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글자만 조금 바꾸고 합치면 사랑은 사람이 되고 삶이 된다.
그렇다.
우리 삶에서 사랑과 사람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조울증에 잠식돼서 파멸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나는 유독 사랑에 고파했고,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한창 아플 때 만나게 된 남자친구는 나를 '꽃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사랑과 관심을 듬뿍 주면 그만큼 활짝 피어나는 사람이라며 말이다.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병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허리디스크까지 겪으면서 나는 조울증이 심해졌다. 움직일 수 없었기에 병원을 가지 못하면서 조증 증상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독하다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자지 못하기 일쑤였고, 가까스로 약기운에 잠이 들어도 딱 4시간, 약기운이 지속될 만큼만 잠에 들곤 했다.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나는 정말 힘들 때 그래도 운이 들어오는 게 집인 것 같다. 마침 청약에 당첨되면서 집안 살림을 버리느라, 또다시 채우느라 소비가 점점 늘었다. 조증 증상으로 과소비를 멈추지 못해 빚이 늘어갔다.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됐을 때, 새로운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가족한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다들 놀라고 화도 냈고 안타까워도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한치의 거짓도 없이 모두 아셨기에 기꺼이 도움을 주셨다.
친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때 또 한 번 친구들이 정리가 됐다. 아프고 빚까지 많아진 걸 안 친구는 본인에게 피해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2년 동안 아픈데도 제대로 병문안 한 번을 오지 않고 그렇게 멀어졌다. 정말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고 챙겼었는데도 말이다.
반면에 가족들조차 나의 아픔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멀어졌을 때 곁을 묵묵하게 지켜준 친구도 있었다. 움직일 수 없어 누워서 밥 먹는 나를 위해 밥을 먹여주고,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 운전을 하고 부축을 해서 데려다줬으며, 굳이 굳이 회사에 와서 아픔을 증명하라는 요구에도 함께 동행하며 원내 첫 질병휴직을 얻을 수 있게까지 해줬다. 심지어 대체인력으로 휴직기간 동안 일까지 해준 친구는 내 평생 귀인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나는 혼자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혼자라고 느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쓸모가 없이 다른 사람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곤 한다. 조증 증상이 심할 때는 더더욱 그랬는데 그렇게 생긴 불안감을 매일매일 가득 채운 약속으로 잊곤 했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렇게 약해진 때가 제일 위험하다. 이럴 때는 우정도, 연애도 쉬이 해서는 안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그때 다가온 남자친구는 항상 이야기한다.
이 한마디는 정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마음속 깊이부터 나를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 바닥, 아니 지하까지 내려간 나의 자존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따스히 감싸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갖게 된 후유증들을 인정하고 극복할 자신감을 얻게 해 줬다.
여기서 시작이다.
다른 사람이 겪은 것이 아닌 나만이 겪었던 이 조울증.
이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풀어내는 것 말이다. 완전히 놓아버리고 잃어버렸던 나를 사랑으로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준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