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감정을 가두는 법

중증 정신병력을 모두 가질뻔한 자의 이야기

by 푸린

감정 기록에 이어서 나에게 있어 가장 좋은 심리치료제는 '음악'이었다.


특히 나는 감정, 생각 조절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감정을 ‘가두는 것’.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기록’이었음을 말했다. 그중에서도 일기를 언급했었는데, 내가 한 번에 생각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았고 빠르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 속도 조절을 ‘음악’이 해줬다. 순간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들에 복잡해질 때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었다.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기에.


사실 음악은 조울증뿐만이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가족의 문제가 있을 때도, 친구들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을 때도 도움이 됐다. 풀 수 없는 문제가 나를 괴롭힐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끝도 없이 들었다. 밤새도록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해하기도 했다. 그만큼 '음악'은 조울증 극복에 있어서도, 내 인생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치료제가 되어줬다.


이번에는 조울증에 음악이 좋은 치료제인 이유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의학적 관점: 정서 안정과 생리 반응 조절




의학적으로 볼 때, 조울증 환자는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자주 경험한다.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불안, 흥분, 불면 등의 증상이 악화된다. 음악은 이러한 생리적 반응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느리고 조화로운 클래식 음악이나 자연 소리 기반 음악은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혈압을 낮추며,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조증 상태에서 과도하게 흥분된 신체 반응을 진정시키고, 우울 상태에서는 정서적 긴장을 완화해 주는 데 기여한다.


또한 음악은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조울증 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불면증은 회복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데, 수면 전 이완 음악은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보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수면 패턴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뇌과학적 관점: 신경가소성과 도파민 조절




음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뇌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음악은 다양한 뇌 영역을 동시다발적으로 자극한다. 특히 감정 조절과 관련된 변연계, 쾌감과 동기 부여를 관장하는 중뇌의 보상 회로, 그리고 자기 조절과 통찰에 관련된 전전두엽이 음악 청취나 연주 과정에서 활성화된다.


조울증은 뇌 내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음악은 도파민 분비를 자연스럽게 증가시키고,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유도함으로써 우울 상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도파민 수치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음악이 약물 없이도 뇌의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음악은 신경가소성을 자극한다. 반복적인 음악 연주나 청취는 뇌 회로의 재구성에 영향을 미쳐 감정 조절 기능을 향상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조울증의 재발 가능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심리적 관점: 자기표현, 감정 해소, 자기 통찰




조울증 환자는 내면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때로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억압되는 감정 상태는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특히 작곡이나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 등 능동적인 음악 활동은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며, 환자가 자기감정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게 만드는 심리적 통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감정 조절력 향상에 기여하며, 감정폭발이나 무기력 상태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음악은 또한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한다. 합창단, 밴드, 음악치료 그룹 등의 활동은 사회적 유대와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며, 이는 조울증 환자가 겪는 고립감과 자존감 저하를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약물적 대안 치료로써의 가능성


현대 정신의학은 점점 더 ‘전체적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약물치료가 증상의 안정화를 도모한다면, 음악은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정서적, 심리적 동기를 제공한다. 실제로 많은 정신의료기관에서는 음악치료를 정규 치료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는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는 복합적 치료의 중요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음악은 부작용이 없고, 비교적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비약물적 치료 수단이다. 정기적인 음악 활동은 생활의 리듬을 형성하고, 규칙성을 회복하게 도와주며, 이는 조울증 환자에게 중요한 일상관리의 한 축이 된다. 예컨대, 매주 정해진 시간에 합창 연습에 참여하거나, 하루 30분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기록하는 활동은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힘을 길러준다.





임상연구




임상현장에서도 음악의 효과는 다수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정신과 병원에서는 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12주간의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환자들의 우울 점수는 평균 25% 감소했고, 자아존중감과 사회기능 평가 점수는 유의미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음악, 조울증 회복의 동반자


조울증은 단순한 기분장애를 넘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질환이다. 이를 다룰 때 우리는 증상의 치료뿐만 아니라, 환자의 전인적 회복을 도와야 한다. 음악은 단순한 감정의 위로를 넘어, 신경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회복을 촉진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약물과 병행되는 음악의 활용은 환자에게 능동적인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며, 자율성과 통제감을 회복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조울증 치료에 있어 음악은 단지 보조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뇌, 삶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치유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음악을 통해 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리듬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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