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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Sep 28. 2021

# 프로라면 돈과 명예로 칭찬해줘. 말로만 말고

  나는 나의 첫 직업을 매우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대답 없는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현장은 그랬다. 업체가 의자를 세팅하지만 나도 쫓아다니면서 줄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고, 시제로 2+1하는 편의점 커피를 잔뜩 사서 음향 업체에서부터 경호팀 사장님에게까지 가서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십사 일일이 찾아가서 얼굴도장을 찍고 인사드리며 말이라도 한 번 더 붙여야 뭔가 일을 부탁할 수가 있었다. 안 해도 되는 일이긴 했지만, 선배들에게 배운 게 그랬고 또 그렇게 유대관계를 쌓아둬야 현장에서 일하기가 편했다. 현장에 도착하면 기계적으로 제일 먼저 음료수 사 와서 돌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일정표나 큐시트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상황 체크하고 계속 대기 했다가 일손 요청받으면 달려 나가서 의자도 같이 줄 세우고. 무전이 울리면 울리는 데로, 누군가가 부르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데로, 그저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때가 되면 마이크 테스트도 하고 리허설도 하고, 이벤트 부스에 가서 진행요원들 교육 상황도 한번 체크 하고, 현장 문의가 들어오면 정리하고 또 직접 가서도 보고. 왼쪽엔 무전 이어폰, 오른쪽엔 TRS 이어폰, 바깥소리로는 전화와 사람의 말소리를 돌아가면서 들으며 어떨 땐 어디서 뭐가 울렸던 건지 어디에 답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것도 시간차가 있어서 파도처럼 한 번에 쏴아 몰아치듯 바쁜 것들이 끝나고 나면 잠잠해졌다. 그러면 또다시 다음 일이 생기기 전까지 무한대기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고. 

  가끔 업체분들이 추가인력 1인분 정도의 느낌으로 날 부려 먹는 게 팀장 눈에 띈 날은 불려가서 현장 책임자의 권위가 없다고 혼나기도 했다. 없는 게 사실이지. 이제 일 시작한 뭣 모르는 꼬꼬마 피디에게 그런 게 어디에 있냐고, 없는 걸 어떻게 있는 척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나대로의 방법으로 실력과 권위를 쌓고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시간 속에 나름의 한땀 한땀을 쌓은 후, 본 게임이 시작되어서야 나는 ‘피디’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현장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정말로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니 배려받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느라 집에도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하는지 궁금한 가족들이 한 번씩 행사 현장에 불쑥 찾아와 염탐 아닌 염탐을 하기도 했는데, 특히 콘솔 부스로 인사를 갈 때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가족에게, 그것도 아주 나이스하게, ‘김 피디님 어머니시군요. 들어오셔서 편하게 공연 보세요’ 같은 것들로 내 면을 차려주셨다. 이 바닥 생리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끼리는 까도 외부에서 보이는 체면은 서로 존중하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아까 낮에까지만 해도 이 음료수 말고 다른 음료수는 없었냐며 타박을 주던 감독님이었는데, 엄마 앞에서 어깨가 으쓱해지니 그런 것쯤은 다 아무렇지도 않아지고, 다음에는 아까 말한 다른 음료수로 꼭 챙겨드리리라 생각하고 있더라.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들은 공연을 진행하게 되면 더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가수와 매니저들이 피디님 피디님 하면서 추켜세워줬고, 유명한 가수들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또 만났네요.”라며 건네주는 인사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당시엔 꿈만 같았다. 너무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무대 등장 전 같이 사진도 찍기도 하면서(귀신같은 팀장의 무전 “김 피디 쟤 또 저러네”) 마치 내가 뭐라도 되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의 막이 조용히 내린 후엔, 택시를 잡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장 잔고 확인을 해야 하는 불안함이 나를 기다렸다. 몇 자리 안 되는 통장 잔고의 숫자가 사람을 좀 비참하게 만들었다. 경제 TV PD를 하다 유튜버로 전업했던 분의 전업 계기가 그랬다던데. 결국은 나도 이벤트 씬에서 일을 하다 방송국 씬으로도 넘어갔으니, 딱 똑같은 심정이었다.

  입 발린 달콤한 칭찬은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는다거나, 적어도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여태 출근했던 주말 일수의 반의반이라도 휴가를 쓸 수 있다거나(축제는 대부분이 주말에 열린다)하는 모든 종류의 약속들은 밀리고 지켜지지 않았다. 비수기가 있는 직군이라 뛸 때 바짝 뛰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비수기라고 맘 편히 한숨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년을 또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

  가장 크게 와닿은 짝사랑의 지점은 이거였다. 총책임자라고 생각하고 진행하라고 해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심신을 갈아 넣으며 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정작 메인 킬러 컨텐츠나 전화 한 통이면 결정을 내려줄 핵심 인사의 연락처 근처에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해결되지 않고 손댈 수 없던 부분들이 있었다. 의전의 영역도 전혀 아니여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알겠더라. 그게 바로 인맥과 연줄의 영역이라는 것을. 당연히 내가 나서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time-consuming 같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내 영역 밖에서 다른 사람의 능력 또는 기회로 일들이 마무리되고 있었고, 뒤늦게 이런 상황들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이고 그렇게도 무능력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주 긴 시간 안팎에서 개고생을 하면서 작업한 후 작은 보상처럼 주어지는 찰나의 불꽃놀이 같은 화려한 순간을 진행하고 난 뒤 돌아온 사무실 내 자리는 굴러다니는 펜과 클립들, 오며 가며 던져놓은 영수증에 끝도 없이 쌓여있는 종이 더미까지. 세상 잡초 다 모아둔 쑥대밭이 따로 없었고, 사장은 거기에다가도 포스트잇으로 한 마디를 남겨뒀다. “자리 정돈 해보세요. 마음까지 깨끗해집니다^^”

  퇴사를 결심하며, 나는 그 포스트잇을 소중하게 떼서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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