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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12. 2021

#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처한 상황과 원하는 것의 괴리감 사이에 서 있던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었다. 차라리 이벤트 씬에서 일할 땐 괜찮았다. 정신없이 바빴고 내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적이 많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하나둘 행사가 끝나있고, 무언가를 배웠다는 뿌듯한 성취감도 들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프리랜서로 FD일을 할 때는 달랐다. 어느 정도 일을 배우고 난 뒤엔 매주 똑같은 포맷에 주제만 바뀌고(봄엔 두릅이지) 다람쥐 쳇바퀴처럼 똑같이 돌아가는 촬영, VCR, 스튜디오, 자막, 후처리 작업. 하도 똑같다 보니, 피디들은 익숙한 듯 그냥 우리에게 다 맡겼다. 종편실 감독님한테는 왜 종편을 피디가 안 오고 아무런 책임도 못 지는 너네가 오냐는 볼멘소리를 들으며, 피디들에게는 에이 이제 그 정도쯤은 피디가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 소리를 들어가며. 몸은 훨씬 편했지만,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뭐지, 내가 여기서 받는 대접은 뭐지- 같은 불만들로만 꽉꽉 채워지는 날들을 보냈다. 매주 마감하는 기분으로 한주 한주 방송분을 쳐내며 몇 년을 일 했지만 포트폴리오에 한 줄 써넣을 만한 내 것이 없다는 게 허무했다. 일하는 내내 이건 커리어도 뭣도 아닌,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알바가 더 재미는 있지 않을까. 게다가 선배라고 부르라곤 하지만, 절대로 이곳에선 내 선배가 될 수도 없고 나를 후배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과의 얄팍한 관계가 적응되지 않았다. 서로 위치를 알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편했다. 돈 못 버는 작가 친구는 그래도 꾸준히 돈이라도 받는 나를 시샘하고, 나는 쨌든 정규직 직원들이 부럽고, 정규직 피디는 틈만 나면 와서 "나도 너네처럼 프리랜서로 일하고 그만큼만 돈 받고 싶다. 책임감이라는 게 너무 무겁고 일이 힘들다"며 징징댔다. 그게 우리를 향한 부러움은 분명 아닐 것인데, 나름의 위로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남들이 볼 때는 '우와, 방송국' 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나는 그냥 시다의 시다 정도 되는 역할이었다. 여기서 받는 남모를 설움은 이게 다 정식 공채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다니던 방송국에 PD 공채가 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홍대에 M본부 서류시험을 치러 갔다 만난("야 너두?" "야 나두") 에프디 언니와 함께 나란히 지원했다. 우리 둘 중 누가 되네 마네 하지 말고, 이건 둘 중 하나가 되어도 엄청난 행운이니 서로를 응원하자고 했다. 둘 다 사이좋게 서류에서부터 떨어졌고, 우리는 사내에 생방으로 송출되는 지원자들의 면접 장면을 멀찍이 지켜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우리보다 나이 어린 피디가 최종으로 뽑혔는데, 피디들은 아무리 저 사람이 나이가 어려도 피디'님'이라고 부르고 대접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로 힘들어도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함께 일하던 VJ 언니는 여기서 무슨 꼴을 더 보겠냐며 바로 그만뒀다. 피디들은 왜 신입 피디만 뽑으면 FD들이 나가는지 모르겠다며 특히나 지원서를 쓴 너네 둘, 제발 그만두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좀 가르쳐서 쓸만하면 나간다고. 꼭 선배라고 부르라던 PD는 자기 후배만 챙기기 바빴다. 왜 일하던 밑에 사람들이 그만두는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 걸까?

  몇 년 뒤 방영된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보는데, 지난 일인데도 참 많이 아팠다. 기상캐스터 표나리 역에 정말로 많이 공감되면서도 그래도 쟤는 FD인 나 보단 나아 보인다-고 가상의 역에 질투했다. 그렇게 남의 아픔엔 무뎌지고, 내 아픔엔 더 예민해지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어쨌든 여기보단 더 좋은 곳, 더 나은 곳, 조금이나마 나를 인정해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아득바득 뭔가는 해보려 했다. 있는 데로 없는 데로 쥐어 짜내며 진을 뺐기에 나는 나 대로 계속 지쳐만 갔고, 힘껏 애를 쓰는데도 소득이 없으니 점점 더 자괴감에 빠졌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이젠 응원하지 않는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땐 어딜 가든, 이대로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왜 나는 꾸준히가 안 되는 걸까. 왜 자꾸 이런 불안한 상황을 직면하게 되는 걸까. 내 인생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엉킨 실타래를 살살 풀어볼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냥 버리든 끊어버리든 싹 다 엎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계속해서 버티다간 내 자신이 망가지다 못해 산산조각으로 깨질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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