는다면 사실 치료를 받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의 질은 말할 수 없이 떨어진다. 그뿐인가? 보통은 그 사람의 주변 사람, 특히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와 걱정을 한 아름 안겨준다.
또 조울증은 조증 상태에 들어가면 기분이 고조되고 자신감이 넘쳐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느끼기 쉽기도 하다. 증상 호전뿐 아니라 증상으로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때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현실감각을 잃은 채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약 복용은 ‘기분’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
조증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동도 경계해야 한다. 조증은 단순히 활기찬 기분이 아닌, 수면이 줄어들고 생각이 많아지며, 판단력과 자제력이 급격히 낮아지는 상태다. 이로 인해 과소비, 무리한 투자, 위험한 성적 행동, 충동적인 이직과 같은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병이 가라앉은 이후 큰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온다.
8년 동안 조울증을 앓아오면서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의 조증 증상은 잠이 없어짐, 말이 빨라짐, 성적 충동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음, 식욕 증가로 인한 폭식, 과소비와 소비에 대한 경각심 부족 등이 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무리하게 시도하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조증 증상이 가라앉고 나서 내가 겪은 가장 큰 후유증은 약의 부작용도 있지만 30kg가 증가한 몸과 7,000만 원의 빚이었다. 임의로 단약을 하거나 단약 후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되어 병원에서도 그만 와도 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재발이 무섭다.
따라서 자신이 감정적으로 너무 들떠 있거나 주변에서 “요즘 너무 과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일단 중요한 결정은 미루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안전하다.
반대로 우울증 시기에는 자살 충동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다. 이는 깊은 무기력과 자책,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는 왜곡된 인식이 스스로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는 무엇보다 자신을 고립시키지 않고, 작은 신호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반드시 치료자나 믿을 수 있는 지인에게 이를 알리고, 혼자 두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만성적인 정신질환으로, 재발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와 생활 관리로 재발 빈도와 강도를 줄일 수 있다.
1. 조울증이 재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약물 복용 중단이나 불규칙한 복용이다. 조증이나 우울증 증상이 사라졌다고 자의로 약을 끊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개월 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8년 차임에도 약을 매일 챙겨 먹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자기 전에 기분안정제(리튬 등), 항우울제 등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는 재발 방지에 매우 중요하므로 특정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챙겨 먹으려고 하고 있다.
2. 심리적·환경적 스트레스, 인간관계 문제, 이직, 이사, 수면 부족, 시험, 출산 등 스트레스 사건은 조증 또는 우울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의사와의 진료 결과 당분간 병원에 오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나타난다면 최근에 나의 신상에 변화가 있지는 않은지, 스트레스받을 만한 일들이 생긴 건 아닌지 체크해봐야 한다.
3. 수면 패턴의 붕괴, 수면 부족이나 불규칙한 수면은 조증을 촉발할 수 있다. 또한 알코올 또는 약물 남용,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거나 억제하는 물질은 감정 기복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직을 준비한다거나 취미 활동(뮤지컬 공연 등)을 준비했을 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잠도 줄었으며 연습이 끝나면 사람들과 새벽까지 술을 매일 마신다거나 했던 것 말이다. 이는 나의 조울증을 악화시켰다. 특히 조증.
잠은 더 없어졌으며 몸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혹사하기도 했다. 그 정도가 되면 기절했다가 다시 일어나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냈다.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부주의하고 잊어서 지적받기 일쑤였고, 일상생활도 다시 문제가 생겼다. 친구들과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생각에 잠겨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방금 했던 얘기도 놓쳐서 속상하게 했다. 성인 ADHD 인가도 친구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주치의 선생님에게 얘기했는데, 단칼에 아니라고 하셨다. 생각이 많은 것뿐이니 이런 부분은 약을 먹으면 바로 개선된다는 진단을 해주셨다.
하지만 쉴 시간 자체를 두지 않고, 많은 생각을 회피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일정은 조증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하는 단서가 돼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즐겁게 시작한 오일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자랑하듯 보여 드렸을 때도 오히려 더 심각해진 선생님을 발견해서 좌절했다. 색채가 너무 알록달록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증이라는 생각을 더 확고히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림만 보고 내 상태를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나 스스로 인지했던 증상들에 대한 언급과 근황 얘기로 판단하셨을 터.
4. 시즌 변화 (계절성 요인)가 있다. 봄과 가을에 조증, 겨울에 우울 증상이 유발되는 계절성 양극성 장애도 있다.
의외로 계절을 많이 타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들뜨는 기분이 유독 들고, 추워지면 움츠러드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아지기도 한다. 그만큼 감정의 폭이 다른 사람들보다 넓은 것이다.
5. 가장 좋지 않은 것인데 조울증,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나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치료를 회피하는 경우, 증상은 반복된다. 특히 가장 예민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시선 의식을 많이 했던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상한 나를 들키지 않을까 생각하며 빨리 정상으로 돌아옴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조울증을 겪었지만 '이렇게 다 완벽하게 극복했어! 약도 필요 없어! 치료도 필요 없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조울증을 부정하고 숨기면서 극복했다고 하면 할수록 나는 회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병식을 인지할 뿐 아니라 길게 보고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만성 재발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