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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빨강 Oct 13. 2021

# 뼈는 묻을 만한 곳에 묻는 거야

  길고 긴 고민의 끝에, 그냥 시작한 곳에서 뼈를 묻자는 생각으로 첫 번째에 다니던 회사로 돌아갔다. 30일 중 25일을 출근하면서도 보너스 한번 받지 못하고 매번 야근에 시달리던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니, 엄마는 어이없어했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으로 가려는 것보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쨌든 다시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땐 그게 맞는 길이라 생각했다.

  뭣도 모르는 꼬꼬마 피디가 현장에서 가져온 영수증 뭉탱이와 머리카락을 함께 쥐어뜯고 있으면, 그만 뜯고 빨리 영수증 내놓으라고 보듬어주면서 일도 알려주고 따끔하게 혼내주던 경영지원팀 언니가 3년 전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이제 다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냐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빨리 와서 형 좀 도우라고 하던 팀장은 이제 날 자기 새끼로 봐주지 않는다. 알아서 1인분을 하라는 눈치다.

  사실 다시 돌아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신입이 몇 있었지만, 나보다 다 나이 많은 남자였고, 전 회사 사원을 통틀어 여전히 내가 제일 어렸다. 들어갈 때부터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직급으로라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지만, 우선 들어와서 일하고 있으면 금방 인정해줄게-라고 던진 떡밥을 고민도 않고 덥석 물었다. 그래, 경력을 싹 다 인정해준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에게 바로 직급을 달아주는 건 좀 힘들 수 있겠다고 회사 편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 하지만, 거기서 제일 나이 많은 남자 직원이 나를 어떻게든 휘어잡지 못해 안달일 거라는 것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는 친절했다. 술자리를 몇 번 함께 하자고도 했다. 단둘이는 아니지만 같은 사원 피디들끼리. 일을 물어보거나 궁금해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았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마침 선약이 있는 날이어서 거절했고, 그 이후로 내가 먼저 술자리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나 한정, 많이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마치 본인이 내 상사인 것 마냥 굴었다. 서로 돕는 수준이 아니라 자기 일을 밑에 사람에게 하듯 대충 떠넘겼다. 본인은 빨강씨 빨강씨 하더니, 내가 사원씨- 했더니 소리를 질렀다. "어디 씨씨 거려요? 일을 그렇게 배웠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 출연진들에게 다 연락하고 일정을 확인해서 회사 포맷의 큐시트에 작성해(“이 포맷 말고 회사 포맷에요!”) 자기에게 보내달라 하는데, 직원씨가 회사 포맷으로 알고 있던 그 큐시트는 내가 3년 전에 만들어두고 쓰던 포맷이었다. 한번은 키보드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땐 나도 소리를 질렀다. 단 둘이 있으면 찍소리도 못하면서 다른 직원 피디들이랑 있으면 기세 등등하냐, 너가 직원씨지 그럼 뭐냐. 일 처음 한다며, 나이 많다고 바로 내 선배세요? "어디서 소리를 질러 너만 소리 지를 줄 알아? 나도 성격 있고 소리 지를 줄 알아 이 새끼야!"

  그 뒤로 그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날 데려온 팀장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회사에 맘이 떠 보였다. 으쌰으쌰 밤새 함께 일했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6시만 되면 사라졌고, 업계 분들과 계속 술을 먹고 다닌다고 했다. 이젠 그런 자리에 날 데려가지도 않았다. 직원씨와의 이런이런 관계가 좀 힘들다-고 이야기 해도 회사는 일단 참고 있어보라고만 했다. 몇 개의 일화가 더 있었지만 들어온지 몇달도 안 돼 직장동료와 문제가 있다는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그냥 꾹 참고 버텼다.

  사람의 감정이 극으로 치닫다 보니, 문득 어미새 언니가 알려주던 근로기준법이 생각났다. 지금 같아선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각났겠지. 억울하고 화가 날 때마다 법 조항을 찾아 읽었다. 간단하게 몇 개 조항만 찾아 읽어도 심적으로 위로가 되는 사이다였다. 하지만 이렇게 법전에 적혀 있는대로 세상이 돌아갈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거 작동 원리가 어떻게 되지? 로 흥미가 붙어 법에 관심이 생겼다. 그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법 공부 하는 사람들은 다 사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찾아보니 법원에도 공무원이 있네? 이건 지금 비법대생인 내가 도전해볼 수 있나? 

  이게 다 공채로 안 붙어서 그랬다는 과거의 설움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다 터지면서 이상한 도전욕구를 자극했다. 그래 이거야. 이걸로 내 인생 한방에 다시 리셋할 수 있어. 정정당당하게 한번 공부로만 승부 보자. 살면서 제대로 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지만, 제대로 맘 먹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만 공부하는 줄 알았던 법을, 나도 공부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이건 방송국 공채 같은 것들보다 더 투명해. 성적 말고는 핑계 댈 게 없잖아.  

  당연히 집에서 찬성할 줄 알았다. 여자는 공무원이 최고라는 말을 평생 듣고 살았으니까 이제라도 니가 정신을 차렸구나-하며 두 팔 벌려 환영받을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는 반대를 했다. 이제 와서 공부라니, 니가 모아둔 돈이 있니 뭐가 있니 왜 다들 일하고 자리 잡는데 이젠 또 공부래.


  울고 싶은데 마침 뺨 때려주는 격으로 일이 터졌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시무식 회식 자리, 회사는 목청 큰 사원씨에게 대리를 달아줬다. 뒤에서 따로 한말이지만 사장은 내게, 또다시 조금만 더 참아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침 엄마가 잘 있냐고 카톡을 보냈다. 애써 꾹꾹 참으며 맛있는 거 먹으며 잘 있다고 답을 했다. 어차피 이따 저녁에 집에 갈 건데 왜 하필 이런 상황에서 이런 카톡을 보내는 건지 짜증이 났다. 

  디자인팀 언니가 나 대신 더 화를 내주었다. 이건 빨강씨 무시하는 거 밖에 안 된다고. 그 직원이 빨강씨 보다 나이 많다고 얼마나 선배인 척 하고 빨강씨를 함부로 대했냐, 옆 방인 우리 사무실에서도 여러 번 소리 지르면서 괴롭히는 걸 다 들었는데 회사가 그런 일을 다 알고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게다가 빨강씨가 필요하다고 먼저 와달라고 제의한 게 회사 아니냐, 자기들이 불러서 온 빨강씨에게 하는 처우가 그게 뭐냐고 내 몫까지 화를 내고 걱정해줬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난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다 던지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까 그 발표를 들으면서도 하하하 웃으며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던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뭐가 문제였던 건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서 이겨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엄마 앞에서 펑펑 울었다. 도저히 더 하고 싶지가 않다고, 나 회사 그만 둘테니 제발 공부시켜 달라고.

  엄마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마침 그 시간 즈음 그릇을 깼단다. 그래서 밖에 나와 있는 두 자식 중 가까이에 있는 딸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단다. 그렇게 힘들고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으면, 밀어줄 테니 공부해보라고 했다. “나 사표 써도 돼?”, “응. 바로 써.”


  돈을 버는 동안은 나 잘난 맛에 취해 부모의 울타리가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 집에 돈 한푼 안 내며 얹혀사는 주제에.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훼방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시를 준비하는 과정도 내 기준에서는 일종의 이직의 형태라 생각해서, 선뜻 허락이 떨어진 이 상황이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부모에게 허락된 것만 할 수 있나, 허락된 삶만 살 수 있나-라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절박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부모의 보살핌 아래, 만 4년을 법원직 공시생이라는 타이틀로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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