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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Apr 29. 2024

나의 주거문화사 8

집에 대한 그림, 집에 대한 글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생대회에 나갔다. 사생대회에서 나는 이상한 모양의 집을 그렸다. 직선을 단순하게 연결시킨 이차원적 구조물이었다. 내가 그린 집 그림에서 특징적인 점은 집 양쪽으로 곡선을 연결시켜 그 양 끝점에 각각 작은 집 한 채씩을 더 그렸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구조물이었다. 말도 안 되는 구조물이었지만 잔뜩 휘어진 곡선이 떠받치고 있던 두 채의 작은 집은 어린 내가 느꼈던 집에 대한 결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단칸방의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나만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침대가 놓인 방을 갖고 싶어 했다. 

 나의 바람이 투영된 집이 그려진 그림은 그 날 곧바로 폐기되었을 것이다. 사생대회에 따라온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다른 것을 그려보자고 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 선생님은 내가 그리는 대로 내버려두고 다만 채색의 과정에서 덧칠을 도와주었다. 작은 집을 떠받치고 있는 곡선을 좀더 굵게 만들어준 것 같고 지붕 색깔을 못 정하고 있을 때 초록색을 추천해주었던 것 같다. (‘앤 셜리’와의 공감대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나를 슬프게 한 건 사생대회에서 입상을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빈약한 상상력으로 그린 그렇게 엉망인 집도 내가 실제로 사는 산번지의 집보다는 나아보였다는 것이었다. 괴상한 모양의 집을 상상하는 것보다 빛바랜 이엉이 이어진 초가집을 상상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산번지의 집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 밖 변두리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나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했었다. 사진을 찍어도 나는 항상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중심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주목받는 걸 싫어했고 그런 일이 생기면 얼굴부터 빨개지기 일쑤였다. 나서서 말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글을 썼다.      



 크레파스를 사고 싶었다. 힘을 주어도 부러지지 않는 크레파스를 사고 싶었다. 툭툭 부러지는 크레파스로는 풍성한 집도, 풍요로운 들도 그릴 수 없었다. 살구색이 늘 부족했다. 가족들의 얼굴이 하얘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뙤약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자주 그렸다. 그림 속에선 어머닌 늘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머니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모내기를 했고, 빨간 원피스를 입고 고추 파종을 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담뱃잎을 땄고, 빨간 원피스를 입고 추수를 했다. 지나가는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손을 흔들면 부끄러울 것 같아 나는 어머니의 양손을 뒤로 숨겼다. 어머니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아버지도 아니면서 가만히 서 있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나는 이 그림을 꼭 완성하여 사생대회에 다시 나갈 것이다. 집 따위는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비슷한 글을 일기장에 썼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켰다. 치욕적이었다. 일기를 발표한다는 건 어떤 상상력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일기를 더듬더듬 읽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는 어머니가… 반 친구들이 웃었다. 선생님도 웃었다. 교실에서 나 혼자만 울었다. 선생님은 내가 왜 우는지 몰랐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특히 시나 소설 따위는 절대 읽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날 나는 산번지의 집에서 일기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어머니는 여전히 들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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