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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Apr 12. 2024

7. 감정소비가 아깝지 않은 관계

이제는 나를 먼저 사랑하자

 언제부터인가 ‘감정 소비’라는 말이 우리들 사이에 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가 감정, 심리, 마음이라는 것에 점점 초점을 많이 두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이 아플 수 있고, 그 이유로 병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예전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학생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던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 상담과 약을 병행하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나는 내가 맺은 모든 관계에 나의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다 것이었다. 상대가 힘든 이야기를 하면 내 일처럼 같이 힘들어하고, 화났던 일을 말하면 함께 화내주고, 슬픈 일이 있었다고 하면 함께 슬퍼해줬다. 그게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나의 한계를 알지 못했고, 내가 지쳤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내가 지쳐버리고 나서야 나는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통의 기준보다 감정을 더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소비가 남들보다 과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소비 후에 완충이 되기도 전에 다시 소비하는 것을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 버티는 것에 지쳐갈 때 즈음이 돼서야 상대는 내게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처음에는 사실 서운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들이 그만큼을 다 달라고 한 것은 아니니 그것 또한 내가 조절하지 못한 탓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감정을 소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때로는 감사하고, 때로는 서운해하면서 나는 왜 그들에게 나의 내 감정을 한없이 다 퍼붓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좋으니까.’ 


내가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보내주는 호감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주는 것이 그저 고마워서 그들에게 주는 나의 감정을 조절할 시간 없이 소비한다. 


 적정선을 넘는 감정 소비를 하면서 나는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나의 감정 소비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그것에 희열을 느껴서 나의 생각, 감정을 뒤로하고 더욱 그들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했다. 내가 점점 희미해질 수 없던 것에는 내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조절하며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 내가 그에게 호감을 표시했을 때 말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라고. 상대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시에는 원하는 답이 아니라서 서운한 마음도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과한 감정 소비를 하는 것이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에게 과하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없어도 나는 존재할 수 있는데 그들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해하는 나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내가 연습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적당한 감정 소비,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기이다. 아직도 나는 주변 사람들 말, 행동, 표정에 신경을 써가면서 감정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깊게 하고 들어가지 말자고 되새기고 있다. 그래야 정말 감정 소비가 필요할 때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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