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주 엄마 Aug 01. 2021

남편의 육아 참여

밤잠은 아빠가..

20대 때의 나는 비혼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스물 일곱 살, 첫 취직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직장은 너어어무 힘들었다.....


직장에 들어간 첫해에 하필 내 직속 부장님의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에 막말을 잘하는 타입이라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업무를 익히는 것도 힘들었고, 자꾸만 실수를 하는 나 자신에 실망했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힘들었다.


퇴근하고 오면 정말 진이 다 빠지고 영혼까지 털린 기분이라 꽤 일찍 퇴근하는 직장이었는데도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자기만 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고 내 한 몸 살아가기도 벅찬데 무슨 결혼이고, 무슨 출산이야..."였다.


지금도 충분히 힘들고 지치는 삶인데, 이 삶이 더욱 다운그레이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2년, 3년 점차 흐르고..


나는 서른이 넘고..


업무는 점차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고 퇴근 후에는 정말 '정신적 퇴근'까지 가능해지면서 조금씩 내 삶에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주변의 괜찮은 남자 지인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는 것을 보고 이대로 있다가는 좋은 남자들은 전부 결혼해 버려 씨가 마르고 괜찮은 남자들은 세상에 별로 안 남을 것만 같은 조급함도 생겼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불안정한 관계와 이별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정신적 소모와 스트레스를 받고, 정글과 같은 무한 경쟁의 소개팅 시장에도 지긋지긋해질 무렵 역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소개팅 속에서 차고, 차이고를 반복하다가 흔치 않게 내가 첫눈에 반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


처음 만난 약속 장소에서 "안녕하세요"하면서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는 나이에 비해 순수했고 동안에 귀엽게 생겼고 외모도 연애스타일도 내가 딱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무기력하게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미지근한 30대 직장인의 연애가 아니라, 매일 매일 예쁜 곳을 찾아 데려가 주고 뻔질나게 연락하고 열정 넘치는 20대 같은 만남을 선물해 줬다.


그렇게 순조롭게 아무 걸림돌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함께 보낸 신혼생활은 정말 재밌었다.


매일 매일 여행 온 듯한 느낌도 들었고, 밤 늦게까지 심야 영화도 보러 다니고 영화관 앞의 술집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며 실컷 놀다가.. 밤이 깊어도 헤어지지 않고 다시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지금 이 상태가 딱 너무 좋아서 아이를 안 낳고 딩크로 살면 어떨까 생각도 들어서 남편과 딩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꼭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딩크에 대한 확실한 신념(?) 내지 확신이 있는 게 아니었고, 만약 정말 내가 딩크를 하고자 했다면 결혼 전에 미리 얘기해 줬어야 하는 문제였다고 생각이 들어 아이를 낳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딩크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 전에 "나는 딩크할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인연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이는 안 가지면서 결혼은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딩크족에게 있어서 결혼은 결국 안정적인 관계를 위한 '확실한 결속' 정도의 의미인데, 남자들 중에 '안정적인 관계'만을 위해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려니 출산도 육아도 너무 무섭고 막막하기만 해서 남편에게 신혼을 좀더 즐기자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출산을 하게 되었다.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육아참여도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었다.


남편은 깔끔한 성격이었고 집안일을 정말 열심히 해줬다. (사실 나보다 깔끔함을 참을 수 있는 역치가 많이 낮아서 남편이 더 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나는 거의 요리와 빨래 개기 정도밖에 안 하고 나머지 청소, 빨래 돌리기, 쓰레기 버리기, 설거지, 기타 등등은 남편이 했지만 남편은 자신이 더 집안일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군소리도 없이 잘 해주었다.


그런 남편과 함께 있자니 애를 낳아도 남편이 많이 케어해줄 것 같은 기대가 은근히 들었고, 발 뻗고 누울 자리가 좀 보이기 시작하자 애를 낳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스멀스멀 들었다.


남편은 아기를 낳는 것을 망설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기만 낳아주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도 다 끊고 케어 다 할게! 자기는 그냥 낳아주기만 하면 돼! 내가 키울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남편 덕분에 출산에 대한 용기가 점차 나기 시작했다.


또 점차 내 나이가 고위험산모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 안 낳으면 몰라도 낳게 되면 노산은 여러 위험한 확률을 높이게 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점차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과 똑같은 것 같다... 계속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마감 날짜(?)'가 가까워 와서야 "이걸 안 할 수는 없지.."하고 해치워 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ㅠㅠ)



가장 낳고 싶어지게 된 계기는 남편과 여행을 다니면서였다.


