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이을정 Aug 08. 2024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추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리는 혼잣말이다. 혼잣말임에도 속 얘기는 잘 꺼내지지가 않는다. 내가 나를 의식하며 어려운 사람 대하듯 한다. 자신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는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이 혼잣말 속에는 당시의 상황과 여행 이야기, 문장과 행간 속에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숨겨진 이야기를 숨기기 위해 횡설수설하고 딴청을 피운다. 과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겠지.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찍어 둔 사진만으로 나의 스물을 찾아내기 위해 멋들어진 가짜 기억을 끼워 맞출 수도 있다. 혼잣말은 공기 속 파동을 타고 지구 반대편을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아련한 추억 속 나를 지금 내가 다시 바라본다. 파노라마 사진처럼 나는 연속되어 존재한다. 연속되는 나의 존재의 그 한순간도 무가치한 적은 없었다. 연속성을 가지나 독립성을 유지한다. 아직 혼잣말도 시작 되지 않았는데 사념이 너무 길었다. 각설하자니 이미 길어진 말에 나이 탓을 해보며 인생의 파노라마 속 사진 한 장을 꺼내본다. 


“이 사진을 누가 찍어줬더라? 2003년 2월 25일이었구나. 저때 왜 저런 겨자 색 모자를 썼을까? 참 어울리지도 않네. 저 때 입었던 옷들이 다 기억나네. 석관시장에 있는 옷가게에서 알바 할 때 샀던 청바지를 입었는데. 하얀색 반 폴라 티셔츠에 푸마 집업 잠바. 지금보다 날씬하네. 언제나 사진 속에 나는 예전이 지금보다 날씬한 거 같애.

 

중국 북경 만리장성을 혼자 갔다니 그때 나도 참 무식하고 용감했구만. 근데 진짜 사진을 누가 찍어줬더라? 세원언니랑 지혜였나? 그때 같이 중국 여행을 가기로 했었던 거 같은데. 

비행기를 타고 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배편을 알아봤지. 동인천항에서 아파트 10층 높이쯤 되는 배를 타고 너무 신나했지. 3등석이었던 거 같고. 24시간 동안 배를 타야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 긴 항해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24시간을 굶주림에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는-배에 올랐다니. 출항을 기다리며 갑판 위에 서서 항구의 갑문을 통해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바라봤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 그때 진짜 검은 바다가 떠올랐지. 이 기억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침몰 뉴스를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그때 높은 배와 깊은 바닷 속 이미지를 떠올리며 내가 그 물 속에 잠긴 것 같은 괴로움으로 몸서리 쳤지. 그 후로 배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이때는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이 여행의 설레임만 있을 때네. 역시 나쁜 경험이 쌓이지 않은 어릴 때가 좋아. 


 2003년 3월에 중국에 전염병 사스가 유행했지. 우리나라 김치의 위력! 그때 인경언니가 중국 상해로 어학연수를 간 해였는데. 간지 얼마 안돼서 전염병 때문에 외국 유학생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서 인경언니랑 소수의 몇 명만 중국 학교 기숙사에 남아 서로의 안녕을 걱정하며 버텨냈다고 했었는데. 그해 3월에 인경언니가 사스 걱정에 본인도 한국으로 와야 할지 걱정이라며 비싼 국제전화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한 해 전에 중국여행을 다녀온 인경언니가 한국에서 배를 타고 중국 탕진항에 내리고, 기차역으로 버스를 타고가 북경행 기차표를 끊고 북경으로 가면 된다고 얘기를 해줬지. 어린 나는 정말 간단하구나 생각하며 언니가 그려준 약도가 그려진 종이만 들고 중국에 갈 생각을 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진짜 무모하다. 


중국과 문호 개방 한지 몇 년 안 된 시점이라, 중국은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이미지가 컸지. 켈빈클라인 청바지에 버켄스탁 신발을 신고 다녔던 세원언니는 중국 여행은 간다고 했지만 좀 꺼려하는 거 같았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세원언니는 일본이랑 참 어울린다고 얘기하곤 했지. 신도시 분당의 정사각형으로 정비되어 있는 정갈한 계획도시에 살다보니 시골이나 복잡한 골목과 규칙 없는 걸 힘들어 했던 거 같네. 세원언니를 8년 전에 동기언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보고 못 봤네. 지금은 천안에서 남편이랑 딸이랑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고 며 칠 전 동기 언니 아버지 장례 소식을 전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전했는데. 꼭 조만간 보자고 굳게 약속도 했었지. 천안이 멀지 않지만 생활이 달라지니 만나러 가기가 중국보다 멀구만. 


