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자아 존중감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생각인데 나는 어릴 적부터 나를 좋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나의 보여지는 모습도, 나의 성격도, 나의 목소리도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들어 한 것이 없었다. 사춘기가 되면 그 또래에 유행하는 것들을 하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의견 하에 어느 것도 하고, 가질 수 없었고 그건 내가 또래와는 조금, 때로는 많이 뒤처져 있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 와중에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한때는 그러한 성격도 갈아엎고 싶을 만큼 밝은 또래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나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나를 좋아할 수 없었다. 점점 어두워졌고, 점점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자존감이 올바르게 생기고 자라나야 할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더욱 열심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스물 중반의 성인이 되어있었고, 하나씩 바꾸어 나가기에는 꽤 어려운 상황이 되어있었다. 내가 나를 생각해서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베풀던 것을 조금씩 줄이고 나를 더 위하려고 하면 그들은 그것에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들이 원하는 나로 돌아갔다. 그걸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했다. 그러면서 나는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면 ‘나는 왜 살고 있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타인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자존감을 성장시킬 수 있다. 내가 나의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어떻게 느꼈느냐면,
1. 같은 실수를 한 상황에서 타인에게는 너그러우나 자신에게는 엄격해서 스스로를 질책한다.
2.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를 계속 찾는다.
3.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신이 아닌 남에게서 얻으려고 한다.
4. 자신의 감정, 생각보다 타인의 감정, 생각이 먼저다. 그래서 눈치를 많이 본다.
나에게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내면의 소용돌이들이다. 특히 내가 힘들었던 것은 타인의 감정, 생각이 항상 먼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에 온 신경을 세우고 느끼고, 알아채려고 했다. 그 결과 그들의 행동과 말투가 조금이라도 달랐지면 그 원인이 내가 아닌지 나의 행동과 말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매우 지치는 일이지만 몸에 배어버린 습관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눈치가 있는 사람은 아닌데 어떠면 나의 가정환경이 나의 눈치 능력을 키운 건지도 모르겠다.
자존감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것이 내게 조금만이라도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음에도 나는 내가 실수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특히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하면 그것을 갖고 계속 나를 질책했다. 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 타인은 알 수 없어서 아무도 멈춰줄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 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반지에 ‘괜찮아, 괜찮다.’라는 문구를 새겨서. 그리고 실수를 하고 그것을 질책하며 진행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 그 반지를 쓰다듬었다.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라고 되새기면서. 그리고 이 반지는 나와 3-4년을 함께했다. 지금은 한쪽에 잘 보관 중이다. 이제는 그만 기대야 될 것 같아서.
두 번째로 자존감을 성장시키기 위해 한 것은 타인의 말투와 행동에 신경을 끄는 것이었다. 아니,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 내가 이유가 되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건 사실 계속 연습 중이다.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유난히도 더욱 예민해지면 타인의 말투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는 한다. ‘나 때문인가?’하고 말이다. 이걸 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꽤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나 때문인가?’ 생각하고 딱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기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자존감은 한순간에 성장시킬 수 없다, 특히 성인이 된 후에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살 수는 없다. 자존감이 낮으면 타인이 내게 주는 존중을 받지 못한다. 타인이 주는 애정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존중도, 애정도 받아본 사람이 받을 수 있는데 내가 나에게 주지 못했으니 그들이 주는 존중과 애정을 겸손을 가장에서 밀쳐버린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애정하게 되면 그들이 주는 존중과 애정을 그저 감사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자존감은 그래서 연령대에 맞게 성장해야 한다. 나의 몸이 자라는 것과 같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