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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Apr 25. 2024

미쉘 카라덱, 사랑의 세계(Monde d'amour)

 미쉘 카라덱(1946~1981)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가수다. 노래가 섬세하고 감각적이긴 하지만, 너무 나약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의 노래 <사랑의 세계Monde d'amour>를 들어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세계>에서 카라덱은 언제나 변함없는 세상에서의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한다. 이 세상은 꽃들이 피어나고 둘이서 사랑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충일한 세계이다. 그러나 카라덱이 그런 세계를 노래했다고 해서, 카라덱의 현실인식이 빈약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카라덱이 노래한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은 카라덱의 염원을 담은 이상세계이지, 카라덱이 인지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아니다.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히로시마’는 전쟁의 상흔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공간이다. 이 히로시마에서 프랑스 여자와 일본 남자가 만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빠르게 시작되지만, 두 사람은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히로시마라는 공간은 사랑이나 이상을 말하기엔 너무나 참혹한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여자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본인 남자를 통해 잊게 된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여자의 존재는 무척 닮아 있다. 폐허의 몸은 폐허의 공간에서 어떤 불능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자는 말한다.     


 이 도시는 사랑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네요.     

 

 폐허가 된 도시는 사랑으로 충만한 공간이 된. 꽃이 피고 사랑을 노래하는 카라덱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두 공간 모두 인간세계의 물질성이나 폭력성이 제거된, 어떤 진공의 상태임에는 분명하다. 이상세계가 관념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꿈꾸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사랑의 감정, 사랑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하나가 되고 함께 노래한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랑의 세계>의 노랫말은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여자가 읊조리는 말들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신을 만나요.

 당신을 기억해요.     

 당신은 누군가요?     

 

 여자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닌 ‘당신’의 존재를 묻는 것은 다시 자신 앞에 놓인 사랑의 실체에 대해 반문하는 것이다. 마치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라고 묻는 질문처럼. 이미 존재하는 사랑의 실체에 대해 물음으로써 그 존재를 다시 믿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완성되는 사랑이 있다. 꽃이 피어 있는 계절이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계절이든 상관없다. 그 순간이 사랑의 이상이고, 사랑으로 가득찬 세계이다. 

 

 전쟁은 끝이 없었다내 젊음도 끝이 없었다나는 전쟁에서도젊음에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히로시마 내 사랑」 부분)


 이렇게 전쟁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Monde d'Amour-Jean Michel Caradec(사랑이 가득한 세상-장 미쉘 캐러덱)[가사 번역]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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