북경 역에 내려서 제일 먼저 지도를 중국 돈 10위엔을 주고 샀지. 지도를 얼마나 많이 봤으면 구멍까지 났는지. 중국 지도에는 버스 노선이 잘 표시가 되어 있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저 만리장성도 숙소에서 밤새 지도를 들여다보고 버스 정류장과 번호, 내리는 위치를 수십 번 확인하고 수첩에 적었는데. 그 지도를 마지막으로 본 게 저렴한 유스호스텔 반 지하에 있던 도미토리 4인실이었지. 


패키지여행이 아니고 자유여행이었기에 여행지를 정하고 가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쉬운 건 아니더만. 그래도 직접 발로 걷고 확인하고 다니니 그때만 해도 북경이 내 손바닥 안이었는데. 지금은 천안문 가는 길도 기억이 안 나네. 

만리장성으로 가려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탔던 거 같은데.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에 몸을 싣고 혹시나 정말 혹시나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노심초사 했는데. 근데 웃기게도 아무도 나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오히려 중국인이 나에게 길을 물어볼 정도였으니. 다시 사진을 봐도 중국인같이 안 생겼는데. 외국인 같은데. 

진짜 만리장성을 보는 순간 감개무량! 그리고 그걸 직접 내 발로 걸어 올라가려니 저질체력! 계단이, 계단이 끝이 없어. 그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만리장성이 남아 있는 부분의 끝까지는 가기로 결심했기에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숨이 턱턱 막혀도 계단의 폭이 좁고 미끄러워도 그 끝에 올랐지. 

저 사진을 찍은 위치가 아마도 거의 그 끝 어디일거야.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때였지. 젊어서 힘도 있었고. 어찌어찌하여 대학 전공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글을 쓰는 건 자기와의 싸움인지라 나와의 전쟁을 치르고 지지 않기 위해 마음의 멱살을 잡아대던 혈기 왕성할 때였지. 이 여행도 나와의 약속의 일환이었고. 

  

아, 근데 저 사진은 진짜 누가 찍어줬더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던 동행들이 모두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 그때 선배 언니가 ‘혼자 가면 되지’라는 말에 생각이 파박하고 열리는 순간이었지. 나 혼자서는 여행을 못 간다고 생각했던 그때 ‘혼자서도 여행을, 해외여행을 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이 전환되는 순간이었지. 그리고 혼자만의 여행을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고, 배편을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고, 여행지를 찾아보고, 조금 더 저렴하게 환전하기 위해 명동에 담요 할머니를 찾아가고, 중국어 회화 책도 사고. 만반의 준비를 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감은 세계 1등. 

그리고 24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중국 땅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정말 공기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고 보여 지는 풍경도 다름을 오감으로 느끼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희열로 온몸이 저릿저릿 했지. 뭔가 해낸 기분이었다니까.


코닥회사에서 나온 일회용 사진기로 만리장성에서 나의 혼자만의 여행의 순간을 남겨준 그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네. 누구였는지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치켜뜨고 눈썹을 올려 집중해 봐도 도무지 생각이 안나. 단지 고마운 손길이었던 거지. 그 손길이 없었다면 저 순간을 남기지 못했을 거야.


중국 여행 이후 해외여행은 나에게 쉬운 일이 되었고-돈만 허락 된다면-필리핀, 홍콩, 마카오, 유럽, 그리고 여러 번의 중국여행을 혼자 했지.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낯선 곳에 오롯이 홀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네. 그리고 혼자만의 추억과 사연이 쌓일수록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처럼 말이야. 나만 아는 비밀과 추억은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혼자만의 여행 속 사진은 비밀을 숨긴 SF 판타지 스릴러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잖아.”     



작가의 이전글 도라지꽃이 3년이 되면 그 운명은, 쓰디 쓴 결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