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 단절된 판단의 부질없음에 대하여

눈동자가 담게 될 색깔

by 눈빛

부질없는 듯했다.

내 세계에 갇혀서 혼자만의 그럴듯한 기준으로 눈앞에 보이는 현상과 사물의 우열을 가리고, 무엇이 나은지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


그렇게 그곳으로 뚜벅 다가가 비스듬히 섰다.

반듯한 모양의 정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어코 도달한 그곳은 기울어진 산 중턱이었다.

온 세상이 수평을 이루며 그 형상이 고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시때때로 풍경이 바뀌곤 했다.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나 산길을 벗어나기도, 해가 저물어 그 자리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기도 했다.

커다란 산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등골이 오싹하기도, 때론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마주하여 잠시라도 미소를 짓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계획보다 한참 늦게 정상에 도착했지만, 내 눈동자는 그 어떠한 감탄사도 내뱉지 못하고 벙어리가 된 채, 곧바로 수평 위에서 노을을 덮은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의 빛으로 적셔지고 말았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는 착각에 절여진, 나아가 자만에 발을 걸친 눈동자만큼 빈틈 투성이인 것이 없다.

외부로부터의 작용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원하지 않는 형태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상정해 놨던 목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것대로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내가 바라던 이상향을 마주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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