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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07. 2021

#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유독 나에게는 더

  그래도 열심히 일한 순간들을 나만 아는 것은 아니었는지, 도중에 러브콜을 받기도 했고 몇 번의 이직도 했다. 설명이 필요한 직장에 다니다가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는 직장으로 옮겨가며, 통장에 찍히는 금액도 조금씩은 더 커졌다. 넉넉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한번씩 마사지도 받으러 다니고 네일도 하러 다니면서 소소한 사치 아닌 사치를 부리는 게 행복했다. 나는 점점 성장하고 있고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습관적으로 토익 점수를 갱신하고 오픽을 치고, 간간이 월차를 내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단연코 한번도 백프로 만족했던 직장은 없었던 것 같다.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잔잔하게 회사를 꾸준히 잘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는 다 남의 이야기 같았다. 정규직으로도 다니다가 프리랜서로도 다니다가, 또다시 정규직으로. 여럿의 고용형태도 체험을 해봤는데, 이게 좋으면 저게 문제고 저게 문제면 이게 또 좀 아쉽고.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는데, 당시엔 그걸 몰라서 불만이 많았다.

  직장생활하면서 미웠던 사람, 아쉬웠던 점에 대해 말하면 정말 밑도 끝도 없지.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라고 뒷목 잡게 만드는 상황과 그냥 인간 취급하고 싶지 않던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뭐. 이직할 다른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회사를 관두는 패기는 충분하지 않았다. 쨌든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마치 상처에 연고 바르듯 쓰린 상처를 어찌저찌 진정시켜 줬으니까.

  지금의 인생이 행복하지 않으니, 남은 인생이 현재 다니고 있는 이 지역의 이 회사에서 갇히는 걸까, 그런데 내 인생 이대로 괜찮아? 정말 이 회사야? 이게 최선이니?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묻고 묻는 날들이 쌓여만 갔다. 어느 정도의 회사가 되고 어떤 고용형태가 되어야 안정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내 노력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직의 꿈은 나만 꾸는 것인지. 지인들이 하나둘씩 다니는 곳에서 승진을 했다,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았다- 같은 소식들을 전해줬다. 그 사이에 나는 최종 면접을 여러 번 떨어졌다. 잠결에 부엌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엄마 아빠의 속닥거림이 벽을 타고 내 달팽이관으로 들어왔다. “빨강이 거기 최종 떨어졌대.”

  힘들게 쓴 하루의 월차에 기적 같은 일정 조율로 여러 개의 면접을 잡아둔 날이었다. 지역에서는 여기서 서울까지. 짧으면 삼십 분, 길어야 반나절 걸릴까 말까 하는 면접 하나 보러 하루 날을 잡고 지역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그 자체가 중노동이었다. 마침 그걸 일타쌍피로 끝낼 수 있는 기회였다. 모두 최종인데 이 중에 설마 하나는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대체 평일 한가운데 월차를 갑자기 쓰는 이유가 뭐냐고 난리 치던 선배의 사자후를 힘들게 견뎌냈는데. 또, 다 떨어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아쉬워해 줄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애쓴 과정을 가장 옆에서 지켜본 분들이니 애썼다,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격려라도 들을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걸. 엄마 아빠는 잘 됐다고 말 그대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지금 쟤가 자리 잡고 결혼을 할 생각을 해야지. 만다꼬 서울까지 가서 월세 얻고 새로 직장 다니면서 적응하고 언제 어느 세월 자리잡노. 하이고마 거기 자알 떨어져서 서울 간다는 소리 안 해서 천만다행이데이.(짝짝짝)”

  SKY가 아니면 인서울 대학은 붙어도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고, 딸이 고3이 되자마자 기죽이듯 선언하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났다. 남동생은 살면서 그런 걱정은 없었다. 능력껏 원하는 대학에 붙었고 자기 인생 잘 살러 지역을 떠났다. 요즘 틈만 나면 남녀 진영으로 나눠 싸우는, 누가 더 힘드네 마네 하는 젠더 싸움에 나까지 보태고 싶진 않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은 그랬다. 내가 머리가 나쁜가, 능력이 안 되나, 열정이 부족한 건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붙어도 갈 수 있나? 집에서 보내주나?를 먼저 고민해야 했던 과거의 기억이 한겹 더 현재의 기억으로 채색됐다.

  당장이라도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그게 오늘 탈락 통지서를 받은 딸한테 할 말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줘야 원래의 나다운 모습이겠지만, 그날은 그럴 힘도 없었다. 그냥, 그랬다.

  정말로 나는 더 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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