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극복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by 푸린




조울증을 가진 사람이 그 증상이 심해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수면''식사'이다. 조증과 울증 모두 잠을 비정상적으로 자지 않거나, 혹은 많이 자기도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챙겨 먹지 않거나 너무 많이 먹는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잘 자고 잘 먹기'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야 된다는 말이다. 특히 수면 패턴의 유지가 핵심이다. 수면은 뇌의 감정 조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하루 6~8시간의 수면을 정해진 시간에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규칙한 수면이나 밤샘은 조증 유발의 위험이 높다. 또한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식사하는 등 일상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신체와 감정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되는가?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그들의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들로 가득 차 있는 상태다. 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기분 나빴던 이야기, 내가 했던 실수, 자기혐오, 무기력 모든 것들이 불만인 것이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잠이 오겠는가?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당장 들었을 때는 무겁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하루동안 계속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가벼운 물컵이지만 우리는 팔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글을 쓸 여력도 없을 땐 SNS 현명하게 활용하기



이러한 증상 관리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처음 시작은 바로 ‘기록’이다. 나는 위기의 순간이 올 때마다 글을 먼저 찾았다. 읽기 건 쓰기 건 듣기 건 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읽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건 사실 SNS다. 글을 쓸 여력이 없을 땐 특히 더 도움이 됐다. 가만히 누워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SNS도 현명하게 읽는 게 중요하다. 자극적인 정보나 감정 동요를 유발하는 콘텐츠는 피했다. 동기부여가 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글귀들을 찾아서 보거나 듣거나 읽었다. 단순히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보관함에 감정 별로 이름을 붙여 저장해 놨다가 해당되는 감정 때문에 힘들 때 꺼내본다면 감정 조절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의 여력이 될 때만 일기를 쓰자




사실 나에게 있어 가장 도움이 된 기록은 따로 있다.

힘든 순간에도 절대로 놓지 않았던, 바로 마음의 여력이 될 때 ‘일기를 쓰는 것’.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울증기 때 이 세상에서 나를 지우고 싶은 마음에 모든 기록들을 지웠고, 많은 일기들을 찢어서 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나쁜 과거들은 불에 태워 없애기도 하고, 찢어서 변기에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순간들이 남아있다. 좋았던 순간들,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들, 힘들고 아팠던 순간들, 그럼에도 해냈던 나 자신이 뿌듯한 순간들이 내 일기장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썼던 많은 기록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일기장이 말해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고, 나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가끔은 나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감정 기복도 심하고 예민하다. 하지만, 그때와 변함없는 생각을 가진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의 흐름을 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잊고 있던' 나, 반복된 감정일기로 되찾다



거기서 용기를 얻었다가도 다시는 전처럼 글을 쓸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많은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버린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잘 잊어버리는 성격 탓에 기억력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들을 글로 쓰다가 예전 일기장을 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도 발견된다. 내가 잊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이야기야말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근간이 되는 가치관이라는 점이다. 내가 읽고 듣고 경험하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들을 꾹꾹 눌러 적었던 그 순간들은 비록 실물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나의 무의식에 깊숙하게 박혔다. ‘새로운’ 내가 된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나 자신을 재 발견하는 과정인 것. 그것 하나 믿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란 사람에게 맞는 글귀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터이니, 오히려 농도 짙은 생각들을 이끌어 내보자고.


중요한 것은 절대 ‘일기 쓰기’라는 행위가 과제가 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가장 적절한 시점은 바로 마음의 여력이 될 때이다. 비슷한 생각을 2018년에도 했던 것 같은데, 몇 가지 일기를 소개한다.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뿐이고 난 할 일이 많다. 내 인생에서 다시 언제 올지 모르는 갭 이어. 안식년, 연구 년이 될지도 모른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는데 선풍기 바람을 쐬며 스피커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써 내려가는 이 순간을 잊지 말았으면. 삶에 지칠 때, 고민이 많을 때, 선택하는 것이 주저될 때, 이제는 제발 다른 사람 찾지 말고 의존하지 말고 믿고. 믿고. 제발 좀 믿고 펜을 들길. 떠오르는 생각을 끝없이 써 내려가보길. 스스로 답을 찾고 옳은 선택을 해나갈 능력이 나에게는 있다. 너무나 자주 그것을 잊는다.”

2018.8.4 일기 중에서


항상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가끔은 무너지고 흔들리고, 좌절하기도 했다.

“어두운 시절에 남이 나를, 내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해가 지면 심지어 내 그림자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나에게 힘이 되는 건 언젠가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봤을 때,

“힘들어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온갖 걱정이 내 몸을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려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더라. 훗날 내가 이런 감정으로 혹은 처음 겪는 일에 무너져 내렸을 때도 결국 내가 살아있다면, 다시 일어서려 노력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이 일기장일 것이다.”

2019.9.17 일기 중에서


한때는 누군가가 이런 내 기록들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나만의 것, 내가 오롯이 솔직해질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데. 혹시나 내가 죽었을 때 일기장이 유품으로 발견된다면, 이런 생각들이 다 알려진다면? 죽어서도 부끄러울 것 같기도 했다. 하. 지금이라도 걸러서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아예 한동안은 일기를 쓰지 않기도 했다. 일기는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서 쓴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전혀 아니었다. 그 생각은 사실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잘 정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순간 속에서 나는 최선의 선택을 내려왔고, 정답을 만들어왔다. 정답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풀이 방법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버림'을 익히는 계기도 온다. 잘 버리는 것이야말로 잘 지키는 것일 테니 버린 것에 미련을 버리고, 잊지 말자. 스스로 답을 찾고 옳은 선택을 해나갈 능력이 나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감정 기록을 십분 활용하라




이처럼 조울증은 단지 약물로만 다루어지는 질환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루는 심리적 기술도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 먼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조금 불안하다” “기분이 너무 들뜬다”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관찰하는 습관은, 감정의 폭주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런 감정 일기를 써내려 간 것도 나 스스로 감정의 패턴, 사이클, 전조증상 등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최근에는 의무 기록이라고 병원에서 그동안 받아온 진료, 상담 등을 기록해 놓은 것을 떼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한번 확인도 해보려고 한다. 스스로의 병에 대해 알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조울증 회복에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한 자세다.






이전 08화꽃 같은 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