어느 순간, 남편과 예쁜 곳을 가게 되면 이 아름답고 멋진 곳에 우리 아이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의 아이가 자연 속에서 뛰놀고 함께 캠핑을 하고 바다에 가고 워터 파크에 가고 즐거워하는 모습,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함께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임신을 하게 됐고, 출산을 하게 되었다..


출산을 한 후, 남편의 육아 참여도는 어땠을까?


처음 조리원에서 나왔을 때에는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정말 높았다.


수유하기 전에 남편이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내가 모유수유를 하고나면 남편이 아기를 트림시키고 재우고..  아기의 목욕을 시켜주고..  아기가 깨 있을 때 놀아주고..


남편은 출산휴가를 내서 출산 후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줬고 나는 '모유수유' 하나만 하면 됐다. (물론 신생아 시기에는 아기가 젖을 먹는 시간이 30분~50분 정도로 너무 길고 또 하루 8회~12회 정도로 잦아서 모유수유 하나만 하는 것도 무지 힘들기는 하다 ㅠㅠㅠㅠ)  


역시 우리 남편..! 하면서 힘든 신생아 시기를 남편 덕분에 많은 짐을 덜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에 가있고 나는 육아휴직 후 집에서 낮에 하루종일 아기를 전담하다보니 아기가 점차 나에게 더 익숙해져갔다.


예전에는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잘 안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안아서 재우려고 하면 서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잠이 들지 않았다.


남편 품 속에서 꺼이꺼이 울면서 온갖 서러운 울음소리를 자지러지게 내면 그 소리를 마냥 듣고 있을 수 없는 내가 결국 가서 아기를 다시 받아서 안게 되었고, 내 품으로 돌아온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뚝 그치고 평정을 찾고는 했다.


내가 모유수유를 하다보니 수유하는 시간을 나눠 가질 수도 없었고, 밤 중 수유를 교대할 수도 없었다.


언제나 밤에 깨서 아기에게 젖을 주는 것은 나의 일이었고, 어차피 깬 김에 내가 트림시키고 재우고.. 남편은 출근해야 되니 나도 깨우지 않았고 남편도 아기가 깨면 나에게 맡기고 그냥 잘 때가 많았다.


점점 더 기울어져 가는 육아의 저울추는 아기가 주양육자인 나에게 더 의존하게 만들었고 아빠에게는 안 가게 만들어서, 더욱 나에게 육아가 전담되는 구조로 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남편은 집안일과 아기 목욕시키기만 하고 남편의 퇴근 후에도 아기를 돌보고 안아서 재우는 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주말에도 '남편-가사일', '나-육아'라는 구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아기를 재우지 않는 남편이 아기를 깨우는 것에 별다른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되자 남편과의 갈등이 아주 커졌다.


남편은 아기가 깰까봐 별로 조심하지 않는데 결국 아기가 깨면 재우는 것은 '나'라는 불편한 현실...


몇 번의 갈등을 겪다가 우리는 결국 '마지막 밤잠 재우기는 남편 몫'이라는 합의를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편의 힘든 저녁 시간이 시작되었다. (대신 남편이 출산하면 끊기로 했던 게임을 하루에 한 판씩 해도 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한 판이지만 게임이 그놈의 '롤'이라서 기본 40분 정도는 걸린다...)


저녁을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아기를 재우려고 아기띠를 메고 온집안을 걸어다녔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30분이면 끝났지만 아기를 재우는 일은 기본이 15분~30분 정도 걸렸고 운이 나쁠 때에는 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정말 운이 나쁠 때에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재웠는데 30분만에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남편이 아기를 재우게 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나보다 남편이 더 아기가 깨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한번은 내가 거실의 에어컨을 끄면서 에어컨 녀석이 "냉방기능을 종료하고 자동건조청소 기능을 시작합니다."라는 소리를 냈는데, 남편이 내게 "아기 깨면 어떡할려고 방문도 안 닫고 에어컨을 꺼~!"라고 했는데, 나는 남편에게 면박을 당하면서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너도 아기가 깨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했구나 ㅎㅎㅎ의 느낌....)


또 남편이 육아의 힘듦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어 밤중 수유를 할 때 그냥 자기보다는 도와주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내가 더 자라고 말려도 일어나서 기저귀라도 갈아주려고 하고, 수유가 끝나는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일어나서 자기가 트림을 시키겠다고 했다.


