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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Apr 09. 2024

나의 주거문화사 7

겨울 무렵의 꿈


 산번지의 집, 단칸방에는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있었다. 어머니는 잘 마르지 않는 빨래를 그 빨랫줄에 널었다. 군불을 때면 대개 하룻밤 안에 거의 마르곤 했지만 두꺼운 겨울옷은 채 마르지 않고 물기를 머금은 채 축 늘어져 있기도 했다. 그 퀴퀴한 냄새와 메주 냄새가 뒤섞인, 그리고 어쩐지 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던 그 방안에서 팔이 축 늘어진 괴상한 형체의 괴물이 나타나 산번지의 집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산번지의 집에서 꾸는 꿈은 슬프거나 아예 터무니없는 꿈이 많았다. 슬픈 꿈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꾸기 싫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꿈은 유치하긴 해도 다음 날 일어나 울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 하지만 역시 그것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산번지 집의 마당에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내려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덮치려고 할 때 어디선가 나타난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에겐 떡이 없어서 어머니는 바로 당신의 살을 내어준다. 안 돼, 나는 그렇게 외치지만 막상 말은 나오지 않는다. 꿈에서도 나는 용기가 없어서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지 못한다. 팔이 뜯긴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도망가라, 아가. 호랑이가 어머니의 머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릴 때,      



 그 때 나의 가슴팍으로 웬 다리가 하나 올라온다. 다리의 주인은 파란 바탕에 말 그림이 그려진 내복을 입고 있다. 아, 동생이다. 그렇다. 나에겐 동생이 있었다.      

 산번지의 집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다는 게 가끔 낯설게 느껴진다. 늘 함께 있었겠지만 동생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도 어릴 때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산번지의 집에 가끔씩 생기가 돈 건 동생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랬다. 그 때의 동생은 내가 느끼는 산번지의 그늘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나와는 뭔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동생이 부럽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동생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방안의 빨랫줄에 양말을 걸어두었다. 물론 그 날 신은 양말이었다. 메주 냄새와 덜 마른 빨래 냄새, 그리고 동생의 양말 구린내까지 더해진 방은 세상의 어떤 나그네도 묵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런 곳에 산타가 친히 방문하여 동생의 냄새 나는 양말에 선물을 넣어줄 리는 없었다.      

 그 때 나는 돈이라는 게 없었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선물을 살 수 있는 백화점 같은 곳도 없었다. 동네에 있는 거라곤 ‘점방’이라고 불리는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였다. 과자나 생필품을 팔기도 했지만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에게 건넬 만한 건 그곳에 없었다. 사실 나는 동생의 그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싶었다. 산타가 없다는 걸 아주 오래 전에 깨달은 내가, 아직은 산타를 믿고 있는 동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첫 번째 기억이다.  


    

 동생의 양말은 실은 어떤 크기의 물건도 넣을 수 있는 마법의 주머니다. 엄지발가락께 나 있는 구멍을 들여다보면 팔이 축 늘어진 괴상한 형체의 괴물이 손을 뻗는다. 그 때 겁먹지 않고 괴물의 손을 잡으면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던 선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상태에서 다시 양말을 뒤집으면 동생에게 딱 알맞은 선물꾸러미가 되는 것이다.     


 

 산번지의 집에서 그런 꿈이 (아주 가끔) 가능했던 것은 모두 동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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