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수 끊고 통잠 재우기 프로젝트(4)
아기가 통잠을 잘 수 있게 된 후의 새로운 세계
복주는 수면교육 첫째날 밤에는 중간에 깨서 40분을 울었고 둘째날 밤에는 10분을 울었다.
셋째날 밤에는 한 번도 안 깨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11시간 통잠을 잤다.
복주가 11시간 통잠을 잔 날, 나 역시 충분히 긴 통잠을 너무나 너무나 오랜만에 잤다.
아침이 되자 젖으로 퉁퉁 불어터진 가슴은 울퉁불퉁해져있고 젖으로 꽉 차서 아팠지만, 몸의 컨디션은 날아갈 듯이 개운했다.
너무 몸 상태가 좋아져서 머리가 맑고 정신이 또렷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살마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스무살 때 라식수술을 했던 날, 갑자기 개안한 것처럼 온 세상이 환하게 잘 보이게 되었던 그날, 나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었다.
복주가 처음으로 11시간을 자고난 아침, 라식수술을 한 그날처럼 아침 햇살이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라디오에서는 'Life is good'이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노래 가사처럼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분이 좋고 몸 상태가 좋아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유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고 육아를 했다.
역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로구만..!
그날 낮에 아기와 열성적으로 놀아주는 자신을 보면서 밤에 푹 자니까 이렇게나 낮에 아기에게 사랑을 많이 줄 수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은 일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고 더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집도 더 깨끗해졌다.
열한 시간을 내리 잔 복주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우리 복주는 이렇게 통잠 잘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기였는데, 그동안 엄마가 바보라서 너를 밤마다 일어나게 만들고 힘들게 했구나!"
그러나 수면교육이 성공한 듯해서 너무 행복했던 그 밤은 그 후 열흘 동안 오지 않았다.
11시간 통잠을 자고난 다음날이었던 수면교육 넷째날 밤의 저항은 정말이지 심각했다.
새벽 네 시에 깬 복주는 안아줘도 온 몸으로 뻐팅기기를 하면서 절규하며 울었고 제발 젖을 달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내 몸을 타고 올라가서 뺨을 먹으려 들고, 허리에 딱 앉아서 단추를 풀어헤치며 가슴에 달려들고, 그래도 안 주니까 종아리를 깨물면서 물고.. 온 몸으로 젖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젖을 안 줬다. 그냥 독하게 안 줬다.
이미 11시간 통잠의 기쁨을 맛본 엄마는 주5일제를 맛본 직장인이 다시 주6일제로 돌아갈 수 없듯이, 통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가 젖을 안 주는데 복주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날밤이 가장 고비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아기와 씨름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넷째 날 밤외에도 복주는 낮이고 밤이고 눕혀서 재우려고 하면 악을 쓰면서 울었다.
첫째날처럼 길게 우는 절멸법을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진적 수면교육인 스왑법 역시 아기를 짧게나마 울리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계속되는 아기와의 사투에 남편은 완전히 질려서 이렇게 말했다.
"더이상 아기를 울리는 걸 참을 수가 없어. 아기의 울음 소리가 고문처럼 느껴져. 계속 아기를 울릴 거라면 차라리 나는 집을 나가서 모텔 잡고 자겠어."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저자는 아내를 끌어안고 함께 울면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나는 나를 끌어안아 줄 남편도 없었다.
남편과 수면교육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다툼을 하고.. 내가 제발 여기서 포기하지 말자고 통사정을 하고 설득을 하고.. 남편은 못하겠다고 하고..
그렇게 지난한 싸움을 한 후, 내가 '아, 이제 정말 더이상 못하겠다. 그냥 포기할까...? 이제 밤에 자다가 깨면 남편 말대로 그냥 가서 바로 안아줘야겠다.'라고 생각을 하던 2월 28일, 수면교육을 한 지 2주일이 되던 날..
드디어 복주가 다시 통잠의 세계로 돌아왔다.
새벽에 한 두번 깨던 버릇이 없어지고 복주는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7시까지 쭉 통잠을 잤다.
"드디어 됐네?"
아침이 되어 시계를 보고 나와 남편은 서로 마주보며 기뻐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통잠을 자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면 그동안 복주를 울린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서 아까워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복주를 눕혀서 재우는 것은 예전보다 저항이 훨씬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저항이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점점 더 자주 혼자 뒹굴거리다가 자는 모습을 보여주는 복주를 보면서 이 저항도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기대해 본다.
수면교육을 하면서 얻은 것은 단순히 '통잠'과 '좋은 컨디션', '8시에 하는 빠른 육아퇴근'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복주에게 끌려다니는 육아를 하면서 나는 무기력했고, 내가 복주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수면교육을 하면서 나 역시 '아기가 울면서 하는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라는 모종의 압박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고, 앞으로 복주가 자라면서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쓸 때 좀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교육은 내게 육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복주도 아기이지만 배울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복주를 따라서 나 역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게 되다보니 나의 생체 리듬 역시 규칙적으로 바뀌는 듯했다.
좀더 일찍 일어나서 더 활기찬 상태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시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아침에는 '최수진의 모닝스페셜'을 들으며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게 되었고, 육아퇴근을 한 후에는 읽고 싶던 책도 읽고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도 쓰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아기에게 루틴이 생겼다는 것은 나에게도 루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체계와 질서가 잡힌 삶 속에서 집안도 좀더 정돈되었고 육아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수면교육에 도전해서 통잠을 자게 된 후의 생활은 완전히 다른 신세계였다.
아마도 지난 2주간의 수면교육은 내 육아 생활에 있어서 'BC(Bofore challenge)'와 'AD(after deep sleep)'로 구분될 만큼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 이 프로젝트 글이 수면교육을 간절하게 시도하는 누군가에게 희망과 안내서가 되길 바라며..
<수면교육 프로젝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