남편이 한 텀이라도 기저귀 갈기+트림시켜 재우기를 해주면 훨씬 밤중 수유가 할 만해졌다.


남편이 아기를 재우는 동안 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그냥 나는 귀를 닫아버렸다. ("저건 아기가 우는 게 아니야~ 아기가 노래하는 거야~~"라면서 자기세뇌...;; ㅠㅠ )


그렇게 남편이 아기를 계속 재우다보니 남편도 점차 요령이 생겼다.


아기를 덜 울리면서 더 빨리 재우는 방법을 남편이 점차 익혀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아기가 남편 품에서도 점차 잘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더 많이 돌보게 되면서 남편도 아기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남편이 아기에게 귀엽다는 말을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아기가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면서 행복함이 뿜뿜하는 함박 미소를 짓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아기의 미소는 정말이지 엄청난 중독성과 매력, 그리고 힐링의 힘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자지 않는 아기를 아기띠에 매고 어깨가 부서져라 발바닥이 꺼져라 걷다가 허리도 아프고 지칠 때, 품 속의 아기를 쳐다봤다.


그때 아기의 눈과 마주치고, 눈 마주침이 정적과 함께 2초 정도 흘렀을 때...


아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쳐다봐 주었다.


아기가 해맑은 미소를 너무 열심히 짓다가 입가가 벌어져서 입에 물고 있던 공갈 젖꼭지를 떨어뜨리고마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는 복주


티없이 맑고 순수 미소를 짓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괜스레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너무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일 때도 있다.


이 세상의 더러움을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아기의 때묻지 않은 미소를 보면 이 웃음을, 이 맑고 순수한 어린 영혼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아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가야.. 네가 너무 예쁠 것 같아서.. 너를 너무 만나고 싶어서 엄마가 너를 이 험한 세상에 불러내버리고 말았어. 엄마가 불러냈으니까 엄마가 너를 평생 지켜줄게.."



얼마 전 친정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육아가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묻는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최고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는 중인데, 내 인생에서 진짜 최고 행복해.."


오죽하면 요즈음은 딩크를 생각하던 내가 아기가 너무 예뻐서 '둘째도 그냥 낳을까?'라는 고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나 자신이 스스로도 신기하다.


매일 스스로의 앞가림밖에 몰랐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던 내가..


그 이기적이던 내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과 돌봄을 쏟을 수 있다니..


요즘은 아기의 옹알이가 부쩍 늘어서 귀여움이 한층 더 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옹알이 속에서 '엄마'와 비슷한 발음을 낼 때가 종종 있어서 깜짝 놀라곤 했다.


울음 속에서 "엄매~ㅠㅠ"하는 울음이 나오기도 하고, 혼자 잘 놀고 있다가 갑자기 "음~마!"하고 외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육아 참여도를 높이면서 남편도 '아빠'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정확히는 '압...파!'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기가 처음 '아빠'라고 했다면서 싱글벙글하는 남편의 모습이 귀여웠다.



육아...


정말 힘든 노동이지만 그 힘듦 이상으로 아기가 나에게 애착을 갖게 되고 미소를 날려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요즘 아기에게 자장가로 많이 불러주는 스탠딩 에그의 'litte star'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 가사가 이 세상의 모든 아기 부모들의 마음을 딱 대변하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내가 하는 이야길 잘 들어봐
나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너는 꿈을 꿀 거야
little star
tonight 밤새 내가 지켜줄 거야
처음 너를 만났을 땐 정말 눈이 부셨어
너의 미소를 처음 봤을 땐 세상을 다 가졌어
little star
tonight 밤새 내가 지켜줄 거야
내 품에 안긴 채 곤히 잠든 널 보면
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
이렇게 예쁜데
숨이 멎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잠들 수 있겠니
나의 사랑 나의 전부 하늘이 내린 천사
나의 두 눈을 나의 세상을 모두 훔쳐버렸어
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
이렇게 예쁜데
숨이 멎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잠들 수 있겠니
눈을 감고 내가 하는 이야길 잘 들어봐
나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너는 꿈을 꿀 거야
little star
tonight 밤새 내가 지켜줄 거야 내 사랑
tonight 밤새 내가 지켜줄 거야
평생 내가 지켜줄 거야



육아는 분명히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좋은 거니 남편과 안 나눌 수가 있나...  


함께 하는 육아는 혼자 하는 육아보다 확실히 훨씬 덜 힘들고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나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이여! 화이팅~!  

이전 13화 초보엄마가 멘붕에 빠지는 과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