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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May 13. 2024

김동률, 출발

여행자 되기

 막 여행을 시작해서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세계’이다. 한 명의 사람이 ‘나’에게 세계가 되기도 한다. ‘너’라는 기착지, ‘너’라는 여정, 어떤 경우에는 ‘이곳’이 이 여행의 종착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 날 눈을 뜨면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거기’에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게 된다. 무한한 타자들을 만나는 가운데 전혀 뜻밖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때 그는 ‘나’이다. ‘나’는 가장 멀리 있던 타자가 아니던가. 니체는 여행하면서 자신만을 보게 되는 자를 낮잡아 이르기도 했지만 (그런 뜻이 아닌 줄은 알지만) 어느 누구도 여행하면서 자기자신만을 보지 않는다. 타인과 새롭게 만난 세계에서, 그 얼굴과 모습이 그 순간 세계의 전부라 믿으면서 동시에 새로워지거나 한층 깊어진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그래서 아주 먼 과거의 ‘나’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미 지난 세계의 나 자신과 만나 그 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니체가 그랬던가. 집 앞을 나서기만 해도 여행이 시작된 거라고. 그렇다면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기 싫은 직장이지만 그곳에 가면 그래도 마음에 맞는 동료들이 있을 것이다. 동료라는 이름이 너무나 사무적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아직 없다면 ‘나’는 아직 그들을 향해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도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있고 아주 먼 곳에도 ‘늘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 여행에서 과연 누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꿈을 꾸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

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More is More - Spring Summer 2024 - HSH 15s | Boucheron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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